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조선구마사'로 표출된 애국주의란 괴물

조선비즈
  • 김참 사회부장
    입력 2021.04.03 04:00

    지난달 최미역행(最美逆行)이라는 중국 영화를 3분의 2 정도 보다가 결국 포기했다. 이 영화는 중국에서 7억명이 관람해 흥행에 성공했다고 한다. 영화수입사는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러나 영화 시작 후 1시간 정도 지나면 노골적인 공산당 찬양과 신파가 버무려진 프로파간다 선전물임을 알 수 있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중국 우한시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시민들이 도시를 탈출하는 와중에 의료진은 반대로 우한으로 들어가는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남녀 주인공들의 사랑 그리고 가족 신파극까지 뒤섞여 있는데, 워낙 수준이 낮아 보는 내내 불편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지만, 코로나19 초기 우한시에서 나타난 중국 공산당과 의료진의 미숙한 대처, 시민들의 비참한 죽음 등은 영화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오로지 공산당 간부와 의료진의 헌신만 반복해서 보여준다. 공산당의 지나친 검열제도가 중국 영화를 우리나라 80년대 반공(反共)영화 수준으로 퇴행시켜버린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 조선구마사라는 판타지 사극 드라마가 역사 왜곡 논란으로 방영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번에 논란이 된 부분은 우리 역사상 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대왕이 충녕대군 시절 명나라 국경 근방의 기생집에서 외국인 사제와 통역사에게 중국 전통음식인 월병과 피단, 중국식 만두 등을 대접하는 장면 때문이다.

    결국 방송 중단이 결정되고 제작사와 방송사에서 공식 사과를 했지만,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드라마를 방영한 방송사는 수백억원대 손실이 발생했고, 제작사의 모회사인 YG엔터테인먼트 주가는 연일 하락세를 보였다. 이번 역사 왜곡 논란으로 방송을 앞둔 판타지 사극들도 혹시나 불똥이 튈까 긴장하고 있다.

    판타지 사극에서 역사 왜곡 논란은 매번 있던 일이다. 역사적 사건 중 큰 줄기만 가져오고, 나머지는 창작자가 고증 없이 살을 붙여 만들기 때문이다. 늘 있는 해프닝이지만 이번에는 그간 쌓였던 반중(反中)감정과 합쳐지면서, 일이 커졌다. 중국이 김치와 한복, 삼계탕 등 모두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문화 동북공정에 대한 반중 감정이 때마침 조선구마사의 역사 왜곡과 맞물려 격하게 표출된 것이다.

    매년 수많은 콘텐츠가 제작되다 보면 수준 이하의 콘텐츠들도 나오기 마련이다. 조선구마사도 비판받을 부분은 비판받고, 아직 방영하지 않은 회차에 대해서는 수정 편집해 방영하면 될 일이었다. 그냥 내버려둬도 된다. 어차피 수준미달 작품은 시청자에게 외면받고, 해당 감독과 작가는 차기작의 기회를 잡기가 어려워진다.

    그런데 이번 사태가 단순한 비판을 넘어서 창작자의 창작 활동까지 제약하려는 감정 섞인 반응이 나오는 것은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간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웹툰에 이르기까지 국뽕(과도한 국수주의·애국주의를 비꼬는 인터넷 신조어) 여론과 극단적 페미니즘 세력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창작자들을 압박해 반성문을 쓰게 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봐왔다.

    이런 모습은 우리가 비판해왔던 중국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외국인이 중국 문화에 대해 거슬리는 발언을 하면 갑자기 애국주의 분위기가 일면서 외국 기업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이고,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이후 해당 기업은 울며 겨자 먹기로 반성문을 썼다.

    상상력에 족쇄를 채우고, 자기검열을 강요하면 창작자들은 욕먹지 않을 만한 국뽕과 PC주의(정치적 올바름) 콘텐츠만 만들게 될 것이다. 결국 우리가 자랑하는 영화나 드라마, K팝도 과거로 퇴행할 수밖에 없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과 닮아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가수 이효리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예명으로 마오 어때요?"라고 발언한 뒤, 중국 네티즌에게 마오쩌둥(毛澤東)을 모욕했다며 개인 SNS에 20만개의 댓글 테러를 당했다.

    식탁에 중국식 만두가 올라간 드라마 장면 하나에 지금처럼 모두가 흥분하는 기현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미 애국주의 괴물이 돼버린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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