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의 마인드로 열심히 일할테니 경영자의 월급을 주세요."

몇 년 전 온라인에서 회자된 한 만화의 대사다. 직장생활을 주제로 화제를 모았던 이 만화 속 대사는 올해도 유효해 보인다. 주주총회를 앞두고 기업들이 하나둘씩 감사보고서를 공개하면서, 재벌과 경영진이 받은 지난해 연봉이 공개되고 있어서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위기 경영’을 주문하는 경영진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이들만의 성과급 잔치는 올 봄에도 재확인됐다. 지난해 창사 이래 첫 적자를 낸 호텔신라는 이부진 사장에게 성과급 37억원을 포함한 연봉 약 49억원을 지급했다. 일반 직원들은 주4일 근무제 등으로 평균급여가 20% 가까이 줄어든 상황에서다.

디지털 전환에 뒤처지면서 고전 중인 롯데그룹의 신동빈 회장은 지난해 롯데쇼핑에서 약 13억원의 급여를 받았다. 2019년(22억원)보다는 줄었지만, 롯데제과 등 다른 계열사에서 받은 연봉을 합산하면 100억원에 달하는 연봉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익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현대백화점그룹도 마찬가지다. 정지선 회장의 연봉은 35억원으로, 코로나 이전과 큰 차이가 없다. 신세계그룹은 경영 일선에서 한 발 물러난 이명희 회장이 29억원을 수령했다.

각 회사는 "어려운 경영 환경에서도 매출을 낸 점을 반영했다"거나 "성과급은 직전 3개년 실적을 기준으로 산정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옹색한 변명일 뿐이다. 근로소득이 전부인 일반 직원들과 달리 오너나 고위 경영진은 보유 주식을 통해 매년 받는 배당금만 수백억원이다.

지난해 강제 연차 소진과 주 4일제 등으로 평소보다 적은 월급을 받았다는 한 대리급 직원은 "위기 경영, 체질 개선을 요구하면서 그 부담은 일선 직원들에게만 돌아온다"고 토로했다.

미국에는 ‘1년에 1달러짜리 인력(Dollar-a-year man)’이란 표현이 있다. 급여를 단돈 1달러만 받는 경영자를 가리킨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가 그렇고, 창업주 일가인 빌 포드 포드자동차 회장과 미국 수퍼마켓 체인인 홀푸드의 존 매키 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이 해당된다. 구글을 창업한 래리 페이지와 애플의 고(故) 스티브 잡스 역시 ‘급여 1달러’ 경영자였다.

이는 미 정부가 ‘공짜 인력’을 부릴 수 없는 법적 규제 때문에 생겨난 문화다. 양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기업인들은 정부의 부담은 낮추되 법에 저촉되지 않기 위해 연봉을 1달러로 낮춰 자문위원 등으로 일했다. 이후에도 회사가 경영난에 빠졌을 때나 ‘사익만 추구하지 않겠다’며 사원을 독려하기 위해, 또는 ‘회사와 나는 한 몸’이라는 점을 주주들에게 인식시키고 싶을 때 ‘급여 1달러’를 활용했다. 자사주나 배당금 등으로 별도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기업의 가치를 키울 수밖에 없는 배수의 진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화두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국내 현황은 또 어떤가. 지난 2010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부부와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시작한 기부 운동인 ‘더기빙플레지’의 한국 1호는 김봉진 배달의민족 창업자다. 그 뒤를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이었다. 두 회사는 재계 서열 20위권 밖이다. 재계는 정치권이 만든 ‘나쁜 기업’ 이미지 때문에 한국에서 경영하기가 두렵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이들이 사회적으로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가 정말 그 때문인지 곱씹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