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훤의 왈家왈不] 위선의 불명예 퇴장

조선비즈
  • 전태훤 선임기자
    입력 2021.03.31 06:36

    ‘재벌 저격수’의 등장은 떠들썩하고 요란했다. 시민단체를 통해 재벌 개혁에 앞장섰던 진보 성향의 대학교수가 국가 경제 질서를 책임질 공정거래위원장에 내정되면서 재계는 긴장했고 시장의 기대와 우려는 교차했다.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선거 캠프였던 ‘새로운대한민국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재벌 개혁 규제와 정책을 만든 김상조 전 한성대 교수는 그렇게 맺어진 문 대통령과의 인연을 계기로 이번 정부 시장질서 개혁의 선봉을 맡으며 ‘공정’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는 자신에 차 있었다. "한국 경제의 활력이 떨어진 이유는 시장경제 질서가 공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내정된 것은 시장 질서를 확립해 모든 경제주체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능력을 펼치라는 의미"라고 내정 소감도 밝혔다.

    하지만 그의 등장은 인사 청문 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부동산 다운계약서를 쓰고 두 번에 걸쳐 위장전입 한 것이 드러났고, 논문 자기표절(중복게재)도 밝혀졌다. 부인의 취업과정에서도 부정 의혹이 제기됐고, 아들의 병역 특혜 논란도 있었다.

    그래도 청와대는 그를 두고 "공정한 경제 질서를 통해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 능력을 갖췄고, 흠결보다 정책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국민 눈높이에서 그는 이미 검증을 통과했다"며 야당의 거센 반대도 무릅쓰고 2017년 6월 임명을 강행했다.

    2년이 지난 2019년 6월 그는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발탁된다. 청와대는 "현 정부 초대 공정거래위원장을 맡아 뛰어난 전문성과 균형감 있는 정무 감각을 바탕으로 국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경제 분야 핵심 국정기조인 공정경제 구현에 크게 이바지해왔다"며 "학계·시민단체·정부 등에서의 활발한 활동을 통해 경제 분야뿐 아니라 사회·복지·교육 등 다방면의 정책에도 정통한 전문가로서, 기업과 민생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등 시대적 소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인사 배경을 밝혔다.

    그리고 1년 9개월 뒤,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라 하는 ‘공정’과 ‘정의’ 구현의 상징과도 같은 자리에 있었던 고위공직자는 위선과 배신이란 허물을 남기고 29일 불명예 퇴장했다.

    김상조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이 2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퇴임 인사를 마치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상조 정책실장이 누구인가. 김수현 전임 실장에 이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규제와 정책을 주도한 핵심 인사다. 임대 보증금을 5% 이상 올리지 못하게 규정한 전·월세 상한제를 비롯한 임대차 3법을 주도한 상징적 인물이 정작 자신은 법 시행 이틀 전 본인의 강남구 청담동 아파트 전세 보증금을 14%나 올리는 이중성을 보였으니, 이를 목도한 대다수 국민이 느끼는 배신감은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임대한 청담동 아파트 전셋값이 시세보다 낮고, 본인이 세입자로 있는 성동구 금호동 아파트 전셋값이 많이 올라 어쩔 수 없이 임차인과 합의해 보증금을 인상했다고 청와대가 해명도 했다. 하지만 14억원의 은행 통장 잔고가 있다는 사실까지 덧붙여 알려지면서 해명은 오히려 불붙은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세를 준 아파트와 세를 사는 아파트의 재계약 시점을 보는 시각도 고을 수가 없다. 김상조 실장이 세를 준 청담동 아파트의 전셋값은 임대차 3법 시행 직전에 올렸지만, 본인이 임차인으로 사는 금호동 아파트는 법 시행 한 달 뒤인 8월29일에 재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임대차 3법의 취지가 세입자 부담을 낮추기 위해 임대료 인상폭을 최소화하자는 것이었다면 내로남불이란 비난 여론이 들끓는 것은 당연지사. 문제는 전셋값을 얼마나 올렸는지, 그 과정에서 사익을 취했는지 여부를 떠나, 이번 비난의 본질은 정책을 주도한 청와대 고위공직자가 자신은 빠져나갈 규제의 그물을 쳤다는 데 있다. 자본시장이라면 내부자 거래를 위반한 것이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내부 개발 정보를 이용해 땅투기를 하다 적발된 것과 다를 게 없다는 거다.

    ‘전셋값 좀 올렸다고 경질될 일인가’, ‘입장 바꿔 놓으면 안 올렸겠느냐’란 되물음과 두둔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그가 국가 정책을 조율하고 콘트롤하는 위치에 있는 고위공직자라는 이유만으로도 그렇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거라던 정부다. 온 국민에게 적용될 규제를 만들며 정작 본인은 빠져나간다면 이 정부가 그렇게 목놓아 외치고 추구한 공정과 정의, 평등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

    공정과 정의란 아이콘의 불명예 퇴장이 씁쓸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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