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했던 졸업식, 그리고 1년… 코로나와의 전쟁 최전선에 섰던 간호장교들

조선비즈
  • 심민관 기자
    입력 2021.03.01 06:00

    "졸업식이 끝나고 바로 방역 현장에 투입된다고 해 조금은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환자들이 점차 회복되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내가 선택한 이 길에 보람을 느꼈다."

    대구·경북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1차 유행이 한창이었던 지난해 3월 3일 국군간호사관학교 졸업생 75명은 졸업식(임관식)을 마친 직후 대구행 버스에 올랐다. 의료진 부족 사태에 처한 정부가 갓 소위 계급장을 단 간호 장교들을 코로나 방역 현장에 투입했기 때문이었다.

    실무 경험이 없는 수습 간호사로서 불안감을 안은 채 ‘바이러스 전쟁터’ 한복판이었던 대구 국군병원에 배치된 간호장교들은 졸업의 기쁨을 누릴새도 없었다. 간호장교가 돼 만난 첫 환자가 바로 코로나 확진자들이었다.

    2020년 3월 3일 국군사관학교 60기 간호장교가 대전 유성구 국군간호사관학교에서 열린 졸업 및 임관식을 마친 뒤 대구지역의 코로나19 의료 지원을 위해 차량에 짐을 싣고 있다. /국방일보 국방사진 연구소
    이들은 이후 38일간 대구국군병원에 입원한 코로나 환자들을 돌봤다. 외출이나 외부활동이 제한됐고, 가족이나 친구들도 만날 수도 없었다. 간호장교들은 보통 소위 임관 직후 실무 교육을 한달여간 받고 자대로 배치되지만, 이들은 바로 현장에 투입됐고 임무를 마친 뒤에는 2주간의 자가격리 후 곧바로 해군 병원에 배치됐다. 이후 군 내 코로나 선별진료소 등에서 근무하며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대구에서의 경험은 간호장교로서 성장하는데 큰 밑거름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1일 중위로 진급한 신소현 중위(女⋅포항해군병원), 박한얼 중위(女⋅해군해양의료원), 장근창 중위(男⋅포항해군병원)에게 당시 이야기를 들어봤다.

    왼쪽부터 신소현 중위, 장근창 중위, 박한얼 중위. /해군본부
    ◇ "땀 때문에 고생했어요"… 숨 막혔던 레벨D 방호복 고

    세 명의 간호장교 모두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온 몸을 감싸는 레벨D 방호복 착용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사관학교에서 실습 수업시간 중 한 번 정도 착용해본 경험은 있었지만, 방호복을 입고 장시간 일해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불편함이 컸다.

    이들이 대구국군병원에서 맞닥뜨린 가장 큰 어려움은 다름 아닌 ‘땀’과의 전쟁이었다.

    신소현 중위는 "이중으로 장갑을 끼고 레벨D 방호복과 고글 장비를 착용한 채 일을 하면 어느새 땀이 고이고, 고글에 습기가 가득 찼다"고 말했다. 신 중위는 또 "병상 안에서는 감염 우려 때문에 방호복 안에 수건을 넣어 땀을 닦거나 고글 안에 고인 땀방울을 제거할 수 없었다"며 "땀을 닦으려면 교대 시간까지는 무조건 참아야 했다"고 말했다.

    장근창 중위도 땀이 많은 체질이라 고통이 컸다고 털어놨다. 그는 특히 고글 안에 맺힌 땀 때문에 습기가 차 앞을 보는게 매우 힘들었다고 했다. 장 중위는 "고글 앞에 김 서림 방지제를 뿌려도 봤지만 계속 땀이 흘러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며 "감염 우려 때문에 고글을 만지는 것도 금지돼 있어 답답해도 참고 일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박한얼 중위(앞 사람)가 음압병동 내 음압작동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해군본부
    화장실 문제도 이들의 걱정거리 중 하나였다. 화장실을 가려면 방호복을 벗고 샤워를 한 뒤 옷을 갈아입고 다녀와야 했기 때문에 급한 일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방호복을 입고 벗는데만 15분 이상이 걸리고, 샤워 후 화장실을 갔다가 다시 방호복을 입고 들어오려면 아무리 빨라도 최소 30분 이상은 소요됐기 때문이다.

    장 중위는 "무조건 미리 화장실을 다녀온 후 교대근무를 하러 갔다"며 "혹시나 근무 중 중간에 화장실이 급해도 무조건 참아야했다"고 했다.

    화장실 문제가 걱정돼 아예 물을 적게 마시기도 했다. 박 중위는 "평소에 물을 많이 마시는데 대구병원 파견 당시에는 화장실 문제로 물을 최대한 적게 마셨다"며 "아무래도 방호복 때문에 땀은 많이 흘리는데 물 섭취량은 줄여 피로도가 조금 높았다"고 했다. 그는 "교대 근무로 밤과 낮이 바뀌어 생활리듬이 깨진 점도 영향을 줬다"며 "근무 중 속이 쓰린 적도 있었는데, 환자들이 점차 쾌차하는 모습에 아픈 줄도 몰랐다"고 했다.

    국군대구병원 파견임무를 마친 신임 간호장교들과 동료 간호장교들이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에서 두번째 신소현 중위, 뒷줄 왼쪽에서 다섯번째 장근창 중위, 뒷줄 왼쪽에서 여섯번째 박한얼 중위. /해군본부
    ◇ 경험 없어 쉽지 않았던 소위 신고식

    간호장교들은 실무경험 없이 곧바로 병원에 투입됐기 때문에 심적 부담이 컸다. 혹시나 실수로 일을 잘못 처리하면 감염이 확산될 수도 있어서였다. 직접 주사를 놓거나 환자 피를 뽑아본 경험도 없었다.

    장 중위는 "처음이다 보니 혹시나 실수하는 것은 아닌지, 병동에 들어가서 업무를 해도 되는게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고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며 "대신에 쉬는 시간에 공부하고 선배들에게 물어보고 고민하면서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갔다"고 했다.

    간호장교들이 방호복을 장시간 입고 있으면 체온이 37.5도 넘게 나오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이럴 때면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고 한다. 신 중위는 "가끔 일하다 보면 열이 높게 나오는 경우가 있다"며 "쉬었다가 다시 재보자면서 동기들끼리 서로 안심시켜주는 말을 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고 했다.

    2020년 3월 2일 대전 국군간호사관학교에서 신임 장교들이 대구국군병원으로 떠나기 전 코로나19 관련 교육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시간이 지날수록 힘든 근무환경에 적응하는 방법도 터득해갔다. 세 명의 간호장교 모두 "코와 귀, 광대쪽이 눌리면서 피부가 붉게 올라오고 고글이 닿으면 아팠다"며 "반창고를 붙이고 고글을 쓰니 한결 편하더라"고 했다.

    신참 소위 혼자서 감당하기엔 긴박한 순간도 있었다. 장 중위는 "헤모글로빈 수치가 갑자기 많이 떨어져서 경증환자 병동에서 중증환자 병동으로 환자를 이동시킨 적이 있었다"며 "확진자라 음압카트를 이용해 옮겨야 했는데, 혹시나 골든타임을 놓칠까 싶어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 퇴원 환자들 손 편지에 ‘감동’

    간호장교들은 "퇴원한 환자들의 병상을 정리하면서 환자가 남기고 간 손편지들을 봤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웃었다.

    신 중위는 "확진됐을 때는 코로나가 무섭게 느껴졌지만, 간호장교들 덕분에
    코로나를 생각하면 좋은 기억만 남을 것 같다는 손편지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며 "환자가 무사히 퇴원하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신 중위는 또 "환자 중 한 분이 음악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간호장교들이 치료를 해주는 모습에 감동을 받아 이때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고 싶다는 손편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면서 "간호사로서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박 중위와 장 중위도 환자들의 손편지가 큰 힘이 됐다고 덧붙였다.

    퇴원한 환자들이 남긴 손편지들. 왼쪽은 간호장교들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고 싶다는 사연이 담긴 쓴 손편지. /박한얼 중위
    당시 대구지역에서 코로나와 사투를 벌인 의료진들에 대한 국민적인 응원도 힘이 됐다. 병원에는 수건이나 음료, 간식 등의 온정의 손길이 끊이지 않았다.

    신 중위는 "땀을 많이 흘려 갈아입을 티셔츠나 수건 등이 부족했는데 많은 분들이 병원으로 물품을 보내주셨다"면서 "생수, 커피, 이온 음료, 초콜릿, 쿠키, 홍삼, 피로회복제 등과 함께 보내온 그들의 응원 편지에 하루하루를 감사함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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