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못 살겠다”는 다수의 아우성에 묻힌 장애인의 목소리

조선비즈
  • 이은영 기자
    입력 2021.02.24 06:00

    최근 경기 오산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축소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가 열렸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후 자동차 판매량이 늘어 단지 내 주차공간이 부족해지자, 비어있는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을 내어달라는 것이었다. 주민들은 압도적으로 찬성표를 던졌고, 비어있던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을 얻어냈다.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은 법적으로 전체 구역의 2~4%를 유지하도록 돼 있다. 국내 장애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5%가량이다. 이 아파트는 입주민 내 장애인 비율이 평균치를 웃돌 것에 대비해 법정 권고량 이상으로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을 두고 있었으나, 주차구역이 부족해지자 이를 최소 수준으로 줄인 것이다.

    비단 이 아파트만의 일이 아니다. 장애인들은 코로나 사태 이후 자신들의 권리가 줄곧 뒷전으로 밀려왔다고 호소한다. 일부 장애인들은 감염병에 취약하고 타인의 돌봄에 의존해 일상생활을 해야 하지만, 이를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방역 지침 탓에 대책 없이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복지재단이 서울 거주 중증장애인 1500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 가장 불편한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병원 이용’이라는 응답이 37%로 가장 많았다. ‘방역·위생용품 구입’이라는 응답이 29%로 뒤를 이었다.

    그러나 정부 지원책은 여전히 장애인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편이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정부의 코로나 지원책은 자가격리 지원금과 주간보호서비스 지원 정도에 그치고 있다. 소득 보전과 가정돌봄 지원, 백신 우선 접종에서도 장애인은 우선 순위 밖으로 벗어나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는 23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폐 기능이 비장애인의 50% 밖에 되지 않아 명백한 감염 취약계층이지만, 활동지원서비스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백신 접종 순위가 5순위로 밀렸다"고 말했다. 또 "장애인은 감염병 사태로 인한 소득 손실 위험이 비장애인보다 훨씬 크지만 별도의 지원책은 마련된 적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6월 처음으로 ‘장애인 코로나 대응 매뉴얼’을 만들면서 "추후 보완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이 매뉴얼은 시민단체가 제시한 초안보다 부실해 손볼 곳이 많았지만, 8개월이 다 된 지금껏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태다. 시민단체들은 장애인 가정을 대상으로 한 소득 보전과 최중증 발달장애인을 위한 정부의 활동지원, 시설 거주 장애인들에 대한 한시적인 주거 지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 사태로 전 국민이 힘든 건 사실이지만, 감염 취약계층인 장애인은 생명을 위협받는다는 사실을 정부가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년 넘게 이어지는 코로나 사태에 곳곳에서 ‘살려달라’는 절규가 나오고 있다. 맞벌이 부부들이 자녀 돌봄 공백을 우려하자 정부는 사태 초기부터 재빠르게 돌봄 지원책을 내놨다. 버티다 못한 자영업자들이 생존권을 지켜달라며 수개월 동안 목소리를 낸 결과 정부는 다중이용시설 집합금지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방역수칙을 전면 개편하기로 했다.

    ‘우리도 살려달라’던 장애인의 목소리는 어디로 갔을까. 전국엔 262만명가량의 장애인이 있다. 언제나 존재해왔지만, 타인의 아우성 속에서 늘 뒷전으로 밀린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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