[기자수첩] 농심 회장 빈소에서 볼 수 없었던 것

조선비즈
  • 윤희훈 기자
    입력 2021.04.07 10:05

    농심(004370)의 창업주 신춘호 회장이 지난 3월 27일 9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신 회장의 장례는 회사장으로 진행됐다. 농심의 임직원들은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빈소 앞을 지키며 조문객을 맞았다. 다른 기업인의 빈소 풍경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여성 임직원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장례 기간 빈소를 지킨 농심의 여직원은 홍보실 소속 대리가 유일했다.

    농심의 남직원은 2128명, 여직원은 3002명이다. 직원 5명 중 3명꼴로 여성이지만, 임원은 36명 모두 남성이다. 식품업계 고위직의 성비 격차는 비단 농심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가족부로부터 가족 친화 인증 우수기업으로 선정된 오뚜기도 임원 13명이 모두 남성이다. 그룹 최대 주주가 여성인 대상도 임원 40명 중 오너(박현주·임세령 부회장과 임상민 전무) 3명을 빼면 여성 임원은 2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CJ제일제당이 임원 102명 중 23명(오너 일가인 이미경 부회장·이경후 부사장 포함)을 여성으로 발탁하며 8 대 2 수준의 성비를 유지하고 있다.

    백화점, 화장품 회사는 어떨까. 롯데쇼핑은 임원 96명 중 여성이 7명에 불과하고, 신세계는 33명 중 4명이 전부다. 이 중 절반은 오너인 이명희 회장과 정유경 총괄사장이다. 현대백화점은 임원 56명 중 여성이 3명이다. 여성이 주요 고객인 화장품 기업 아모레퍼시픽도 69명 중 여성 임원은 16명이다. LG생활건강도 임원 48명 중 여성은 8명에 불과하다.

    지난 주 이마트와 GS홈쇼핑은 처음으로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했다고 밝혔다. 이사회 구성에서 성 평등을 지향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이러한 일이 뉴스거리가 된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선 이사회를 남성 중심으로 꾸리는 게 당연시 돼왔다는 방증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로 기업들은 남직원이 장기 근속하는 반면 여직원은 퇴사율이 높다는 점을 꼽는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질문을 달리 해야 한다. '여직원은 왜 남직원보다 근속연수가 짧은가?' '결혼·출산·육아로 인한 여직원들의 경력 단절 극복을 위해 회사는 무엇을 했는가?'라고 말이다.

    기업의 지속균형발전을 장려하는 유엔 산하 전문 기구 '유엔 글로벌 콤팩트'에 따르면 스웨덴의 가구 기업 이케아는 여성 임원 비율이 49.7%(2018년 기준)에 이른다. 글로벌 화장품 회사 로레알도 여성 임원 비율이 47% 수준이다. 이들은 여직원의 역량 강화를 회사 성장동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기업들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강조되고 있다. 성평등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핵심 요소다. 성평등을 가로막는 기업의 유리천장을 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진단하는 것부터가 난제다. 결과적 평등만 강조하는 '여성 할당제'만 고집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첫 걸음은 기업이 의사 결정 과정에서 여심을 반영하는 것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식품과 생활용품 등 소비재 산업의 주요 고객은 여성이고, 그들이 원하는 상품을 개발하는 것은 바로 회사의 경쟁력이라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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