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4년 내내 금융권 노조가 총력을 기울였지만, 지지부진했던 금융권 ‘노조추천 이사제(노동이사제)’가 올해도 도입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해 말 KB금융이 노동이사제 도입에 실패한 데 이어, 올해 노동이사제를 도입할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IBK기업은행마저 기존 찬성 의견에서 한발 물러나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18일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은 취임 1년을 맞아 가진 간담회에서 노조추천이사제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사안"이라며 "관련 법률의 개정이 수반되어야 추진 가능하다"는 다소 보수적인 입장을 밝혔다.

노동이사제는 노동자가 이사회 일원으로 직접 참여해 사업계획·예산·정관개정·재산처분 같은 경영사항에 발언권과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문재인 정부 대선 공약이자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된 금융권의 ‘뜨거운 감자’다. 노조추천이사제는 노조 추천을 받은 인사를 이사회에 참여시키는 제도로, 노조에 이사직을 의무적으로 배당하는 노동이사제 바로 전 단계에 해당한다.

금융권에서는 지난 2017년 11월 KB금융지주 노조가 처음으로 노조추천이사제를 추진했다. 당시 KB금융지주 노조는 주주총회에서 노조 추천 인사를 이사회 임원으로 선임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주주들로부터 충분한 찬성표를 얻지 못해 부결됐다. 이후 KB노조는 2018년 3월과 올해 2월, 지난해 12월 세 차례에 걸쳐 노조 추천 이사 선임을 연거푸 요구했지만, 이 역시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전국금융산업노조 등 관계자들이 지난 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입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시중은행과 달리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서 주주총회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기업은행이 다른 시중은행보다 노조추천이사제를 도입하기 훨씬 수월한 편’이라고 평가했다.

윤 행장 역시 지난해 행장 임면 직후만 하더라도 노조추천이사제에 상당히 긍정적인 의견을 드러내며 힘을 실어줬다. 그는 행장 취임 직후 가진 국회 업무보고에서 "전체 사외이사 중 한 분이 주주뿐 아니라 직원의 이익을 대변해준다면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낙하산’ 논란을 두고 마찰을 빚었던 노조와의 대화에서 "오랫동안 많이 생각했던 이슈로 직원들의 이해가 경영에 수렴할 수 있는 제도적인 틀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현행 은행법에 따르면 노동자가 추천한 인사를 이사회에 반드시 넣어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 반대로 노조가 이사회에 특정 인물을 추천하면 안 된다는 규정도 없다. 기업은행은 국책은행이기 때문에 중소기업은행법과 정관에 따라 기업은행장이 이사 선임을 제청하면 금융위원장이 임명한다.

관련 법률이 개정되지 않아도, 은행장과 금융위원장이 동의하면 노조 추천 인사를 이사직에 앉히는 데 문제가 없다는 의미다. 윤 행장이 말한 ‘관련 법률 개정’은 일회성 선임에 그치지 않고, 노조추천이사제가 추후 노동이사제로 법제화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절차라고 금융권 관계자들은 분석한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이 노동이사제 물꼬를 터주길 기대했는데,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다가 ‘이제 와서 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있다"며 "노동이사제는 낙하산 경영진에 의해서 경영전횡이 발생했을 시 최소한의 감시와 견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장치"라고 비판했다.

기업은행 노조는 일단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은행이 노조추천이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진 않았다"며 유보적인 의견을 내놨다. 기업은행 노조는 예정대로 적절한 사외이사 후보를 찾아 윤 행장에게 추천할 계획이다. 현재 기업은행 노조는 다음 달이면 생길 사외이사 공석 두 자리 가운데 한 자리 정도는 노조가 추천한 인사를 선임하길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