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수첩] 탈과학에 멍든 원전업계

조선비즈
  • 이재은 기자
    입력 2021.01.14 16:00

    "국가 안보의 핵심인 에너지 정책에서 과학이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최근 통화한 원자력 업계 관계자는 이같이 토로했다. 정부가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전문가 의견을 무시한채 여전히 원전을 이념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한 것이다. 최근 정치권 이슈로 떠오른 경북 경주 월성원자력발전소 삼중수소 검출 논란이 대표적이다.

    논란은 앞서 한 매체가 2019년 4월 월성원전 부지내 지하수에서 삼중수소가 관리기준(L당 4만베크렐)의 18배인 71만3000베크렐 검출됐다고 보도하면서 불거졌다. 여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삼중수소는 자연에 없는 위험물질"이라는 잘못된 정보를 내세우며 원전 안전성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하수에서 방사성물질이 검출됐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라며 "누군가의 은폐가 있었는지 ‘원전 마피아’와 결탁이 있었는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과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여당의 주장은 불필요한 공포감만 조장하는 억지에 가깝다.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는 "삼중수소는 자연계에 엄연히 존재하는 물질로, 여당은 사실 관계와 수치를 무시하고 왜곡하는 탈(脫)과학을 범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땅에 떨어지는 자연 삼중수소만 해도 130 테라베크렐(TBq)에 달한다"고 말했다. 월성원전 인근 삼중수소 피폭량은 멸치 1g, 바나나 6개 안팎 수준으로 미미해 건강영향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이다.

    한수원과 국무총리 산하 원자력안전위원회도 직접 현장을 점검한 뒤 "삼중수소가 유출되지 않았다"고 확인했다. 원전 부지에서 검출됐다는 삼중수소는 유출되지 않고 회수돼 절차에 따라 처리됐다. 그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추진해온 정재훈 한수원 사장조차도 "팩트(사실)와 과학적 증거 기반이 아닌 극소수 운동가가 주장한 무책임한 내용이 확산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했다.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관련 검찰 수사로 위기에 몰린 여당이 위험성으로 논점을 흐려 ‘정치적 물타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원전업계는 황당함을 넘어 허탈하다는 반응이다. 한 원전 전문가는 "원자력안전위원회 만큼 전문성을 갖춘 조사단은 없다"며 "지금 정치권은 삼중수소가 유출되지 않았다는 원안위 입장마저 묵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삼중수소의 위험을 과장한 괴담이 제2의 광우병 선동 같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정부와 여당은 탈원전 정책과 탄소중립 이행 전략을 세울 때도 에너지 전문가 의견을 골고루 반영하지 않은 데다 사회적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였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에너지 정책에 있어서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원전의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두는 기조는 유지하되, 과학적 사실 관계를 왜곡하는 탈과학에서 만큼은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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