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국가산단 지정에 투기꾼 벌집촌 된 연서면
인적 드문 시골에 조립식 건물 가득… 묘목 심기도
주민들, 마을회관에 대책위 마련… "그냥 개발 취소해달라"
세종시, 18일 투기 의혹 조사 중간발표
"모르는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더니, 조립식 건물이 지어졌어요. 외지인들 들어와서 뉴스에 나오고 시끄럽기만 합니다. 그냥 개발 취소해주세요. 편하게 살고 싶습니다."
16일 오전 세종시 연서면 와촌리 마을 진입도로에서 마주친 한 60대 주민은 취재 차 방문한 기자를 향해 대뜸 이렇게 말했다. 인구 600명이 모여사는 와촌리는 요즘 부동산 투기 뉴스가 나올 때 마다 끊임없이 등장한다. 각종 방송 뉴스 화면에서 마을 전경이 나올 때마다 주민들은 심장이 두근두근 거린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는 ‘만만하게 농민이냐? 세종국가산업단지(산단) 결사반대’, ‘원주민 내쫓는 세종산단 결사반대’이라고 적힌 붉은 색 현수막이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2018년 연서면 일대 270만㎡가 스마트 국가산업단지(산단) 후보지로 지정된 이후, 전국 각지에서 투기꾼들이 몰려들었다. 마을 곳곳에는 토지 보상을 받기 위해 지은 벌집이 널려있었다.
◇벌집촌 가보니, 가스통 방치, 전력사용은 ‘0’... 원주민들 한숨만
산단이 들어오는 와촌리와 부암리를 잇는 600m 길이의 왕복 2차선 도로에는 약 20여곳의 공인중개사무소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유리창에는 토지전문, 대토전문, 외지인 투자상담 환영 등 투자를 유혹하는 광고들이 경쟁적으로 붙어있었다. 마을 전체가 투기꾼들의 먹잇감으로 내동댕이쳐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마을 주민은 "부동산부터 싹 없에야 한다"면서 적개심을 드러냈다.
입구를 지나 차로 약 5분거리인 와촌리에 도착하자, 보상을 노리고 다닥다닥 지은 5채의 조립식 건물이 눈에 띄었다. 이른바 ‘벌집촌’을 이룬 것이다. 조립식 건물들은 아주 오래돼보이는 주변의 농가들에 비해서는 깨끗한 상태였다.
집 앞마당 땅바닥에는 우편물과 주소 안내판이 나뒹굴었다. 대부분의 집들은 공통적으로 창문에서 안을 볼 수 없도록 블라인드로 가려놓은 상태였다. 에어컨 실외기에는 잡초가 무성했고 LPG가스통은 아예 연결조차 돼지 않았다. 전기계량기는 멈춰있는 상태였다. 사람이 살고 있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다른 조립식 주택 옆에는 묘목이 심어져 있었다. 3기 신도시 후보지인 광명·시흥지구 농지에 묘목을 심은 LH직원들의 땅 투기 수법을 연상시키는 장면이었다.
외지인들의 투기에 화가 났는지, 벌집촌 길 건너 와촌1리 마을회관에는 ‘세종국가산단 주민대책위 사무실’이 만들어져 있었다. 건물 곳곳에는 ‘원주민 생존권 박탈, 세종산단 결사반대’, ‘원주민 내쫓는 세종산단 결사반대’ 등이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또 인근 국도를 달리다 보면 ‘공무원의 부동산 투기를 제보받는다’는 세종시청과 정의당의 현수막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원주민들도 외부인들의 투기에 지쳤는지, 벌집촌을 지나가며 한소리들씩을 했다. 비료를 운반 중이던 마을 한 주민도 "요즘 방송국 카메라도 자주오고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다"며 "가끔씩 사람이 오기도 하는데, 거의 비어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또 원주민들은 땅값이 너무 오르면서 삶의 터전이 사라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한 주민은 "밭을 좀 늘리고 싶은데, 땅값이 올라 땅을 구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실제 와촌리와 10분 거리인 연서면 월하리의 한 토지의 경우 2015년 7억4000만원에 거래됐는데, 올해 1월 43억4000만원에 팔렸다. 5년 만에 6배 가까이가 된 것이다. 와촌리 벌집촌의 공시지가도 대부분 매입시기인 2018년에 비해, 2배 가까이 올랐다.
세종시는 이곳 산업단지 후보지 뿐만 아니라, 아파트도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15일 발표된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보면 세종시는 작년보다 70% 이상 폭등했다. 전국 평균 공동주택 공시가격 상승률이 19.08%인 점을 보면 4배 가까이 많이 오른 셈이다. 예를 들어 세종시 도담동 도램마을9단지 106.63㎡는 공시가격이 작년 5억1600만원에서 올해 8억4900만원으로 64.5% 상승했다.
◇LH 사태, 다음 타깃은 땅값 상승 1위 ‘세종’… 농지법 위반자만 171명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3기 신도시 땅투기 의혹 사건이 불거진 이후, 세종시가 각종 투기 의혹 사건의 중심지로 부상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세종시에 부동산 투기 조사를 실시해달라는 청원이 매일 올라온다.
한 청원인은 지난 9일 "세종시는 행정수도 일환으로 정부와 LH가 대대적으로 조성하는 계획도시인 동시에, 부동산 투기의 산 현장"이라며 세종시에 투기한 공무원과 LH 직원을 전수 조사해달라고 요구했다. 전날에는 "광명시흥 신도지 예정 지역에서 일어난 LH 직원들의 투기를 보면서 세종에서도 유사한 행태의 투기가 일어났을 것이라는 의혹을 가지고 있다"면서 정부 차원의 조사단 파견을 요청했다.
실제 세종시는 행정중심복합도시 특성상 대부분의 정부부처가 내려와 있고, 국회 이전 등 개발호재가 몰려있다. 또 대전 지하철 1호선 반석역과 정부세종청사를 잇는 지하철 연장 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여기에 세종 스마트 국가산단이 2023년 단지 공사를 시작해 2025년 입주할 경우, 정치와 공공, 일자리, 도심의 기능을 합친 미니 수도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토지거래는 급증했다. 세종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세종 시내 순수 토지 거래량은 5189필지로, 전년 같은 분기 거래량(2690필지) 보다 2배가량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순수 토지 거래량은 아파트 등 건물에 딸린 부지를 제외한 순수한 토지 거래 건수를 말한다. 시내 임야 가운데 20명 이상 공유지분으로 된 토지가 381필지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연서면 기룡리 한 야산의 경우 한 필지를 공유한 소유주가 770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배경 탓에 세종지역 땅값 상승률은 지난해 4분기 기준 3.60%로 전국 시·도 중 가장 높았다. 2위인 부산(1.24%)의 3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보상을 노린 외지인들의 토지 매매가 늘면서 갖가지 문제가 터져나오고 있다. 세종시에 따르면 지난해 농지이용실태조사 결과 농지법 위반 행위로 적발된 사람은 171명에 달했다. 93명은 세종시의 정기 조사를 통해, 78명은 경찰의 특별조사를 통해 각각 혐의가 드러났다. 이들은 2015년 이후 최근 5년 이내에 세종지역 농지를 구입한 뒤 제대로 농사를 짓지않는 휴경자(152명)이거나 다른 사람에게 임대로 맡긴 경우(19명)다.
집계된 소유 면적만 111필지, 12.1㏊에 이른다. 세종시는 이들의 90% 이상이 외지인인 것으로 파악하고 청문절차를 진행중이다.
세종시 관계자는 "현재 문제가 된 토지주들에게 사전의견서를 제출받고 있고, 지난해 영농 사실이 없으면 처분의무 명령이 내려진다. 불응시 공시지가의 20%로 이행 강제금이 부과할 방침"이라며 "추가적인 내용파악을 위해 농지를 대상으로 재배식물과 건축물 등을 파악하는 지장물 전수조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세종 공무원 3명 경찰 수사 착수… 18일 조사결과 발표
세종 경찰도 세종시 공무원 등 땅 투기 의혹 관련자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세종시는 지난 14일 6급 공무원 A씨와 같은 공무원인 부인, 동생인 4급 간부 등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A씨는 전날 공직자 부동산 투기신고센터를 통해 산단 내 연서면 와촌리 지역 부동산 거래 행위를 자진 신고했다.
조사 결과 A씨는 2018년 2월 세종지역 단위농협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부인 이름으로 매입한 뒤 ‘벌집’으로 불리는 조립식 건물을 지은 것으로 확인됐다. 세종경찰은 이들 공무원 3명에 대해 부패방지법 혐의를 적용해, 내사에서 수사로 전환했다.
경찰은 국가산단 인접 지역에 땅을 매입한 전 행정도시건설청장에 대해서 확인에 나섰다. 2013년부터 2017년 7월까지 행복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 청장(차관급)을 지낸 B씨는 퇴임 직후인 2017년 11월 세종시 연서면 봉암리 대지 622m²와 건물 246.4m²를 가족 3명과 함께 9억8000만 원에 사들였다. 현재 조립식 건물에 부동산 1곳과 식당 2곳이 영업을 하고 있다.
공무원 뿐만 아니라, 정치권 인사들에 대한 땅 투기 제보도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의회 의장과 의원이 부인·어머니 명의로 조치원읍 토지를 매입한 뒤 도로포장 예산을 편성해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세종시 관계자는 "현재 산단과 관련한 합동 투기조사단을 구성했다"며 "내일(18일) 시장의 정례브리핑에서 조사와 관련된 중간발표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