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백신 접종, 가짜뉴스 때문에 신뢰를 잃는 게 아니다

조선비즈
  • 손덕호 기자
    입력 2021.03.29 11:00

    한국은 저신뢰 사회다. 한국정책리서치가 2019년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 27.6%만 '대부분의 사람들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은 33%(2010년)다. 미국은 36.6%, 스웨덴은 55.1%, 덴마크는 60.5%다.

    지난주 인터넷과 소셜미디어(SNS)는 문재인 대통령의 코로나19 백신 접종으로 시끄러웠다. 대통령이 사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황당한 '가짜뉴스'가 유포됐기 때문이다. 급기야 정세균 국무총리가 직접 소매를 걷고 진화에 나섰다. 문 대통령 접종 사흘 뒤 같은 보건소에서 같은 간호사에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했다. 이번에는 방송사 카메라가 가짜뉴스의 원인이 된 '파티션 뒤'를 촬영해 보여주는 촌극도 있었다. 정 총리는 "불필요한 얘기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해 가짜뉴스에 국민들이 현혹되는 것일까. 아니다. 한국정책리서치가 실시한 같은 조사에서 청와대 신뢰도는 48%였다. 진보층은 77%가 신뢰했지만 보수층은 15%만 신뢰한다고 답했다. 2년 새 문 대통령을 향한 불신이 쌓인 게 이번 가짜뉴스 소동의 근본 원인일 수 있다.

    코로나 백신과 관련한 불신은 청와대와 정부, 더불어민주당이 제공했다. 지난해 한국이 백신 확보 경쟁에서 뒤쳐졌을 때 당정청은 한 목소리로 사실이 아니라고만 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지난해 4월부터 코로나 백신을 확보하는 지시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언제 개발될 지 모르는 'K-백신'을 지원하라는 것이었다.

    글로벌 제약사 백신 계약에 뛰어들라는 지시는 9월 15일 내부 참모회의가 처음이었다. 국제 비영리단체 옥스팜은 지난해 9월 17일(현지 시각) "미국과 유럽연합(EU)·영국·일본·호주 등 선진국들이 이미 27억회분 백신 계약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다른 나라가 싹쓸이한 뒤에야 백신 확보 지시가 나온 것이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그 때부터 정부의 코로나 백신 확보가 너무 늦다는 공세를 펼쳤다.

    "국민의힘 주장은 백신 추정 주사를 놓아 국민을 '코로나 마루타' 삼자는 것이다. 일본 731부대 망령이 대한민국에 부활한 것 같다."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일 야당의 공세를 맞받으면서 한 말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백신 접종의 안전성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영국과 미국 등이 코로나 백신 접종을 한 달 째 진행하고 있는 데도 '백신 추정 주사'라는 말을 한 것은 어떤 의도였을까. 그러더니 한 달 뒤 "백신은 과학"이라며 "백신을 믿지 못하겠다면 저라도 나서서 먼저 맞겠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말 국내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그러나 한국의 백신 접종은 세계 105번째였고, OECD 꼴찌였다. 한국은 지난달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000~6000달러 선인 개도국과 함께 코백스로부터 첫 화이자 백신 5만명분을 배분받기도 했다. 진작 선구매 계약을 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한국의 코로나 백신 접종 속도가 서구보다 느린 탓에 한국 경제가 적지 않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했다. 누구나 충분히 예상 가능한 전망이다. 백신 접종이 늦을수록 자영업자들은 계속해서 타격을 받는데, 한국은 가뜩이나 자영업자 비중이 높다. WSJ는 "한국의 민간 소비는 지난해 6.5% 감소해 미국(-3.4%)보다 나쁘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수출 호조로 부풀려진 ‘K-경기회복’의 실체다. 정부의 백신 확보가 기민했다면 이런 지적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수 개월간 이런 상황이 진행되다 급기야 '백신 바꿔치기' 가짜뉴스가 퍼졌다. 방역당국은 의혹을 제기한 게시글 4건과 영상 4건을 경찰에 수사의뢰했다. 그러나 가짜뉴스 때문에 신뢰를 잃는 게 아니라, 신뢰를 잃어서 가짜뉴스가 생기는 것이다. 원인은 백신 도입 과정에서 국민들의 신뢰를 잃은 데 있다. 왜 이런 얼토당토않은 가짜뉴스가 퍼지고 믿는 사람들이 나타나는지, 스스로를 먼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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