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살릴 수 있을까

조선비즈
  • 이미호 법조팀장
    입력 2021.01.11 16:34

    대한민국 국민들 대부분 같은 심정이겠지만 두 아이를 둔 엄마로서 ‘정인이 사건’을 대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기사만 읽어도 손이 떨려서 정인이 사건을 다룬 해당 방송 프로그램을 찾아서 볼 엄두도 못냈다. 밝게 웃으며 조잘대는 아이들을 보며 ‘과연 내 아이들만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일종의 죄책감도 느꼈다. 2014년 울산 계모 사건, 2016년 원영이 사건, 지난해 천안 가방학대 계모 사건에 이어 부모 학대에 못이겨 지붕을 뛰어넘고 편의점을 맴도는 아이들이 속출했다는 점에서 정인이 사건은 아동보호 시스템의 부재로 생겨난 예고된 사건이나 다름없다.

    학대로 아이들이 죽음에 이를 때마다 대한민국에선 동일한 패턴이 반복됐다. 가해자에 대한 온 국민의 ‘분노 쏟아내기’가 시작되면, 수사당국과 관계부처 등은 유례없는 국민적 분노에 화들짝 놀라 대국민 사과를 했다. 실무진에 대한 문책성 인사도 뒤따랐다. 사과와 동시에 재발방지 대책이라는 것도 수십건씩 냈다. 정치권은 마치 경쟁하듯 관련 법안을 쏟아냈다. 신중한 검토없이 낸 법안들은 현장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온라인을 가득 메웠던 분노도 다른 이슈에 묻혀 서서히 식어갔다.

    정인이 사건이 선진국에서 발생했다면 어땠을까. 영국은 이미 1889년 국가의 아동보호 책임과 권한을 명시한 ‘아동학대 방지 및 보호법’을 마련했고, 이 틀 위에서 아동보호시스템을 차츰 성장시켜왔다. 영국에서도 수많은 아동 학대 사건들이 있었지만, 특히 2003년 발생한 ‘빅토리아 크림비’ 사건은 영국 사회를 크게 흔들었다.

    코트디부아르에 살던 빅토리아는 아동수당을 노린 고모에 의해 프랑스로 왔다가 불법 양육으로 당국의 경고를 받자 영국으로 이주한다. 이후 고모와 동거남은 빅토리아를 잔혹하게 학대했고 사망한 빅토리아의 몸에선 상처가 128군데나 발견됐다.

    당시 의회가 한 첫번째 일은 무엇이었을까. 수십차례의 조사였다. 굵직한 아동학대 사건이 벌어질때마다 영국 정부는 ‘독립 조사단’을 꾸렸다. 무엇이 아이를 죽음으로 내몰았고, 단계별로 어디에서 학대를 막을 수 있었는지, 현 아동보호 시스템이 놓친 부분은 무엇인지 조사했다. 토니 블레어 당시 총리는 이를 바탕으로 "10개월간 최소 10회의 위기개입 시점이 있었으나 놓쳤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는 ‘레이밍 보고서’라는 이름으로 발간됐다. 시스템 부재가 결국 빅토리아를 죽음에 이르게 한 셈이다.

    이제 정인이는 이 세상에 없고, 가해자들은 곧 재판을 받는다. 분노도 좋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차분히 좀 짚어보고 싶다.

    현재 가해 부모들은 아동학대치사죄로 기소됐다. 재판중 이들에게 살인죄 혐의가 적용되려면 검찰이 새로운 증거를 확보해 공소장 변경을 통해 적시해야 한다. 가해 부모는 "폭력 사실은 인정하나 죽을지 몰랐다"고 할 공산이 크다. 살인죄를 적용하려면 살인의 ‘고의성’을 입증해야 한다.

    과거 ‘울산 계모 살인사건’ 재판에서 당시 울산지검 수사팀은 광범위한 해외 사례를 수집한 바 있다.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사법 선진국에서는 흉기 없는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살인죄를 인정한다. 정인이 사망 전 이뤄진 ‘지속적 폭행’을 법원이 죽음의 원인으로 인정하도록 검찰은 법의학 감정서 등 관련 증거들을 더 확보해야 한다.

    울산 계모사건의 경우도 결국 항소심에서 ‘살인 고의성’이 인정됐는데, 맨손과 맨발로 이뤄진 아동학대 사건에서 살인죄를 인정한 국내 첫 판결이었다.

    관계부처와 정부, 수사당국은 무엇을 해야 할까. 단 한명의 아이라도 정부와 관계기관의 시야 밖에 머물지 않도록 아동보호의 큰 틀을 새로 짜야 한다. 이를 위해선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기관이 필요하고, 대대적이고 정확한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 필요하다면 현행법을 개정해서라도 보건당국과 지자체, 경찰, 일반 시민 등이 합심해 지역 관할 내 모든 아동학대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고 ‘위기 선상’에 올라있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만나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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