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자금 덕에 벤처 펀드 폭증…“한 달 만에 1조원 돌파”

조선비즈
  • 노자운 기자
    입력 2021.03.08 06:00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시중 자금이 넘쳐나는 가운데,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의 조성액이 월 기준으로 1조원을 돌파했다. 지난 한 해 동안 총 6조원 넘는 규모의 펀드가 결성되며 사상 최대치를 경신한 데 이어, 올해도 투자 재원 증가는 계속되고 있다.

    8일 벤처 투자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1월 국내 벤처캐피탈(VC)들이 결성한 벤처펀드의 총 약정금액은 1조원을 기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앞서 지난해에는 1분기 결성액 총합이 5077억원에 그쳤는데, 올해 들어서는 한 달 동안에만 그 2배를 달성한 것이다.

    최근 5년 간 벤처펀드 결성 추이와 2020년도 분기별 벤처펀드 결성 추이. /중소벤처기업부
    벤처펀드 결성액은 지난해 초부터 큰 폭으로 증가해왔다. 1분기와 2분기에 각각 5077억원과 6778억원을, 3분기에는 1조6875억원을 기록했다. 4분기에는 3조6946억원을 돌파했다. 지난 한 해 동안 결성된 펀드 총액은 6조5676억원으로, 전년도보다 54.8%나 증가했다.

    이처럼 벤처 투자 시장에 많은 자금이 투입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저금리 기조의 지속으로 인한 유동성 확대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시중 통화량을 나타내는 광의통화(M2)는 3191조3000억원을 기록해 11월보다 13조원 증가했다. 지난 한 해 동안 증가한 액수는 총 260조8867억원이었다.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86년 이래 최대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유동성 확대가 증시 활황으로 이어지자 자연스레 미래 투자금 회수에 대한 기대 역시 높아져, 벤처 투자가 가지는 매력도 커졌다. 지난해 4분기 중 유가증권·코스닥시장에 입성한 26개사의 상장 후 한 달 뒤 주가를 분석해보면, 평균적으로 공모가보다 107% 높았다.

    인공지능(AI) 기반 얼굴 인식 기술 업체 알체라는 상장 후 한 달간 공모가 대비 229%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수인베스트먼트는 2019년 신한캐피탈과 함께 이 회사에 30억원을 투자했는데, 보유 주식 88만주에 대한 보호예수가 풀리고 나서 지분 전량을 장내 매도해 276억원을 손에 넣었다. 통상적으로 VC의 보유 지분에 대해서는 상장 후 1개월의 보호예수 의무가 적용된다.

    벤처 투자의 수익성이 좋아지자 은행권과 정부 부처에서도 벤처 펀드에 대한 출자금을 늘려가고 있다.

    한국산업은행과 시중은행 등이 출자하고 한국성장금융이 운용하는 모(母)펀드의 규모는 지난해까지 총 5조4000억원이었는데, 올 상반기 중 4400억원이 추가로 투입된다. 한국성장금융이 운용하는 모펀드는 시드머니(seed money·종잣돈)가 돼서 총 45조원 규모의 자(子)펀드에 출자된다.

    이 외에도 중소기업청·문화체육관광부·특허청 등 정부 부처가 올해 안에 총 1조5000억원을 출자해 3조원 규모의 벤처 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정부 부처는 앞서 2019년에는 1조원을, 2020년에는 1조5000억원을 벤처 펀드에 출자한 바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기관인 한국벤처투자 관계자는 "지난 몇 년간 정부 부처가 돈을 출자하고 민간 VC에서 운용하는 벤처 펀드의 투자 수익률이 꾸준히 개선돼왔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무상으로 지원금을 제공하기보다는 펀드를 조성하고 운영은 민간에 맡기는 쪽을 선호하는 것 같다"며 "정부도 이제 초기 기업 육성을 ‘지원’보다는 ‘투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벤처 투자 시장에 자금이 넘쳐나다 보니 투자를 받는 기업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크게 늘어났다. 벤처 펀드는 급증하고 있는 반면 창업 기업 수는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만 206개의 벤처 펀드가 새로 조성돼 총 1076개 펀드가 운용되고 있다. 4년 전인 2016년에 운용 중이던 벤처 펀드가 603개에 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용 재원이 현저히 증가한 것이다.

    이 때문에 펀드를 운용하는 VC 사이의 경쟁도 치열하다. 과거에는 VC가 우위의 입장에서 피투자사를 고르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제는 역으로 투자하기 위해 투자사끼리 서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국내 한 VC 관계자는 "벤처 투자 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해 피투자사 입장에서는 어느 VC의 돈을 선택할지 고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그러다 보니 VC들은 단지 돈을 투자할 뿐 아니라 피투자사의 인재 채용 등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등 서비스 다각화를 통해 그들의 마음에 들고자 노력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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