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생산 4배 확대, K-주사기 개발 뒤엔 이 남자가 있었다...삼성전자 '제조의 달인'

조선비즈
  • 권오은 기자
    입력 2021.02.28 06:30

    ‘제조의 달인’ 김종호 삼성전자 스마트공장지원센터장
    백신 20% 늘린 주사기 금형, 첫 회의 후 나흘만에 제작
    작년 코로나 사태 속 마스크, 진단키트 생산도 끌어올려

    현장에 그가 있었다. 지난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초기 전국에서 마스크 부족 문제가 불거지자 그는 중소업체로 달려가 일일 생산량을 2만5000개에서 10만개로 끌어올렸다. 반년 이상 걸린다던 코로나 백신 접종을 위한 주사기 양산도 두달 만에 실현했다. ‘마법’이나 ‘기적’이라는 표현이 따라붙었다. 김종호 삼성전자 스마트공장지원센터장의 이야기다.

    28일 삼성전자(005930)와 중소기업벤처부 등에 따르면 김 센터장은 풍림파마텍의 최소잔여형(LDS) 주사기가 세상에 나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반 주사기로는 백신 1병으로 5회 접종할 수 있지만, LDS 주사기를 이용하면 6회 접종이 가능해 같은 양의 백신으로 접종자 수를 20% 늘릴 수 있다. 전북 군산시에 있는 풍림파마텍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해 "우리 주사기의 우수성을 국민께 알려드리게 돼 매우 기쁘다"고 치켜세운 의료기기 제조업체다.

    김종호 삼성전자 스마트공장지원센터장이 지난해 11월 중소기업 정책포럼에서 강연하고 있다. /조선DB
    ◇ 화이자 "주사기 고민" 언급 이후 2개월 만에 美 FDA 승인까지

    시작은 지난해 12월 삼성 측 임원과 미국 제약사 화이자 임원의 영상통화였다. 당시 삼성은 한국에 백신을 들여오기 위해 전방위로 뛰었고 화이자는 여러 나라로부터 백신을 달라는 요청에 시달릴 때였다. 영상통화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화이자 고위급 임원과의 개인적인 인연이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과 화이자의 통화 말미에 ‘주사기’가 화두에 올랐다. 화이자는 일반 주사기로 백신을 접종하면 백신의 약 20%가 낭비돼 고민이라는 얘기를 했고, 삼성은 주사기를 활용하면 백신을 확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삼성은 곧바로 주사기 생산업체를 찾았고 특허나 기술 측면에서 풍림파마텍을 가장 적합한 업체로 꼽았다.

    지난해 12월 24일 김 센터장과 풍림파마텍, 중기부가 처음 만나 머리를 맞댔다. 시급한 것은 LDS 주사기 시제품 생산을 위한 ‘금형’이었다. 중소기업이 정교한 금형을 준비하려면 최소 한달은 걸릴 일이었다. 하지만 김 센터장과 동료들이 나서면서 나흘 만인 27일에 금형을 마련했다. 이어 30일 시제품을 생산하고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래픽=송윤혜
    풍림파마텍은 올해 1월 2일 화이자에 시제품을 전달했고 일주일 뒤인 1월 9일 화이자로부터 "기능이 탁월하다"는 초기 시험 평가를 받았다. 삼성과 중기부의 지원에 힘 입어 풍림파텍의 LDS 주사기는 1월 15일 식약처의 국내 사용 허가에 이어, 이달 17일(현지시간)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긴급사용 승인까지 받았다.

    김 센터장은 이 기간에 양산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사출성형기 납기가 3개월 넘게 걸릴 수 있는 상황도 중고제품을 구해 해결했다. 이 덕분에 풍림파마텍은 지난달 말 기준으로 월 1000만개의 LDS 주사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스마트공장 지원사업을 함께한 차정훈 중기부 창업벤처혁신실장은 김 센터장에 대해 "엄밀한 실행가"라고 말했다. 차 실장은 "김 센터장은 제조 시간을 단축하면서도 제품 품질은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다"며 "새로운 분야는 직접 공부하고 준비할 만큼 전문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1995년 애니콜 화형식. /조선DB
    ◇ 최고 제조 전문가 만든 ‘애니콜 화형식’

    주변 사람들은 김 센터장을 "전 세계 최고의 제조·생산·관리 전문가"라고 표현한다. 한 삼성그룹 관계자는 "과장을 좀 보태면 김 센터장이 공장을 한바퀴 돌면 막혔던 문제가 어딘지 드러나고, 두바퀴 돌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는 "그는 현장에서 산다. 창고부터 직원 식당까지 누비며 아주 작은 문제도 해결하고 풀어내면서 효율성을 끌어낸다"고 했다.

    김 센터장은 1957년 충남 홍성군에서 태어났다. 숭실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줄곧 공장에서 생산·관리 업무를 맡았다.

    김 센터장에게 큰 변곡점이 된 사건이 바로 ‘애니콜 화형식’이다. 고(故) 이건희 회장은 1995년 3월 휴대전화 불량률이 11.8%에 이르자 경북 구미공장의 운동장에 휴대전화 15만대 등을 모아 놓고 해머와 불도저로 조각낸 뒤 불태우게 했다. 시가 500억원어치 제품이 눈 앞에서 사라졌다. 김 센터장이 무선사업부 제조부장이 되고 2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김 센터장은 공개석상에서 여러차례 당시 일을 언급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조선일보와 중소기업중앙회가 함께 주최한 포럼 특별강연에서도 "애니콜 화형식에서 불을 붙인 장본인이 사실상 나였다"며 "품질의 중요성, 품질이 잘못되면 어떤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처절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성전자를 30년 넘게 다닐 수 있었던 것도 품질에 관한 쓰라린 경험 덕일 것"이라고 했다.

    김 센터장은 2013년 삼성전자의 모든 제품의 품질을 책임지는 글로벌 기술센터장(사장)으로 승진했다. 2016년에는 삼성중공업 생산부문장으로 일하며 조선소 생산 업무를 총괄했다. 2017년 ‘갤럭시노트7 발화 사태’ 때 삼성전자로 복귀, 세트사업 전반에 걸쳐 품질과 제조 혁신을 주도하는 글로벌품질혁신실 실장도 지냈다.

    김종호 삼성스마트공장센터장이 18일 오후 전북 군산시 백신접종용 최소잔여형(LDS) 백신주사기 생산 현장인 풍림파마텍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백신주사기 생산라인을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 삼성전자, 2022년까지 중소기업 2500곳 스마트공장 지원 목표

    삼성전자는 2015년부터 추진해오던 스마트공장 사업을 2018년 스마트공장지원센터로 개편하면서 김 센터장을 임명했다. 김 센터장은 3년 넘게 스마트공장을 비롯해 중소·중견기업에 필요한 종합지원 활동을 총괄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중기부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매년 각각 100억원씩 총 1000억 원을 조성해 중소기업 대상으로 스마트공장 구축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2025년까지 2500개 중소기업에 스마트공장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2018년 505곳, 2019년 566곳이 지원을 받았다.

    삼성전자는 100억원을 별도로 투자해 중소기업의 국내외 바이어 발굴, 글로벌 홍보, 교육 프로그램 등도 운영하고 있다. 김 센터장뿐만 아니라 200여 명의 삼성전자 제조 전문가들도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사업을 위해 뛰고 있다.

    김 센터장의 철학은 ‘3현 주의’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여러차례 "현장(現場)에 가서 현물(現物)을 직접 보고, 현상(現像)을 관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센터장은 지금도 LDS 주사기 생산량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 현장을 누빈다고 한다. 다음달까지 한달에 LDS 주사기를 최대 2000만개 생산하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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