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2017년 9월 치매국가책임제 추진계획 발표
4년 지났지만 치매안심병원 4곳…수도권은 없어
치매 인구 78만명에서 2050년 302만명까지 늘 것
"관련 인력 확대 및 수가 보상 체계 마련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6월 2일 오전 서울시 국민건강보험 서울요양원에서 열린 ‘치매, 이제 국가가 책임지겠습니다’ 행사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손뼉 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핵심 공약인 ‘치매국가책임제’가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제도 시행을 실현하기 위해 내세운 ‘치매안심병원’이 국내 4곳에 불과한 데다, 한방신경정신과 의사만 있어도 치매안심병원 지정이 가능해지는 개정안까지 입법예고되면서 의료현장을 무시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치매안심병원은 경북도립안동노인전문요양병원를 비롯해 경북도립김천노인전문요양병원, 경북도립경산노인전문병원, 대전시립제1노인전문병원 등 총 4곳에 불과하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17년 9월 18일 발표한 치매국가책임제의 대책 중 하나로 치매안심병원 설립을 추진했다. 치매안심병원은 가정에서 돌보기 어려운 행동심리증상(BPSD)이 있는 치매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관리할 수 있는 병원이다.

그동안 치매 환자는 주로 종합병원·정신의료기관·요양병원 등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인구 고령화와 함께 치매 환자가 급격히 늘자 치매전문병동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기준 65세 이상 치매 인구는 78만8000명에서 오는 2050년 302만3000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치매 유병률은 2016년 처음 10%에 도달한 이후 점차 증가해 2050년에는 15.1%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일본을 대표 사례로 제시하며 치매안심병원을 도입했다. 일본과 같이 행동심리증상 치매환자 전문 치료·관리를 위한 ‘치매전문병동’을 만들고자, 치매안심병원을 출범한 것이다. 일본은 입원실·공동거실·배회공간·생활기능 회복훈련실 등이 설치돼 있고, 환자 100명 기준 의사 3명(정신과 1명 이상 필수)이 배치된 40∼80병상 규모 치매환자 전용병동을 운영하고 있다. 문 정부가 도입한 치매안심병원도 치매관리법에 따라 병원급 의료기관이 치매전문병동 등 치매환자 전용 시설과 신경과·정신과 전문의 등 치매전문 의료인력을 갖춰야 지정받을 수 있다.

◇ "인력 지원책·수가 보상 없이 치매안심병원 운영 어렵다"

2019년 도입된 치매안심병원이 4곳에 불과한 데에는 정부의 재정 지원책 등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서울, 경기도 등 환자가 몰리는 수도권에는 단 한 곳의 치매안심병원도 없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4일 ‘2021년 제1차 국가치매관리위원회’를 열고 제4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21∼2025년)의 시행 계획을 발표했다. 종합계획에 따르면 현재 치매안심병원은 4개소에서 오는 2022년까지 12개, 2025년 22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치매안심병원에 지원할 요양병원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 한 요양병원 관계자는 "치매안심병원을 운영하기 위한 핵심 대책안이 바로 ‘인력’ 확대인데, 정부가 병동 관련 장비 등만 지원하고 있다. 누가 손해를 보고 치매안심병원을 운영하겠냐"면서 "중증 치매 환자 치료를 위한 수가 보상 등 대책 없인 치매안심병원 확대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치매안심병원 외에도 전국 국·공립요양병원에 설치한 ‘치매전문병동’ 역시 최소 인력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는 치매안심병원 지정·운영을 위해 2017년 하반기부터 국·공립요양병원에 치매전문병동 설치를 지원하고 있다. 전국 국·공립요양병원에 설치한 치매전문병동은 국비·지방비를 합쳐 약 739억원의 예산을 쏟아 시설 인프라를 확대했음에도 전문인력 부족으로 제대로 된 치료·돌봄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전국공립요양병원에 설치된 치매전문병동 49곳 가운데 운영인력 기준을 충족한 곳은 16.3%인 8곳뿐이다.

홍승봉 대한신경과학회 이사장은 "치매전문병동 설치를 국공립요양병원으로만 한정시키지 말고, 전국에 있는 민간요양병원으로 확대하는 등 대안이 필요하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력 운영 및 치료를 위한 수가 확대, 비용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홍 이사장은 "치매안심병원이 4곳에 불과하다는 것은 결국 요양병원이 치매 치료만으로 운영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재원 때문이다"라며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치매 국가책임제는 겉만 번지르르한 정책에 불과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 ‘한의사’ 치료에 반발하는 의학계…"피해는 고스란히 환자 몫"

일부 의료계는 신경과, 신경외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만 대상으로 인정한 ‘치매안심병원’ 인력기준에 ‘한방신경정신과 전문의’를 포함한 것도 문제로 지적했다.

최근 복지부가 입법 예고한 치매관리법 개정안에 따르면 치매안심병원 지정을 위한 필수 인력 전문과에 ‘한방신경정신과’를 추가하면서 한방신경정신과 의사만 있어도 치매안심병원 지정이 가능하게 됐다. 이처럼 치매안심병원 인력으로 한방신경정신과 한의사가 포함되자 대한신경과학회, 대한치매학회 등 주요 의료 학회가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6월 2일 오전 서울시 국민건강보험 서울요양원에서 열린 ‘치매, 이제 국가가 책임지겠습니다’ 행사를 마친 뒤 행사장을 떠나며 어르신과 인사하고 있다.

대한신경과학회에 따르면 치매안심병원에 입원하는 이상행동이 심한 치매 환자의 사망률은 74%, 뇌졸중 발생률은 35% 증가한다. 또 심근경색, 신체 손상, 낙상 등 위험이 정상 노인보다 현저히 높다.

치매가 진행하면서 약 50%의 환자가 이상행동(통제 안 되는 공격행동, 망상, 환각, 배회, 우울증, 씻고 먹기 거부하기, 욕하기, 울고 소리 지르기 등) 증상으로 환자와 가족이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중 증상이 심한 10%는 지역사회에서 수용이 어려워 치매안심병원에 입원해 즉각적인 보호, 특수한 약물치료와 원인의 감별을 위한 진단 검사가 필요하다.

홍승봉 이사장은 "치매 환자의 이상행동은 뇌 회로 장애로 발생한다"면서 "주요 유발 요인은 급성 내과·신경과 질환, 통증, 정신질환, 불면증, 공포 등 다양하기 때문에 신경과, 정신과 치매 전문가 치료가 필수다"라고 말했다. 홍 이사장은 "이상행동이 나타난 치매환자 증상의 치료는 신속·정확하게 이뤄져야만 환자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가족의 삶을 유지할 수 있다"면서 "한의사만으로 치료가 가능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