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광명·시흥과 함께 지정된 ‘부산 대저’… "두 달 거래액 435억, 도로도 사들여"

입력 2021.03.07 06:00

"여기 땅 투자할 사람들은 몇 년 전부터 했지예. 부산에서 이만한 빈 땅을 어디서 찾습니꺼."

지난 5일 오전 부산 강서구 대저동 일대에 도착하자, 너른 논밭과 큰 도로 위를 달리는 화물차들이 먼저 보였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컨테이너로 지어진 시설물과 1~2층짜리 주택을 비롯해 소규모 상가, 학교와 우체국 등이 있었다. 고층 건물이 없다보니 멀리 부산교도소 등도 시야에 들어왔다. 차로 약 7분 거리에는 김해국제공항이 있다. 낙동강변 유채꽃밭과 대저토마토가 이 지역 명소, 명물이다.

기반시설이 풍부한 부산의 주요 주거·관광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부산 강서구 대저 일대는 요즘 부동산 시장에서 매우 뜨겁다. 지난달 24일 정부가 수도권(광명·시흥)과 광주 산정과 함께 대도시권의 주택 공급을 위해 지정·발표한 신규공공택지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발표한 계획에 따르면, 2027년까지 김해공항 북동쪽 약 176만3000㎡(53만여평) 규모의 택지에 연구개발특구를 조성하고, 2029년까지 연구개발특구 바로 옆 약 243만㎡(74만평)부지에 주택 1만8000가구를 공급한다.
개발 계획이 발표된 전후로 이 지역 부동산 시장은 크게 들썩였다. 지나는 사람이 드물어 한산한 지하철 대저 역사 풍경과는 대비됐다. LH 직원의 투기 의혹으로 시끄러운 경기도 광명·시흥지구로만 사람들이 몰려간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부산 강서구에서 토지·공장 거래를 주로 하는 H공인중개사 대표는 "2017년에 김해 신공항 확장 소식 때문에 이 지역 땅 거래가 활발했다가 다소 잠잠해지더니 지난 달 정부 발표 전후로 투자자들 문의가 다시 많아졌다"면서 "개발 계획이 나오면 어디나 그렇다"고 했다.

본지가 현지 부동산과 부동산 정보서비스업체 밸류맵의 분석자료,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등을 통해 취재한 결과, 올 들어 2월 말까지 두달 간 부산 대저 일대 논·밭과 도로 등 땅의 전체 매매대금은 약 435억원이었다. 1월에 106억7573만원, 2월엔 세 배 수준인 328억4746원어치가 거래됐다. 작년 한 해 동안 부산 대저 일대 땅 거래액(1241억여만원)의 54%에 달하는 규모의 땅 거래가 두 달만에 이뤄진 것이다.

지난 4일 기준 올해 1~2월 두달 간 부산 대저 일대서 매매거래됐다고 신고된 토지는 약 3만7442.01㎡(약1만1326평)였다. 전체 125건 중 78건이 지분거래였다. 소액투자도 여럿이었다는 뜻이다. 10㎡짜리 도로는 1377만원, 20㎡짜리 도로는 2296만원에 팔렸다. 투자규모가 꽤 큰 건도 눈에 띄었다. 1종 주거용지의 334㎡짜리 밭(전)은 4억5297만원에 지분거래됐고, 대저1동 3672㎡짜리 1종일반주거용지(답)은 48억7000만원에 주인이 바뀌었다. 개발제한구역에 있는 면적 661㎡ 밭도 2억8000만원에 매매됐다.

지역 업계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땅 투자자들은 이 지역 땅을 속속 사들였다. 부산 강서구 명지동 G공인중개사무소장은 "이미 2016~2017년에 대저동, 명지동 등 강서구 일대 땅 거래가 상당했다"면서 "명지에 비하면 대저는 지금도 땅값이 싼 편이라 일부 투자자들에게는 ‘기회’라는 인식이 있다"고 했다.

2017~2020년 부산 강서구 대저 일대 땅 거래량을 보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거래량이나 매매규모가 감소하다가 2020년부터는 다시 늘기 시작했다. △2017년 총 거래면적 23만3719.2㎡·총 거래액 1834억2575만원, △2018년 12만1936.5㎡·1024억6762만원, △2019년 12만1245㎡·607억5164만원, △2020년 13만7099.3㎡·1241억7448만원이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지난 2017년 4월 11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김해신공항 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가 발표됐는데 그 전후로 정보를 먼저 알았거나 지역 개발 호재를 기대한 투자자들의 발길이 이어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부산시가 서북권 개발을 계속 추진하고 있고, 대저동에 앞서 인근 명지동 639만8000㎡ 면적에 조성한 명지국제신도시가 새 주거지로 변신하면서 강서구 일대 부동산 시장에 개발 압력이 커지고 있다고 본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다.

정부는 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투기 등을 억제하기 위해 토지거래허가 지역을 지정하겠다고 밝혔지만, 발빠른 투자자들을 배겨내진 못했다. 강서구청 관계자는 "지난 달 발표된 택지 중 공공주택이 조성될 땅은 토지거래허가구역과는 별도로 지자체가 수용해 보상이 들어갈 곳이라 매매 거래 자체가 아예 불가한데, 이달 2일부터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된 것이라 그 이전까지는 매매가 가능했다"고 했다.

지난 2014년 부산 강서구 대저 1·2동 등은 구청의 허가를 받아야 거래할 수 있는 ‘토지거래 허가구역’에서 해제됐다가 2018년 재지정됐다. 부산 강서구청에 따르면 이달 2일 기준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지난달 신규택지로 발표된 대저동 일대 △뉴스테이사업지구, △송정지구, △둔치도, △연구개발특구, △항공클러스터, △부산연구개발특구, △서부산권복합산업유통단지, △가덕도 등 크게 8개 구역이다.

이창동 밸류맵 팀장은 "최근에 부산 대저 일대의 매매거래된 땅들을 보면 보상금을 노리는 게 아니라 지역 개발에 따른 땅 가치 상승을 노린 접근이 보인다"며 "개발지를 사는 게 아니라 개발지의 바로 인근 도로 옆쪽을 사들인 식"이라고 했다. 그는 "토지 거래가 제한돼 있는데다 보상을 노리고 현 시점에 매입하면 공시지가 등을 근거로 보상액이 책정되기 때문에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는데 이를 알고, 토지를 매입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감정평가업계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수도권과 지방광역시의 토지보상은 공시가격의 1.5배 이하 수준으로 이뤄진다.

5일 부산 강서구 대저동 일대 전경. /허지윤 기자
투자자들의 마음은 들끓고 있지만 오랫동안 대저동을 바라본 이들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대저동에서 만난 박 모씨(64)는 "여기는 옛날에 농사짓던 사람들이 많이 살던 곳인데 지금은 사는 사람이 많지 않고 거의 다 농지·공장지대로 바뀌었다"면서 "모래밭인 토양 특성 등을 이유로 고층을 못 짓는다는 말도 있었는데 이제는 기술이 좋아져서 그건 문제가 안 된다고 하더라. 그나저나 지방은 인구가 감소하는데 지금은 땅값 집값 오른다고 해도, 이렇게 집을 지었다가 나중에 빈 집이 속출하면 어쩌냐"고 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국토부는 대저지구를 부산연구개발특구와 연계하는 자족도시로 조성할 방침이다. 부산연구개발특구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부산 강서구 대저동 일대 567만5000㎡ 부지에 조성한다. 연구개발과 기술사업을 접목한 첨단복합지구다. 전시 컨벤션 센터, 비즈니스 센터, 호텔, 상업 건물을 포함한다.

자족용지 근처에는 창업지원·청년주택을 배치한다. 지구 근처 중앙공원, 낙동강 대저생태공원과 연계하는 62만㎡ 규모 녹지공간도 조성한다. 공원과 연계한 생활 SOC를 설치하며, 보육·교육·문화·복지 관련 복합 커뮤니티 시설을 함께 구축할 계획이다.

부산 대저 지구 개발구상./ 자료=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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