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술기행] (46) “물타지 않은 17도 술로, 목넘김이 부드럽고 향이 오래가요."

조선비즈
  • 박순욱 선임기자
    입력 2021.03.15 14:02

    양주골이가전통주 이경숙 대표, 약주 ‘주줌치 17’로 대한민국주류대상 Best of 2021 상 받아
    의성김씨 가양주 빚어온 친정엄마 술 제조법, 20년 전부터 배워… "내 술은 엄마의 술"
    주줌치17, 개똥쑥 넣어 연녹색 띠고, 은은한 허브향 일품… "머리를 맑게 하는 술"
    양주골쌀로 직접 만든 이화곡 누룩으로 만든 ‘이화주’도 대한민국주류대상 3년 연속 대상
    발효와 1, 2차 숙성 기간 합치면 5개월 걸려… "정성과 기다림의 술이 곧 엄마의 술"

    조선비즈가 주최한 2021년 대한민국주류대상에서 최고상인 ‘Best of 2021(약주부문)’ 상을 받은 ‘주줌치17’은 항암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작물인 개똥쑥을 부재료로 넣은 약주다. 개똥쑥은 흔히 개울가나 들판에 자생하지만 밭에서 재배도 가능하다. 손으로 비벼보면 개똥 냄새가 난다고 해서 개똥쑥이라 이름지었다고 하지만 고혈압, 당뇨에도 효능이 있다고 전해져, 한약방에선 ‘청호’라고 부른다.

    개똥쑥을 3.5% 넣은 이 술은 색상부터가 여느 약주와 다르다. 쌀과 누룩으로 만든 약주 색상이 대개 연한 황금색인 것에 비해 주줌치17은 연녹색을 띤다. 한모금 입안에 넣으면, 은은한 허브향이 입안 전체에 퍼지면서 잔향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게 특징이다. 허브향 때문일까? 술을 마시는데도 머리는 오히려 맑아지는 느낌, 마시는 이의 기분을 좋게 한다.

    이 술은 양주골이가전통주 이경숙 대표(63)의 작품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경기북부 양주시에 자리한 양조장인 양주골이가전통주는 2018년에 설립된 신생 양조장이다. 그러나, 이경숙 대표의 술빚기 경력은 20년이 넘는다. 20여년 전 40대 초반부터 간간이 계속 술을 빚어왔다. 이 대표의 또다른 술, ‘떠먹는 막걸리’인 ‘이화주’는 대한민국주류대상 3년 연속 대상을 받았다.

    양주골이가전통주 이경숙 대표가 자신이 만든 술과 누룩, 상패를 소개하고 있다. 이 대표는 올해 조선비즈가 주최한 대한민국주류대상에서 주줌치17 약주로 최고상인 ‘Best of 2021’을 수상했다. /박순욱 기자
    "제 술은 ‘저의 것'이 아니라 ‘(친정)엄마의 술'입니다. 제 술은 8할이 엄마가 만든 겁니다. 아니, ‘엄마의 술'이라고 하기에도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엄마 나이 열여섯살 때부터 평생을 바쳐 빚어온 ‘엄마의 술’이 세상에 없어질까봐 조바심이 나서 뒤늦게 술을 엄마한테서 배웠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40대 초반,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쯤입니다. 지금도 엄마한테서 배우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의상학을 전공한 이 대표는 전공을 살리는 대신 서예학원을 오랫동안 운영했다.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20~30대만 해도 놀기 좋아했던 그는 일년에 몇차례나 정성들여 술을 빚는 친정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디에다 파는 술도 아니고, 그저 가족과 친척들이 나눠먹을 술인데, 해마다 갖은 정성으로 넉넉하게 술을 빚는 엄마가 한편으론 답답했어요." 어릴 때부터 엄마가 술 만드는 걸 지켜보며 자랐지만, 정작 이 대표는 엄마의 술 항아리에는 근처도 가지 않았다. 밤을 새다시피하며 엄마가 술을 빚는 걸 보고선, ‘너무 힘들 것 같아' 도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 대표는 "엄마는 한번도 자식들에게 ‘술 빚는 걸 도와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고 말했다.

    ‘엄마의 술’을 거들떠보지도 않던 이 대표의 생각이 바뀐 것은 나이 마흔이 넘어서였다. "그때서야 약간 철이 든거죠. 그때까지만 해도 7남매 자식들 누구도 엄마의 술에 관심이 없었어요. 이러다, 엄마가 돌아가시면 정말 ‘엄마의 술'이 세상에 흔적조차 사라질 거란 생각이 퍼뜩 들었어요."

    그때부터 이경숙 대표가 20년동안 배워 만든 ‘엄마의 술'은 알코올 도수가 17도인 술이다. 이번에 최고상을 받은 주줌치17 역시 17도 술이다. 주줌치17 외에 이 양조장에서 만드는 탁주 ‘주줌치’, 약주 ‘주줌치2’ 모두 알코올 도수는 17도다. 단 하나, 떠먹는 막걸리 이화주는 8.5도다.

    알코올 도수 17도의 술은 어떤 술인가? 참이슬, 처음처럼 같은 희석식소주의 도수도 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이경숙 대표가 ‘엄마의 술'로 지칭해 만든 17도 술은 전혀 다른 술이다. "옛맛의 전통 약주가 갖고 있는 묵직함은 유지하면서도 목넘김이 부드럽고 처음 느낀 술향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술이 17도, 엄마의 술입니다."

    그가 만드는 17도 술은 수입산 주정에 물을 80% 이상 섞는 희석식소주 17도와는 차원이 전혀 다르다. 우선, 쌀, 누룩, 물 이외 일체의 화학 감미료를 넣지 않는다. 재료 품질이 비슷한 다른 프리미엄 약주와도 가장 큰 차이는 ‘시간’이다. 밑술을 만들어 발효를 시작해, 소비자에게 술이 전달되기까지는 거의 6개월이 걸린다. 발효와 1차 숙성이 2개월, 2차 저온숙성에 또 석달이 필요하다. 그후에야 병입을 거쳐 세상에 나가는 술이 ‘엄마의 술 17도' 술이다. 병입해서 소비자에게 전달하는데 또 한달 정도 걸린다.

    양주골이가전통주의 대표 상품인 주줌치17(사진 왼쪽)7과 주줌치2. 개똥쑥을 넣은 주줌치17은 연녹색을 띤다. 주줌치2는 쌀, 누룩, 물로만 만든 전통약주다. /양주골이가전통주 제공
    ‘시간이 곧 돈'인데 왜 이렇게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만들까? 이 대표는 "1차 숙성을 끝내고서도 추가로 영상 2도 정도에서 석달간 저온숙성한 덕분에 술 향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17도 술 답지 않게 목넘김이 아주 부드럽다"고 말했다.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부흥로 983번길12-27에 자리한 양조장에서 이경숙 대표를 만나, 술에 입문한 계기와 그를 술로 이끈 친정어머니 이야기를 한참 들었다. 양조장 앞 화단에는 매서운 겨울을 잘 버텨온 개똥쑥 두어 포기가 질긴 생명력을 뽐내고 있었다. 주줌치17에 들어가는 개똥쑥은 이곳이 아닌 별도의 밭에서 재배된 것을 쓴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1인 양조장답게 아담한 공간, 그러나 결벽증 있나 싶을 정도로 양조장은 청결했다. 먼저 들른 발효실에는 술항아리가 한개 뿐이었다. 뚜껑을 여니 알코올 향보다는 고소한 비스킷 향이 코끝을 스친다. 발효 중인 이화주였다. 고려시대부터 ‘왕가 여인의 술’로 인기였다고 한다. 대한민국주류대상 수상에다, 최근 종방한 인기 드라마에서도 이화주가 반짝 등장한 덕분에 이화주는 동이 났다.

    이어 숙성실로 발을 옮겼다. 10여개의 항아리에서 술이 익어가고 있었다. 실내온도는 16도. 먼저 들른 발효실 온도는 24도였다. 이곳 숙성실에서 두어달 지낸 술들은 곧바로 병입하지 않고 다시 건너편 저온숙성 냉장고로 보낸다. 향의 지속과 부드러운 목넘김을 위해서다. 오랜 시간과 정성을 거쳐야 비로소 세상에 나오는 술이 ‘엄마의 술’이다. 엄마의 술은 곧 ‘정성의 술’이고 ‘기다림의 술’이다.

    -이곳 양조장에서 만드는 술 제조공정을 소개해 달라.

    "밑술을 만들 때는 쌀, 누룩, 물 이외에는 일체의 첨가물을 넣지 않는다. 아스파탐 같은 화학감미료는 넣지 않고, 쌀도 양주골 쌀만 사용한다. 삼양주인 주줌치의 경우, 밑술을 빚고 나서는 이틀 간격으로 덧술을 더한다. 마지막 덧술은 고두밥으로 마무리한다. 발효는 약 2주간 진행된다. 그후에 숙성실로 옮겨온다. 이곳에서도 후발효는 계속된다. 숙성은 한달 보름 진행한다. 발효와 숙성이 결국 2달 걸리는 셈이다. 이후에 술을 거른다. 알코올 도수는 17도를 고집한다. 가수(물 첨가)를 하지 않는다. 가수를 하게 되면 맛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산패될 우려도 높다."

    -숙성 후 곧바로 병입하나?

    "그렇지 않다. 그 다음에 2차로 저온숙성을 한다. 영상 2도 정도에서 2개월 반, 3개월 정도 한다. 술 빚기 시작해, 다섯달 지나야 비로소 병입한다. 결국 소비자는 거의 6개월 지나서 술맛을 보게 된다. 6개월이 지나야 내가 소비자와 자신있게 만날 수 있는 술이 완성된다. 그만큼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든다. 삼양주나 이양주 거의 차이가 없다."

    양주골이가전통주 이경숙 대표가 조선비즈 김영수 대표로부터 대한민국주류대상 ‘Best of 2021’ 상을 받고 있다. /조선비즈 제공
    -개똥쑥 넣은 약주 주줌치17에 대해 자세히 말해달라.

    "부재료로 개똥쑥을 3.5% 넣었다. 대개 밑술 단계에 넣지만 경우에 따라 그 시기는 달라질 수 있다. 술의 향, 목 넘김, 발효과정 등의 ‘경우의 수’를 다 감안해서 어느 시점에 개똥쑥을 넣을지를 결정한다. 밑술 만들 때 개똥쑥을 넣어, 그 물로 술을 빚기도 한다. 밑술에 개똥쑥을 넣는 이유는 발효 시작 때부터 개똥쑥 향이 오랫동안 나도록 하기 위함이다."

    -주줌치17과 개똥쑥을 넣지 않은 약주 ‘주줌치2’와는 어떻게 다른가?

    "색, 향에 차이가 있다. 전통약주인 주줌치2는 은은한 황금색을 띠고, 주줌치17은 연녹색을 띤다. 주줌치17은 허브향이 느껴진다. 쌉싸름한 향이 아니라, 기분좋은 허브향이다. 그 향을 맡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술이다. 개똥쑥의 효능 중 하나가 ‘향만 맡아도 머리 아픈 게 치유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아는 요양원에 개똥쑥을 기증하기도 했다. 요양원 병실에는 어르신 특유의 냄새가 나는데, 개똥쑥이 이런 냄새를 없애주고 환자들 기분도 좋게 해주기 때문이다. 대단한 작물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대회 심사위원들은 ‘주줌치17이 부드러운 약재 향이 오래 간다’고 평했다.

    "작물(개똥쑥)을 넣은 술과 작물을 넣지 않은 술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개똥쑥 향은 은은하면서도, (술맛을)극대화시킨다. 개발 과정에서 향, 무게감, 목넘김 등등을 세밀하게 평가했다. 옛맛의 전통주는 대개 무게감이 있다. 주줌치17은 옛맛의 전통주와 달리, 목넘김이 부드럽고 향이 은은하다. 그러면서 향을 끝까지 끌고 간다. 잔향(피니시)이 아주 오래간다. 바디감은 강하지 않지만, 여운은 오래간다."

    -신맛과 단맛 정도는 어떤가?

    "신맛과 단맛의 조율을 특히 신경썼다. 요즘 술은 취하자고 마시는 술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술향이 오랫동안 남도록 술을 만들 때부터 신경썼다. 술 문화는 ‘반주 문화’다. 좋은 사람들과 같이, 아니면 혼자 마시더라도 이 술이 끝까지 나를 기분좋게 하고, 이 향을 오랫동안 기억하게끔 하고 싶었다. 그래서 술을 한모금 목 안으로 넘겼을 때, 입안의 목젖에서부터 코 안까지 ‘훅’ 하고 나오는 향이 끝까지 오래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마셔본 분들은 "주줌치17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져' 이런 반응이 많다. 하지만 알코올도수 17도는 결코 낮은 도수가 아니다. 흔히 마시는 희석식소주 도수다. 그러면서도 결코 독하지 않고 부드러운 게 주줌치17이다. 재구매가 상당히 많다."

    -술 이름 주줌치는 무슨 뜻인가?

    "술주머니란 뜻으로, ‘풍요와 소망을 담다’는 의미다."

    양주골이가전통주의 주줌치17 약주에 들어가는 개똥쑥을 건조하는 모습. 개똥쑥은 숙취, 고혈압, 당뇨 등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양주골이가전통주 제공
    -개똥쑥 재배는 언제부터?

    "2011년, 우연한 기회에 지인으로부터 개똥쑥 씨를 선물받아 밭에 뿌렸다. 내가 고향인 양주에 농토를 갖고 있었다. 800평 밭에 재배를 했다. 봄에 뿌리고 겨울을 나는데 처음에는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죽은 줄 알았다. 눈이 많이 온날 밭에 가서 땅을 파보니 파릇한 새싹이 땅 밖으로 나올 채비를 하고 있는 게 보여 너무 이뻤다. 고추대(고추 줄기)가 이불이 돼서 개똥쑥 싹을 보호하고 있었다. 상쾌한 허브향이 코끝에 느껴졌다.

    2013년 전주 국선생대회(술빚기대회의 하나)에서 개똥쑥을 넣은 탁주로 가작(동상) 상을 받았다. 당시는 본격적으로 술빚기 이전이고 양조장을 차리지도 않은 때였다. 그러나, 2011년 이후 개똥쑥 작물 재배는 꾸준히 하고 있었다."

    -이대표의 술을 ‘엄마의 술’이라 하는 이유는?

    "내 술은 오롯이 ‘엄마의 술'이다. 친정엄마에게서 물려받은 술이다. 부농인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밑에서 엄마는 10대부터 술을 빚으셨다. 외할아버지는 ‘기숙(친정엄마 이름)이가 만드는 술은 아내가 만든 술보다 맛있고 독해'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술이 독하고 맛있다’는 기준을 나는 17도로 삼았다. 삼양주로 덧담금을 계속 하면 알코올 도수가 거의 20도까지 오른다. 나는 17도에서 발효를 끝낸다. 더 이상은 도수가 올라가지 않도록 한다. 엄마의 술은 17도다. 그래서 가수를 일체 안한다. 물을 안 탄다."

    양주골이가전통주 이경숙 대표가 친정어머니 김기숙 어른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대표는 “내 술은 한마디로 엄마의 술"이라고 말했다. /양주골이가전통주 제공
    -왜 17도를 고수하나?

    "그 도수가 묵직하면서도 가장 목넘김이 부드럽다고 보기 때문이다. 옛술처럼 농축하고 걸쭉한 맛도 있으면서도 드라이(달지 않은)하고 상큼한, 가벼운 그런 목넘김의 술이 17도 술이다. 술로서 과하지도 않고 덜 하지도 않은 도수다.

    17도는 엄마 술의 중심 축이다. 내가 찾아낸 엄마의 술이17도다. ‘술이 어때야 하는지’를 엄마와 오래 얘기하면서 엄마의 술이 17도라는 걸 알게됐다. 17도는 돼야 ‘진하면서도 목넘김이 부드러운 술'이 된다. 실제로 내가 술을 빚어 엄마한테 시음을 부탁하면 17도에 맞춘 술이 가장 좋다고 하셨다. 17도는 적절히 진하면서도 목넘김이 부드럽고, 잔향을 오랫동안 끌고 갈 수 있는 술이다. 그래서 탁주든 약주든 물타지 않고 17도로 맞춰 술을 만든다."

    -17도는 약주치고는 꽤 도수가 높다.

    "옛날의 원주는 걸쭉하고 다소 무게감이 있다. 그러나, 내가 만드는 17도 술은 현대인의 입맛에 맞추어 부드러우면서도 향이 오래 지속된다. 그래서 나온 술이 주줌치17, 주줌치2다. 거의 3개월간 저온숙성한 효과로 맛이 부드러우면서도 향이 오래 지속된다. 약주 중에서도 17도는 결코 낮은 도수의 술이 아닌데도, 마시는 사람들은 부드럽다, 잘 넘어간다는 평이 많다. 시간과 정성(옛맛을 유지하면서도 옛맛을 한단계 뛰어넘을 수 있을까)을 기울인 덕분이다."

    -술을 빚게 된 계기는?

    "엄마와 가깝게 지내면서도 엄마가 평생 만들어온 술의 귀중함을 오랫동안 몰랐다. 그러다, 40대 들어서고나서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7남매 자식 모두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엄마의 술이 잘못하면 이대로 사장될 수도 있겠다’고. 그러면서 엄마 뿌리인 의성김씨 집안 고요리서인 ‘온주법’도 구해다 읽으면서 체계적인 술공부를 시작했다."

    -안동의 3대 고조리서인 온주법에서 배운 것은?

    "의성김씨 가문 내림주가 온주법에 나와 있다. 엄마의 술을 접하고, 배우고, 파고 들면서 ‘엄마의 술이 여기에서 유래했다는 걸 알게 됐다. 엄마의 술 제조법이 고스란히 이 문헌에 나와 있었다. 엄마는 가양주 제조와 관련해 체계적인 공부를 한 적이 없었지만, 이미 온주법에 나와있는 술빚기 방법을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대단한 분이라는걸 다시한번 깨달았다."

    -친정 어머니와 술 인연은?

    "엄마는 집안의 장녀였다. 자연스럽게 집안 일을 외할머니와 같이 했다. 고향은 양주 백석읍 복지리다. 가을 추수철에는 동네 사람들이 마실 술을 늘 빚었다. 엄마는 16살 때부터 술을 빚었다고 한다. 집안 대대로 내려온 레시피(술 제조법)대로 술을 만들었다. 오랫동안 술을 빚어왔지만, 상업적 목적으로 술을 빚지는 않았다. 연세도 있고, 작년부터는 집안 술을 빚지 않으신다. 그래서 내가 더 술 만들기에 집중하고 있다."

    -이 대표는 왜 더 일찍 술을 배우지 않았나?

    "엄마랑 같이 살면서도 나는 술을 몰랐다. 알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엄마도 술을 같이 빚어보자거나 이런 말씀은 안하셨다. 내가 40대 초반에 들어서야 ‘엄마, 증류주는 어떻게 만들어요?’ 여쭤보니까 아무 말 안하시고 어느날 오라는 연락을 주셨다. 그래서 갔더니 이미 술을 다 만들어 소주고리에서 증류주를 내리고 계셨다. 시연을 해서 보여주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는 먼저 술 얘기를 꺼내지는 않으셨다. 7남매를 두시고도 자식 누구에게도 술 만들기를 억지로 시키지는 않았던 것이다. 엄마의 숨소리, 엄마의 움직임 그것을 내가 혼자 오롯이 느끼면서 뒤늦게나마 엄마의 술을 승화(유지 발전)시켜야 되겠다 생각했다."

    -술 빚기 전에는 무얼 했나?

    "대학에서 의상학을 전공했지만 서예학원 운영을 35년간 했다. 어릴 때부터 글 쓰는걸 좋아했다. 주줌치 술병 라벨의 글씨도 직접 썼다."

    -술 빚기와 학원 운영을 같이 했나?

    "술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 서예학원은 천천이 정리해 나갔다. 2002년부터는 ‘엄마의 술을 어떻게 하면 체계화해서 마무리를 지을까? 엄마 돌아가시기 전에’ 이런 생각이 앞섰다. ‘묵묵히 평생을 술 빚으셨던 한 여성의 정성을 내가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엄마의 술’이 가치가 있는 술이라는 걸 오랫동안 모르고 살았다. 세상에 많은 술이 있지만 세상에 하나뿐인 엄마의 술이 내겐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그때서야 깨달은 것이다."

    -친정엄마로부터 배운 것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술 발효가 가장 중요하고도 힘들었다. 40대 초반에 처음 술을 배울 당시, 사용한 기계라고는 온도계 하나였다. 발효온도 체크하는 자동시스템, 이런 건 생각하지도 않았다. 항아리에 밑술을 담고, 항아리를 이불로 싸고, 온도계 하나 꽂아놓고 밤새 지켜보는 식이었다. 엄마는 온도계 사용도 하지 않았다.

    집의 작은 골방에다 항아리를 놓고 발효를 시켰다. 술이 행여 발효 도중에 넘칠까봐 잠 못자고 지켜봤다. 하루는 깜빡 잠이 들어 온도가 오르는 걸 못봤는데, 술이 넘치기도 했다. 술 내부 온도가 25도를 넘어서면 위험하다. 술이 넘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발효온도는 20~25 사이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깜빡 졸다가 그 온도를 넘어서는 걸 놓쳐버린 적도 있었다. 그러면 술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온도였다. 술항아리 내부온도와 외부온도는 또 다르다. 발효가 왕성할 때 내부온도가 외부보다 높다. 그래서 내, 외부 온도를 다 재야 한다. 나름대로 터득한 온도 데이터(어느 온도에서 최적의 발효가 진행되는지)가 있다. 엄마는 온도계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온도를 재면서 엄마의 술빚기를 체계화하려고 했다. 엄마는 그냥 느낌으로 술을 빚었다. 물론 엄마의 느낌, 직관은 대단했다."

    -3년 연속 대상을 받은 이화주도 소개해달라.

    "직접 만든 쌀누룩인 이화곡으로 만든다. 양주골 쌀로 누룩을 만든다. 그 쌀로 누룩을 디디고, 그걸 법제하고 한달 정도 기다렸다가 이화주를 빚는다. 이화주는 상당히 빚기 힘든 술, 고난이도의 술이다.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쌀가루로 반죽을 만들어 작은 도넛 모양의 구멍떡을 먼저 만든다. 이게 밑술의 시작이다. 끓는 물에 구멍떡을 익혀 꺼내서는 또 다 잘게 쪼갠다. 누룩과 잘 섞이도록 합체하려면 손으로 일일이 잘게 나눠야 한다. 물은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단맛이 강하다. 과일향도 난다. 때로는 비스킷 향도 난다. 고소한 맛(실제로 양조장을 방문해 발효실에 항아리 속의 이화주 향을 맡아보니 고소한 향이 은은하게 느껴졌다)도 난다. 마시는 술이 아니라, 떠먹는 막걸리로 ‘푸딩 막걸리’란 별명도 갖고 있다. 외국인들이 많이 신기해한다. 도수는 8.5도."

    떠먹는 막걸리인 이화주. /양주골이가전통주 제공
    -이화주 유래는?

    "고려시대 왕가의 술이었다. 나는 여인의 술이라고 한다. 알코올 도수가 낮으니 간식으로 먹기도 좋다. ‘임금이 이화주를 먹고 자면 다음날 아침에 황금변을 봤다’는 얘기도 있다. 식이섬유가 그만큼 많다는 반증 아니겠나. 체내 장 활동을 돕는 유산균 덩어리다."

    -이화주를 먹기 좋은 때는?

    "식전, 식후 다 좋다. 음식을 먹기 전 식욕을 돋우는데도 좋고, 식사가 다 끝났을 때도 과일, 견과류 등과 함께 먹으면 디저트로도 훌륭하다. 식사 상관없이 아무 때나 크래커에 찍어 먹어도 좋다. 식빵에 발라 드신다는 고객도 있다. 혼술, 홈술 시대 아닌가? 적당하게 기분좋게 해주는 술이다.

    이화주는 안주가 없어도 상관없다. 단맛, 과일향, 고소한 향이 있어 술 자체가 안주를 겸하고 있다. 그래도 음식 페어링을 하자면 떡갈비, 치즈 바른 크래커, 토핑 얹은 바게트 빵과 잘 어울린다."

    양주골이가전통주 이경숙 대표가 직접 만든 쌀누룩 ‘이화곡’을 들어보이고 있다, /박순욱 기자
    -이화주 누룩인 이화곡은 직접 만드나?

    "그렇다. 이화곡은 연중 수시로 계절 관계 없이 만들 수 있다. 누룩이 술맛을 좌지우지한다. 그래서 이화주에 들어가는 쌀누룩 이화곡은 직접 만든다. 하지만, 주줌치 시리즈 술들은 술맛의 안정화를 위해서 당분간은 밀누룩을 사서 쓰고 있다.

    2018년 1월까지는 직접 만든 누룩으로 주줌치를 만들었으나, 본격적으로 출시된 2018년부터는 누룩을 사서 사용하고 있다. 아무래도 누룩 상태에 따라 술맛이 다소 달라질 수 있는데, 이를 소비자가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술맛이 들쑥날쑥하다) 싶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결정적인 계기가 한번 있었다. 내가 만난 어떤 분에게서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그분에게 내가 전통주 설명을 하는 자리였다. 그분 말인즉 ‘나는 우리나라 전통주는 안 마신다. 믿을 수 없다. 대신 와인만 마신다. 어딜 가더라도 와인잔은 갖고 다닌다.’ 그말에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 국민이 어떤 연유로 내 나라 술을 못믿는다고 하나? 그것도 그말을 과감하게 할 수 있을까? 꽤 사회적 지위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때 결심했다. ‘그래 두고보자, 우리 전통술을 무시하는 생각을 완전하게 바꿀 술을 내가 만들어 코를 납작하게 해주겠다'고. 실제로 최근 연락이 왔다. 대한민국주류대상에서 최고상을 받았다는 뉴스를 본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 술을 맛보려면 한달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답했다. 술이 다 팔린데다 새로 술을 만들려면 또 한달 걸리기 때문이었다. 속으로 통쾌했다. 전통주의 자존심을 지킨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 이야기와 누룩은 무슨 상관인가?

    "전통술 맛이 들쑥날쑥한 것은 누룩 탓이 크다. 전통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도 원인을 찾아보면 결국 누룩이다. 그렇다고 누룩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술맛의 안정성을 위해서 당분간은 품질이 일정한 외부 누룩을 쓰기로 한 것이다. 그런 생각을 굳히는데는 아까 얘기한 그분의 이야기가 영향을 미쳤다.

    좋은 술은 직접 만든 누룩으로 빚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잠정적으로 주줌치 술은 누룩을 잘 만드는 곳의 것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지금도 밀누룩을 만들고는 있지만, 판매하는 주줌치술에는 아직 사용하지 않고 있다. 밀누룩의 상태가 안정화 단계에 도달했다고 판단되면 그때는 자가 밀누룩으로 주줌치 술을 만들 작정이다. 우선은 소비자와 자주 만나야 하기 때문에 자가 누룩 사용은 잠시 접어둔 상태다."

    양주골이가전통주 양조장 전경. 경기북부 양주에 있다. /양주골이가전통주 제공
    -양조장 설립은?

    "2016년 9월에 제조면허는 받았지만, 정상적으로 활성화한 것은 2018년 8월부터라고 본다. 그 이전에도 오랫동안 술을 빚어왔다. 자가누룩으로 여러가지 술을 만들면서 준비를 해왔다. 술빚기 햇수를 따지자면 20년쯤 된다."

    -1인 양조장의 애로사항은?

    "1인다역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제조부터 판매, 유통까지 혼자 책임져야 한다. 지금은 다소 과부하가 걸린 것같다. 친정 남동생이 온라인판매를 도와주고, 남편 역시 서류작업을 돕고 있다. 나는 제조에 집중하고자 한다. 로고 도안이라든지 디자인은 계속 내가 하고 싶다. 주줌치 로고 글자는 직접 썼다."

    -가격이 다소 세다. 가격 정할 때 감안한 사항은?

    "주줌치 500ml 탁주가 2만5000원, 주줌치2 약주는 3만원, 개똥쑥이 들어간 주줌치17은 3만2000원이다. 이화주 120ml (8.5도)는 1만3000원.

    숫자로만 따질 때는 가격이 다소 높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어떤 제품을 놓고 봤을 때, 경쟁관계에 있는 비슷한 제품과 가격만 비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제품 품질에 대한 제조자의 생각, 욕심,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가 얼마든지 다를 수 있고, 그에 따라 수준이 천차만별인 제품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가격만 단순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알코올 도수, 곡주 제조법, 제품 후관리를 어떻게 했느냐(1차 숙성 후 바로 병입하지 않고 3개월간 저온숙성을 더 거쳤다), 또 이 술의 향은 어떻게 관리해서 이 향을 얻어냈느냐, 같은 17도라도 목넘김의 정도는 다 다르지 않겠나? 목넘김이 걸쭉하고 입안에 텁텁함이 남는 17도인가? 아니면 목넘김이 부드러우면서도 상쾌하고, 처음 맡은 향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17도인가? 등등에 따라 가격은 얼마든지 차등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내 술에 대한 자부심을 양보할 수 없다. 남편도 다소 가격이 세다는 의견이었지만 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중장기 목표가 있나?

    "그런게 있어야 하나? 특별한 목표는 없다. 우리 전통술의 우수함을 세계에 알리고는 싶다. 우선은 일본 수출을 추진 중이고 기회가 닿는다면 미국, 중국도 노크하고 싶다. 세계지도에 양주골이가 전통주의 진출 국가를 하나하나 표시해 나가고 싶다.

    세계화하는 술, 세계에서 인정받는 술을 계속 만들 방침이다. 당장은 생산량을 크게 늘릴 엄두가 안 나지만. 술에 관한 한 정답은 없다. 끝까지 찾아가는 길 위에서 내가 답을 얻을 것이고, 언젠가는 나도 모르게 그 길의 끝(목표)에 서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게 기대가 된다. 그러나 그 길에 도달하기 위해 계속 공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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