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팩(SPAC)에 꽂힌 개미…청약 경쟁률 고공 행진

조선비즈
  • 노자운 기자
    입력 2021.02.24 08:37

    코스닥시장에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SPAC)들이 잇달아 세자릿수의 높은 공모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미 증시에 상장돼 타 기업과의 합병을 앞둔 스팩주들의 가격 급등과 미국 기업 공개 시장(IPO)의 스팩 활황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스팩은 비상장기업의 인수 합병을 목적으로 설립된 서류상 회사다. 증권사에서 설립하고, 공모를 통해 투자 자금을 유치하고 코스닥시장에 상장한다. 이후 우량 기업을 찾아 합병에 성공하면, 기존 스팩 주주들은 합병 비율에 따라 일정한 수의 주식을 갖게 된다.

    합병 후 주가가 스팩의 합병 기준가(통상 2000원)보다 높게 형성된다면, 스팩에 투자했던 기존 주주들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만약 3년 안에 합병 대상 기업을 찾지 못한다면, 스팩은 강제로 해산되고 주주는 투자금과 이자를 돌려받는다.

    23일 금융 투자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 18~19일 이틀 동안 공모 청약을 진행한 IBKS스팩15호의 경쟁률이 101.73대1을 기록했다.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1일까지 청약을 받은 하나금융스팩17호는 168.68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그 중 일반 투자자에게는 120만주가 배정됐는데 1억654만주가 청약됐으며, 2000억원이 넘는 청약 증거금이 몰렸다. 같은 달 12~13일에는 한국스팩9호가 공모 청약을 했는데, 경쟁률이 46.54대1에 달했다.

    최근 들어 높아진 스팩의 인기는 이례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공모 시장의 활황에도 스팩주는 대체로 한자릿수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지난 한 해 동안 공모 청약을 한 스팩 19개사의 평균 경쟁률은 3.14대1에 그쳤다. 그 중 10곳은 경쟁률이 일대일에도 못 미쳐 청약이 미달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합병 대상 기업을 찾는 데 성공한 스팩들의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르자 상장을 앞둔 스팩주에도 공모 자금이 몰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스팩을 통해 우회적으로 신규 상장 기업에 투자하면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졌다는 것이다.

    다음 달 12일 현대무벡스와의 합병 상장을 앞둔 엔에이치스팩14호는 23일 5600원으로 거래를 마감했는데, 이는 스팩 합병가액(2000원)보다 180% 높은 가격이다. 다음 달 31일 제이시스메디칼과 합병하는 유안타제3호스팩은 합병가액과 비교해 75% 올랐다. 같은 달 29일 일승과 합병 상장하는 미래에셋대우스팩4호 역시 46.5%의 높은 주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최종경 흥국증권 연구원은 "합병 상장을 앞둔 스팩주의 가격 상승세가 대체로 좋다"며 "이 때문에 스팩을 2000원의 낮은 가격에 살 수 있는 방법으로 공모 청약이 주목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연구원은 또 "스팩은 주가의 하방 경직성이 강해 주식시장이 조정기에 접어들더라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투자처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미국 증시에서 부는 스팩 투자 열풍 역시 이 같은 흐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데이터 업체 스팩리서치(SPACresearch)에 따르면, 올해 들어 미국 스팩의 IPO는 총 160건으로 집계됐다. 총 501억달러(55조6600억원)가 몰렸다. 미국 공유오피스 업체 위워크(WeWork)와 전기차 업체 루시드모터스(Lucid Motors) 등이 올해 중 스팩을 통한 증시 입성에 도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현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상장부장은 "미국에서 스팩 투자가 주목받는다는 뉴스가 워낙 많이 나오다 보니, 국내 스팩주에 대한 투자 심리도 영향을 받게 된 것 같다"며 "증시에 직접 상장하는 공모주를 사려면 수천 대 1에 달하는 경쟁률을 뚫어야 하나, 그에 비해 경쟁이 덜한 스팩 공모 청약에 참여하면 상대적으로 쉽게 신규 상장사 주식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스팩 투자는 상대적으로 낮은 경쟁률과 저렴한 가격으로 공모주 시장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나, 반대로 부작용도 존재한다. 특히 스팩주가 자본금이 작고 상장 주식 수가 적은 이른바 ‘품절주’일 경우, 주가가 큰 폭으로 등락할 위험이 있다.

    실제로 대신밸런스제7호스팩은 지난해 11월 주가가 2000원대 초반에 그쳤으나 연말부터 급등하기 시작, 지난달 6일에 2170원까지 올랐다. 두 달 만에 주가가 8% 넘게 오른 것이다. 그러나 고점을 돌파하고서 다시 급락, 같은 달 말 2000원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스팩의 주가는 별다른 뉴스나 이슈가 없는 한 변동폭이 미미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눈여겨볼 만한 급등락이었다. 이 스팩은 자본금이 5억원, 상장 주식 수가 520만주에 불과한 품절주로 분류돼, 주가를 고의적으로 끌어올리기에 유리하다고 평가받는다.

    스팩 투자가 가진 고질적인 위험 요소도 있다. 스팩이 상장 후 3년간 합병 대상을 찾지 못하고 청산할 경우, 투자자는 공모가 수준의 가격을 보장받는다. 만약 투자자가 공모가에 비해 과하게 비싼 값에 스팩주를 샀다면 큰 손실이 불가피하다.

    박종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스팩은 상장되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리며 타 기업과의 합병이 보장된 것도 아닌데, 그러한 시장에도 자금이 활발히 유입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유동성이 풍부하다는 방증"이라며 "전문가가 아닌 초보 투자자들이 스팩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섣불리 목돈을 넣는다면 원금을 보장받지 못하고 청산 당할 수 있다"며 투자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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