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쿠팡의 이유있는 환승

조선비즈
  • 홍다영 기자
    입력 2021.02.23 10:40

    요즘 유통업계 최대 화두는 쿠팡의 미국행(行)이다. 일각에선 쿠팡이 돈은 한국에서 벌고 상장은 미국에서 한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이끄는 비전펀드의 투자금 회수가 예견된 상황에서 신규 투자를 위한 당연한 수순이라는 의견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회사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상장 신고서에서 찾을 수 있다. 쿠팡은 한국에서 사업하며 적용받는 법률·규정을 ‘위험 요소’로 적었는데 무려 18가지에 달한다. 위반하는 경우 "비용·벌금을 부과받는다"고 돼 있다.

    쿠팡은 18가지 법률·규정 중 대규모유통업법을 자세히 언급했다. 대형 유통업체가 납품업체에 가격을 후려치거나 반품을 강요하면 피해액의 3배를 넘지 않게 손해 배상을 해야 한다.

    2019년 해당 법 위반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당한 쿠팡은 "사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한"이라고 했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는 "미국은 대규모유통업법 자체가 없다"며 "미국 투자자들 입장에선 한국의 기업 규제가 예측할 수 없는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쿠팡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내에서 기업하려면 살얼음판을 걷는다는 각오로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재계에선 현 정권의 ‘반(反)기업 분위기’ 속에서 언제 당사자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공포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전날 국회 처리가 불발됐다. 스타필드·롯데몰 등 복합쇼핑몰도 대형마트처럼 월 2회 의무적으로 휴업하도록 한 이 규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다.

    코로나 감염병 유행으로 대면 소비가 위축되며 소매·유통업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실효성·형평성 논란, 소비자 반발 등이 일자 이제서야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이다.

    정치권이 강제로 문을 닫게 한 대형마트는 8년째 의무휴업을 시행 중이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한국유통학회 조사에 따르면 대형마트 휴무일에 전통시장을 찾는다는 소비자는 5.8%에 불과했고, 아예 쇼핑하지 않는다는 이는 20%에 달했다.

    미국은 주(州)마다 차이가 있지만 상대적으로 규제에서 자유롭다. 쿠팡의 본사가 있는 델라웨어는 세금 혜택과 회사법이 기업 친화적이다. 델라웨어의 법인세는 8.7%지만 이곳에서 사업하지 않으면 법인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주 홈페이지에 "델라웨어에서 사업을 수행하지 않으면 법인 소득세 신고서를 제출할 필요가 없다"고 돼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본사는 실리콘밸리에 두면서 설립등기는 델라웨어에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간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인들을 손 봐야 하는 집단으로 매도해왔다. 언제부터인가 기업은 한국 사회에서 ‘영원한 비리 집단’으로 낙인 찍혔다.

    규제에서 벗어나 기업하라고 자리를 깔아주는 미국과 언제 범법자가 될지 모르는 한국. 기업들이 하나둘 한국을 떠나면 10년 후 우리 경제는 어떻게 될까. 쿠팡의 미국행이 국내 유통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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