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게임 소매 체인 게임스톱의 주가가 28일(현지 시각) 44% 급락했으나 마감 후 시간외 거래에서 50% 넘게 폭등하면서 ‘거품’ 경종을 울렸던 전문가들의 분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게임스톱 주가는 수백만 개인 투자자들이 기관의 공매도에 맞서 매수세를 주도하며 최근 한 달 사이 1700%라는 기록적인 상승률을 보였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앞서 이날 ‘게임스톱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거품’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게임스톱 주가가 치솟는 걸 단순히 채팅방에서 일어난 장난스런 행동들의 결과로 보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게 보는 건 실수"라며 "지금 상황은 과거 거품들의 축소판"이라고 지적했다.
‘친구가 부자가 되는 것을 보는 것만큼 자신의 안녕과 판단을 방해하는 건 없다’는 경제학자 찰스 킨들버거의 말처럼 개인 투자자들이 패닉에 빠져 "부자가 되거나 아니면 죽거나" 식의 광풍을 주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개인 투자자들이 처음엔 게임스톱의 경영 전망 개선 소식에 몰려든 게 맞지만 나중에는 "엄청난 돈을 벌 기회를 놓쳤다고 놀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공매도 투자자들에 피해를 준다는 만족감" 때문에 매수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WSJ는 "게임스톱 주가가 이번달 들어 하루 50% 이상의 상승률을 기록하는 등 순수 투기 단계에 진입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이 과정에서 기업의 펀더멘털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며 "경제학의 창시자 애덤 스미스가 과대 매매로 불렀던 투기 광풍이 바로 이 모습"이라고 했다.
WSJ는 미국 개인 투자자들이 많이 쓰는 주식 거래중개 앱 로빈후드가 지난해 수수료를 없앤 게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짚었다. 로빈후드가 공짜 수수료로 투자자들을 유인한 뒤 옵션(주식 등을 사고 팔 수 있는 권리) 등 파생상품으로 수익을 챙겼다는 비판이다. WSJ는 "옵션 거래는 대출과 비슷하다"며 1980년대 일본 정부가 대출 규제를 완화해 금리를 끌어내리면서 거품경제를 야기했던 것처럼 게임스톱 주가 거품도 이런 유동성에 기대면서 커진 것"이라고 했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수석경제고문도 이날 블룸버그 기고에서 거품을 우려했다. 그는 게임스톱 주가 폭등을 기관 투자자에서 개인 투자자로 권력이 이동했다는 시각, 일시적 현상일 뿐이라는 시각이 있지만 "가장 걱정되지만 가장 필연적으로 보이는 건 1637년 튤립 광풍에 비유하는 시각"이라며 "이 시각이 맞다면 현재 벌어지는 현상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결코 안심할 수 없다. 대규모 금융 변동성과 시장 기능 장애라는 두 가지 가능성이 실현되면 장·단기적 도전에 직면한 미국의 경제 회복은 또다른 걸림돌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8월만 해도 4달러대였던 게임스톱 주식은 지난 13일 온라인 반려동물 용품업체 츄이의 공동창업자 라이언 코언이 이사진에 합류한다는 소식과 함께 급등했다. "게임스톱이 모든 점포를 팔고 온라인 유통점으로 변신하면 수익성이 대폭 개선될 것"이란 그의 주장이 개인 투자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다. 20일까지 게임스톱 주가는 40달러 근처까지 뛰었다.
전환점은 공매도 전문 헤지펀드 시트론리서치의 경고였다. 당시 시트론리서치는 "지금 주식을 사는 사람은 포커게임을 할 줄 모르는 멍청이"라며 "주가는 순식간에 20달러까지 폭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게임스톱은 이미 "실패한 소매업체"라는 이유에서였다.
공매도로 큰 돈을 벌던 월가 금융사의 공격에 투자자들은 분노했다. 그렇게 뭉친 곳이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의 ‘월스트리트베츠’라는 주식 토론 게시판이다. ‘본 때를 보여주자’며 주식은 물론 콜옵션까지 사들이기 시작한 이들은 22일 게임스톱 주가를 65.01달러까지 끌어올리기에 이르렀다. 게임스톱 주가는 장 초반 전날 대비 144% 오른 159.19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일부는 시트론리서치의 앤드루 레프트 최고경영자(CEO)의 신상을 털었다. 자녀들에게까지 협박 문자가 오자 레프트 CEO는 결국 공매도를 포기하고 게임스톱에서 손을 뗐다. 이날까지 월스트리트베츠에 모인 인원은 400만명이 넘는다. 27일 하루만 70만명이 새로 들어왔다.
예상치 못한 반격에 휘청인 건 시트론리서치 뿐만이 아니었다. 멜빈캐피털은 자산(125억달러)의 30%에 달하는 손실을 내면서 시타델, 포인트72 등으로부터 긴급자금을 수혈받아야 했다.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공매도했으나, 주가 상승으로 손실이 발생해 주식을 집중 매수하는 ‘쇼트 스퀴즈’에 내몰리면서다.
개인 투자자들에게 콜옵션을 팔았던 기관도 손실 위험을 줄이기 위해 현물 주식 매수에 나섰다. 기관 매수세까지 더해지면서 26일 주가는 92.61% 급등해 147.98달러로 마감했다. 27일엔 347.51달러까지 올랐다.
기세등등해진 투자자들은 다른 종목으로도 눈을 돌렸다. ‘제 2의 게임스톱’으로 지목된 미국 최대 극장체인 AMC엔터테인먼트는 27일 하루만에 주가가 5달러에서 19.9달러가 됐다. 무려 301%의 상승률이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과열 우려가 큰 종목들을 예의주시하겠다고 밝혔다. 증권사 TD아메리트레이드와 찰스슈와브도 27일 게임스톱, AMC 등에 대한 증거금을 상향 조정했다.
로빈후드 등 주식 거래중개 앱도 이날 게임스톱과 극장체인 AMC 등의 개인 거래를 제한했다. 인터랙티브 브로커스는 "추후 공지할 때까지 주식 매수 포지션의 경우 증거금을 100%로, 매도 포지션의 경우에는 300% 증거금을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위불은 게임스탑, AMC, 코스 등에 대한 신규 포지션 개설을 중단했다.
이에 게임스톱 주가는 오전 장중 450달러까지 치솟았다 최저 130달러선까지 내렸다. 종가 기준으로는 193.60달러로 전날 보다 44.11% 내렸다. 그러나 마감 후 시간외 거래에서 51.14%(오후 6시 기준) 폭등하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힘겨루기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재도 월스트리트베츠에는 "주가 하락을 두려워하지 말고 주식을 계속 사 모으자"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