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부 산하 한국해양진흥공사와 HMM(011200)등 국적선사들이 국내 합작 컨테이너 박스 제조업체 설립을 추진한다. 컨테이너 박스를 구하기 어려운데다가 가격까지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 국내 컨테이너 박스 제조업체들이 중국 업체와 가격경쟁에서 밀려 생산을 포기했던 점을 고려할 때 지속 가능할지가 관건이다.
9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해양진흥공사는 HMM, 한국해운협회 등과 지난 5일 만나 국내 합작 컨테이너 박스 제조업체 설립 방안을 제안했다. 합작 회사의 부지 등 총 투자 규모는 1000억원정도로 잡았다. ‘씨스포빌’을 최대 주주로 HMM과 해운협회가 각각 35%와 15%가량의 지분을 출자하는 방식이다. 씨스포빌은 해상 여객운송 사업 등을 하는 업체로 중국에서 컨테이너를 제작하는 광동현대모비스유한공사의 지분 100%를 갖고 있다.
연간 생산 목표는 TEU(6m 길이 컨테이너 1개) 기준 10만개로 세웠다. 다만 첫 논의였던 만큼 구체적인 시점 등은 확정되지 않았다. HMM 관계자는 "지난주 처음으로 제안을 받고 내부 검토에 들어간 상태"라고 말했다.
해양진흥공사는 국적 선사들의 안정적인 컨테이너 박스 공급을 위해 국내 제조업체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들어 컨테이너 박스가 부족해 수출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컨테이너 박스는 CIMC(중국국제해운컨테이너그룹)를 비롯한 중국 업체들이 전세계 제품의 90%를 생산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지난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생산에 차질을 빚은 뒤 공급량을 좀처럼 늘리지 않고 있다. 이후 컨테이너선 시황이 크게 뛰면서 컨테이너 박스가 부족해졌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북미나 유럽으로 갔던 컨테이너 박스가 물류난으로 제때 돌아오지 않으면서 품귀현상이 극심해졌다.
가격도 급등했다. 새로 만드는 컨테이너 박스 가격은 FEU(12미터 길이 컨테이너 1개) 기준 6000달러대, TEU 기준 3000달러대에 진입했다. 1년여 사이 2배 수준이 됐다.
컨테이너 박스 수요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컨테이너선 발주가 이어지는 만큼 신조 컨테이너 박스가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통상 컨테이너선에 실을 수 있는 것보다 선사는 여유분을 포함해 1.5배가량의 컨테이너 박스를 확보한다. 현재 전세계 컨테이너선 수주 잔량이 100만TEU인만큼 단순 계산하면 해운시장에만 앞으로 150만TEU가량의 컨테이너 박스 수요가 더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에 인도 등도 컨테이너 박스 자체 생산에 나섰다. 피유시 고얄 인도 상무부 장관은 지난 5일 열린 ‘토종 컨테이너 박스 제조’ 웨비나에서 "더는 수입에 의존하지 말고, 해양 경제에서 인도가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컨테이너 박스를 자체 생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트남 최대 철강업체인 호아팟 그룹도 컨테이너 박스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베트남 남부지역에 첫 제조공장을 지은 뒤 동부와 북부 하이퐁항 인근에도 공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2022년 2분기부터 연간 컨테이너 박스 50만TEU(1TEU는 6m 길이 컨테이너 1개)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컨테이너 박스 품귀현상이 계속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국내 제조업체를 설립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코로나 백신 보급에 따라 물류망이 안정되면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큰데, 이때는 국내 컨테이너 박스 제조업체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1990년대까지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던 국내 컨테이너 박스 제조업체들이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밀려 2000년대 들어 생산을 접었던 경험도 있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의 독점 구조를 깨야할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국내 컨테이너 박스 제조업체가 가격이 내려갔을 때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해양진흥공사 역시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해양진흥공사 관계자는 "컨테이너 박스가 실제로 부족한지, 이같은 현상이 지속될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는 상황"이라며 "우선 실수요자인 선사들의 의견을 구한 단계다. 실제 설립 추진까지는 논의할 점이 많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