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인 것 같지만"… 문닫는 상가 많아도 웃지 못하는 철거업계

조선비즈
  • 유병훈 기자
    입력 2021.03.03 06:00

    "폐업하는 곳이 많으니 일감은 확실히 좀 늘었어요. 그런데 우리 매출은 그대로예요. 사업 환경은 나빠졌으니…"

    지난달 말 찾은 서울 서대문구의 한 철거업체 사장 A씨는 "철거업이 나라가 어려워야 호황인 업종 같아 요즘 사정이 좋다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또 철거한 물품을 되팔 곳이 마땅치 않은 데다 철거업체 수가 늘어나 경쟁도 치열해졌다고도 했다.

    상점 폐업으로 철거 작업이 이뤄지는 현장/전국철거인연합회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소상공인·영세자영업자들이 대거 문을 닫으면서 철거업계가 바빠지고 있다.

    3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전국 17개 시도 상가업소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현재 전국 상가 점포는 241만6252개로 3분기(255만9655개)보다 14만3403개 줄었다. 3개월 동안 일평균 1559개의 상가 점포가 문을 닫은 셈이다. 지난 2019년 4분기와 비교하면 23만3758개(8.8%)가 감소했다.

    철거업체들은 특히 소규모 식당·학원의 폐업을 많이 접했다고 했다. 소규모 식당들의 경우 영업 제한으로 외식 수요가 급감하자 버틸 재간이 없었고, 학원들도 5인 이상 집합금지로 대면 수업이 어려워지면서 임대료 부담을 견디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A씨는 "실물 경제가 어려워지면 일감이 늘어나는 ‘슬픈 호황기’에 접어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호황이 마냥 반가운 것은 아니다. 매출과 이익이 따라 늘질 않아서다. 철거업체 관계자들은 우선 폐업이 는 만큼 일감이 늘지는 않았다고 했다. 일산의 한 철거업체 대표인 B씨는 "폐업하는 가게가 늘었지만, 철거도 돈이 드는지라 어려운 소상공인들은 철거도 하지 못한다"면서 "철거할만한 업체들은 지난해 이미 모두 철거한 상황"이라고 했다.

    부산 지역에서 철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정호광 젊은청년산업개발 대표는 "일은 늘었지만 폐업 상공인들이 어려워지면서 단가도 함께 내려가 매출 상 변동은 없다고 봐도 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철거업체 내 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호황을 체감하기 어려운 이유다. 서울 송파구에서 철거업체를 운영하는 고용준 철거인연합회 대표는 "일감 기준으로는 최대 20~30%까지 늘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일감이 늘어난 만큼 신규 철거업체들의 진입도 체감상 20%가량 늘어나 매출 상 큰 차이는 없는 듯하다"고 했다.

    여기에 부수적인 수입이 줄어든 영향도 큰 상황이라고 한다. 철거업체는 관행적으로 점포 철거 후 남겨진 기자재 중 재사용이 가능한 것들을 되팔아 부수입을 거뒀다. 구매처는 주로 신규 창업하는 점포였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창업 수요가 줄어들면서 이같은 수입마저 없어졌다. 이에 철거 현장 인력이 잔여 물품을 직접 가져가는 경우가 늘었다고 한 철거업체 대표는 전했다.

    철거업계는 정부가 폐업 지원금을 늘려주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한다. 현재는 폐업 관련 철거 지원금이 업장 면적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데, 최대 액수가 200만원이다. 철거 비용과 인건비용이 모두 오른 상황에서 이 금액으로는 33㎡ 이하 소형 매장 철거도 어렵다는 것이다.

    정호광 대표는 "진짜 어려운 자영업자들은 당장 죽게 생겼으니 눈물을 머금고 폐업하는 건데, 건물 임대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철거를 통한 원상복구 비용까지 마련해야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가혹한 일"이라며 "이런 분들이라도 폐업지원금 이상으로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고용준 대표도 "정부의 예산에도 한계는 있겠지만, 폐업 철거 지원액을 300만원까지든 500만원까지든 늘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매일 폐업 현장을 접해야 하는 철거업자들은 속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고용준 대표는 "경기 호황 때 리모델링을 위해 철거하는 것과 불황 때 폐업으로 철거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면서 "4차 재난 지원금 논의가 시작됐다지만, 지급시기까지 기다릴 여력도 없이 폐업하는 소상공인들을 접하면 뇌리에 오래 남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호광 대표는 "철거업계의 일감이 늘었다는 것만으로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어 마음이 힘든 측면도 있다"며 "너무 영세하거나 어려운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폐업은 봉사 차원에서 돈을 받지 않고 철거한 경우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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