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앞뒤 안 맞는 관치에 병드는 한국 금융

조선비즈
  • 이윤정 기자
    입력 2021.02.09 10:53

    지난주 국내 금융지주들의 실적 발표가 있었던 날, 각 금융지주의 재무 담당 총괄 임원(CFO)들은 투자자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대부분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투자자들에게 나눠주는 배당금은 오히려 전년보다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후승 하나금융지주 CFO는 "양호한 실적에도 배당이 적게 결정돼 송구하다"며 "너그러운 양해를 부탁한다"고 했다.

    기업이 돈을 많이 벌수록 투자자에게 돌아가는 돈도 그만큼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 기본적인 원칙을 무시하고 배당을 줄이라는 사실상 ‘명령’에 다름없는 권고를 내려 보냈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은행의 보수적인 자본 관리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각 기업이 속한 업권의 미래를 전망하고 그에 따라 배당을 조정하는 것은 기업의 고유 권한이지만, 정부는 이를 침해했다.

    투자자 입장에서 백번 양보해 배당 제한 조치를 받아들인다 치자. 결국 목적이 금융지주의 탄탄한 미래를 담보하기 위함인 만큼 장기적 시각에서 보면 결국 투자자를 위한 조치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논의되는 이익 공유제를 생각하면 배당 제한의 진의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익 공유제는 말 그대로 코로나19 상황에도 돈을 많이 번 기업들은 그만큼 사회에 돌려주라는 것이다. 이익 공유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처음 제기될 때부터 금융지주는 유력한 대상이었는데, 역대 최대 순이익을 올렸다는 이번 실적 발표로 금융지주는 빠져나갈 수 없게 됐다.

    미래에 닥쳐올지 모르는 위기를 대비하기 위해 들고 있는 현금을 늘리라고 해놓고, 번 만큼 내놓으라는 것은 모순이다. 결국 배당 제한은 기업과 투자자의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부가 원하는 곳에 금융지주가 돈을 보낼 수 있도록 실탄을 함부로 쓰지 말라는 뜻으로 읽힌다. 정부의 배당 제한 권고가 시장에서 환영은커녕 이해받지도 못하는 이유다.

    특히 배당 제한과 이익 공유제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금융지주의 미래를 갉아먹는 처사다. 금융지주가 벌어들인 돈 중에서 투자자에게 배당하지 않은 돈은 자본으로 쌓이는데, 이를 이익 공유제로 내놓는다면 결국 자본이 깎여나가 전체 자산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부채가 함께 줄어들지 않는 한 자산의 질, 즉 기업 가치가 떨어지는 셈이니 투자자 입장에선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국내 금융산업의 발전을 지원하겠다며 각종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처럼 앞뒤 안 맞는 관치가 존재하는 한 금융산업의 발전은 요원하다. 그리고 그 조짐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국내 금융지주의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판단한 외국인들은 투자했던 돈을 계속 거둬들이고 있다. 어쩌면 투자자들에게 사과해야 할 이는 금융지주가 아니라 정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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