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5조원,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김범수

입력 2021.02.09 16:04

"부자는 재산에 더 집착하는 법인데 그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미국의 정보기술(IT) 기업 창업자 같은 기부, 은퇴 후 사회개혁 운동을 하는 사람이 이제 한국에서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의장이 지난 8일 자신의 재산 절반인 5조원을 사회문제를 위해 기부하겠다고 발표한 데 대해 이렇게 평했다. 인터넷·스타트업 업계뿐 아니라 대기업 임직원들도 이날 김 의장의 파격 발표를 두고 ‘깜짝 놀랐다’는 반응이 많았다. 아무리 성공한 창업자라도 재산을 반 뚝 떼어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겠냐는 것이다.

실제 한국CXO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김 의장이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힌 5조원이란 금액은 2019년 기준 국내에서 기부를 가장 많이 한 기업인 삼성전자보다도 17배 이상 많은 것이라고 한다. 별도 재무제표 기준 삼성전자가 그해 기부한 금액은 3000억원이 채 안 되는 수준이었다. 개인이 아닌 회사 차원의 기부였다.

한국 인터넷 역사와 함께 자수성가한 거부들은 김범수 의장 말고도 많다. 넥슨 신화를 쓴 김정주, 네이버 공화국을 건설한 이해진, 네오플·위메프의 아버지 허민, 네오위즈·첫눈으로 대박을 낸 장병규, 이니텍 창업자 권도균. 김기사·데일리호텔처럼 ‘스타트업 붐’을 타고 성공 신화를 쓴 젊은 기업인들도 즐비하다.

하지만 이들 중 회사 매각(엑시트) 후 벌어들인 수익, 재산을 내놓겠다고 한 사례를 들어본 적은 없다. 또 다른 벤처를 설립해 새로운 도전에 나서거나, 벤처 후배들을 양성하는 길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간의 경험을 공유해 후배들이 시행착오 하는 것을 최소화하는 데 보탬이 되겠다는 취지였다. ‘경험과 노하우’를 퍼주겠다는 것이지만, ‘내 돈 퍼주기’와는 달랐다. 투자기업이 잘 되면 투자자 역시 몇 배의 수익을 내는 구조니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김 의장은 어떤 방식으로 재산을 내놓을지 아직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처럼 주식 매각을 통해 회사 지분을 줄여나가면서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 같은 자선단체를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적으로 부자들이 탈세나 상속을 위해 재단을 운영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게이츠 재단은 전 세계 빈곤, 질병 퇴치를 기치로 내걸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구호를 위해서도 기부하고 있다.

김 의장의 5조원 쾌척 배경이 무엇이었는지는 여러 설이 난무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차치하고 사재를 내놓겠다는 의지를 발표한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는 크다. 입을 뗀 만큼 그는 실행에도 옮길 것이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겠다고 한 그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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