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 속 화초' 거부한다…파견노동자 자처한 유통오너 3세들

조선비즈
  • 윤희훈 기자
    입력 2021.02.26 06:00

    오리온 3세 카카오行...매일유업 3세 신세계서 7년째 근무 중
    빙그레 3세 김동만, G마켓 신입 공채로 입사 후 퇴사
    "외부 트레이닝이 경쟁력 있는 CEO 만드는 필수 조건"


    아버지의 회사가 아닌 외부 회사에 입사하는 유통기업 오너 3세들이 늘고 있다. 업계에선 인공지능(AI)과 같은 신기술 도입, 유통 채널 운영 등 가족 회사에선 배울 수 없는 경영 기법을 실무부터 익히기 위한 것으로 풀이한다.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의 장남 담서원(32)씨는 지난해 하반기 카카오엔터프라이즈 재무팀에 입사했다. 2014년 중국으로 유학을 떠난 서원씨는 당초 유학을 마친 뒤 오리온에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을 것으로 전망돼 왔다.

    그가 입사한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카카오 내 사내 독립기업으로 조직개편한 AI(인공지능)랩이 분사해 설립된 회사다. 인공지능 기반 플랫폼과 솔루션 개발을 주력으로 한다.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 기술 '카카오I'를 핵심 플랫폼으로 삼고 있다. 이 외에도 대표적인 서비스로 기업용 메신저 '카카오워크'가 있다.

    유통업계는 서원씨가 AI 기술 접목을 위한 경영 상의 운영 방식을 미리 습득하기 위해 입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식품기업들은 향후 재고 관리 효율화와 생산성 제고를 위해 AI 기술을 전면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현재 그룹 지주사인 오리온홀딩스(001800)오리온(271560)의 지분을 각각 1.22%, 1.23% 갖고있다.

    주요 유통기업 오너들의 장남들이 외부 회사에서 경험을 쌓고 있다. 왼쪽부터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 김정완 매일유업 회장, 김호연 빙그레 회장./조선비즈DB
    매일유업(267980)김정완 회장의 장남인 김오영(35)씨는 현재 신세계프라퍼티가 운영하는 한 스타필드 매장에서 파트너(과장급)로 근무하고 있다. 2014년 신세계백화점에 입사한 오영씨는 7년 넘게 현장에서 경험을 쌓고 있다.

    그의 신세계(004170)행에 대해선 주요 유통 채널의 현장 경험을 쌓기 위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신세계와 매일유업은 오너끼리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이마트(139480)의 자체브랜드(PB) 피코크 우유와 요거트 제품은 매일유업이 만든다. 매일유업이 커피전문점 브랜드 폴바셋을 새롭게 선보였을 때도 신세계는 백화점 핵심 공간에 자리를 내주는 등 적극 지원했다. 최근엔 정용진 부회장이 소셜미디어에 매일유업이 운영하는 상하농원을 다녀왔다는 글을 올리며 간접 홍보하기도 했다.

    오영씨는 지주사인 매일홀딩스와 매일유업 지분을 각각 0.01%씩 보유 중이다. 유아전문 회사 제로투세븐(159580)지분도 6.56% 갖고 있다.

    빙그레(005180)김호연 회장의 차남인 김동만(34)씨는 공군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치고 G마켓에서 일하다 퇴사했다. 신입 공채로 G마켓에 입사했던 동만씨는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하다 돌연 회사를 그만뒀다. G마켓 관계자는 "퇴사 시점과 이유는 개인 정보로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빙그레 관계자는 "동만씨가 현재 빙그레에 적을 두고 있진 않다"면서 "G마켓 퇴사 후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개인적인 일이라 알 수 없다"고 했다.

    유통가 오너 3·4세들이 아버지의 회사 대신 외부 기업에 입사해 사회 생활을 하는 것은 특권의식을 깨고 공정과 배려를 배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비자든 회사 직원이든, 지금 젊은 세대들은 공정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며 "오너 3·4세들의 경영 승계 과정에도 공정성을 따지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그간 우리나라에서 대기업 오너 3·4세의 안하무인식 갑질은 큰 사회 문제가 돼왔다. '나는 특별하다'는 특권의식이 사회적 통념을 기반으로 한 도덕성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도덕체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남양유업 사태 같은 갑질 사건이 대중으로부터 공분을 사면, 이는 회사의 존폐 위기로 귀결된다.

    특히 재벌 3·4세는 창업자인 아버지와 회사를 같이 키운 2세와 달리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로 회사의 주인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아왔다. 경영을 경험을 통해 익힌 것이 아니라 학습을 통해 배웠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정당한 방법이 아닌 편법으로 해결하려고 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서 교수는 "외부 트레이닝 과정을 통해 오너 3·4세들은 경영 능력을 공정하게 평가받게 될 것"이라며 "외부 트레이닝이 경쟁력 있는 CEO를 만드는 필수 조건이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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