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부모님의 자수성家, 나의 운수성家

조선비즈
  • 최상현 기자
    입력 2021.02.18 18:31

    얼마전 우연히 떼어 본 주민등록초본에는 나와 부모님의 주거사(史)가 낱낱이 기록돼 있었다. 나는 31세가 될 때까지 15번이나 주소가 바뀌었다. 1991년 태어난 곳은 대구직할시 북구 산격동 달동네 다가구주택의 방 한칸. 겨울이면 12시간마다 연탄을 갈아야 하는 그 곳에서 우리 부모님은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내가 걸음마를 뗄 때쯤 부모님은 재건축을 앞둔 5층짜리 시영아파트에 들어갔다. 돌이켜보면 중학생 때까지는 2년에 한 번 꼴로 전셋집을 옮겼다. 이사를 자주 다니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잦은 이사가 꼭 ‘주거 불안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이사를 할 때마다 우리 가족은 전셋집이지만 더 넓고 좋은 집에 살게 됐다. 큰아들을 대학에 보내고 나서 부모님은 마침내 ‘내 집’을 마련하셨다. 열심히 모아 한 걸음씩 더 나은 집으로 올라간 셈이다.

    그러나 나와 같은 90년대생이 사는 오늘은 부모님 세대처럼 주거 사다리를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것이 불가능해진 시대다. 직장 생활을 시작했던 2018년 7월, 서울의 중위 아파트 매매가격은 이미 6억6000만원으로 까마득하게 높았다. 2년여 동안 월급을 차곡차곡 저축해 3000만원쯤 모았을 때는 아파트 한 채 값이 9억원이 돼있었고, 대출 한도는 오히려 줄어 있었다.

    정부가 집값을 잡으려고 여러 노력을 한 것은 잘 안다. 하지만 정부가 어떤 대책을 내놓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값은 계속 오르고 있다. 그렇다면 처방이 틀렸다는 이야기다. 지금 청년을 비롯한 실수요자에게 필요한 것은 ‘충분한 공급’과 내집 마련에 도움을 줄 ‘사다리’다.

    그런데 정부는 최근 내놓은 부동산 대책에서 공급 계획은 민간이 하던 것까지 공공의 힘으로 하겠다는 장밋빛 전망으로 채우고, 사다리 대신으로는 주택복권을 줬다. 이번 대책으로 공급되는 공공분양 물량 중 일부(15%)를 3년 이상 무주택자 누구나에게 청약할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확률을 생각하면 복권과 다를 바가 없다.

    믿기 어려운 공급 목표와 허울 좋은 주택복권으로는 청년을 안심시키지 못한다. 우리도 부모님 세대처럼 노력하면 한 단계씩 나아지는 과정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고 싶다. 다음 부동산 대책에는 "진짜로 분양을 기다리면 되겠구나" 라고 생각하며 기다리게 할만한 공급 해법과 "이걸 이용하면 되겠구나" 라고 믿을 만한 사다리가 들어있기를 기대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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