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술기행](42) 경북 의성에 매출 90%를 수출하는 술회사가 있습니다

조선비즈
  • 박순욱 선임기자
    입력 2021.01.11 11:09

    사과와인, 사과탄산와인(사이다) 생산하는 한국애플리즈 한임섭 대표
    작년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전년보다 매출 세배 증가한 60억원 실적 올려, 이중 90%가 수출
    "시장상황이 어려울 때 오히려 중소기업 제품 확대 기회 생긴다"며 공격적 해외영업전략 펼쳐
    프랑스 근무 때 사이다 술 맛보고 반해 1996년 고향인 의성에 양조장 차려
    내수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고급 사이다, 사과브랜디 새로 선보여 내수 튼튼히 다지겠다

    전체 매출의 90%를 수출로 거둬들이는 놀라운 술회사가 국내에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코로나가 일년 내내 극성을 부린 작년에도 전년보다 매출을 무려 세배나 늘렸다는 사실. 그것도 국내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과와인 단일 제품으로 거둔 실적이다.

    화제의 주인공은 사과로 유명한 경북 의성의 한국애플리즈 한임섭 대표다. 그는 자신을 ‘고향인 의성 사과나무 밑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소개할 정도로 사과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1996년 양조장을 만들어 사과와인과 사과탄산와인(사이다) 등을 만들어 내수보다 수출에 주력한 결과, 작년 매출은 60억원에 달한다.

    한국애플리즈 한임섭 대표. 그는 코로나 상황에서 오히려 공격적 해외영업전략을 펼친 덕분에 2020년 매출이 전년보다 세배 증가한 실적을 거두었다. /박순욱 기자
    이중 90%를 수출이 차지한다. 전세계 어느 술회사도 매출의 90%를 해외에서 올리는 경우는 사례가 없다. 대부분은 내수를 탄탄하게 다진 연후에 수출을 조금씩 늘려나가는 영업전략을 구사한다. 그래서 수출 비중이 절반을 넘는 경우도 드물다. 그런데 수출이 무려 90%라니?

    뒤집어보면 그만큼 내수가 취약하다는 얘기도 된다. 그래서 애플리즈의 제품을 아는 애주가들은 많지 않다. 100% 국내 농산물로 만든 민속주이지만, 전통주전문점에서도 거의 취급하지 않는다. 국내 대형마트에서도 존재감이 거의 없다. 하지만 작년 한해 매출이 60억원. 전통주 회사 중 이 정도 실적은 상위 0.1% 안에 든다. 애플리즈는 도대체 어떤 제품을 만드는 회사일까?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사과와인 전문 양조장 애플리즈의 성격을 잘 말해주는 일화를 소개한다. 한임섭 대표는 지난해말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을 받았다. 지방의 크지 않은 양조장 대표가 중앙부처 장관상을 받는 사례는 흔치 않은 일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 철폐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는 게 상을 받은 이유다.

    그런데, 장관상까지 받은 규제철폐 아이디어는 사실 한 대표 본인이 낸 게 아니라, 중국의 현지 바이어(수입상)가 그에게 제공했다. 워낙 해외매출 비중이 높다보니, 해외 바이어들의 다양한 요청을 한 대표가 귀담아 들은 덕분이다. 사연은 이랬다.

    "중국에서 우리 사과와인을 취급하는 바이어에게서 최근 연락이 왔어요. ‘사과와인에 장미농축액을 약간 넣어달라'는 요청이었어요. 중국인이 장미향을 좋아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중국 수출품에만 소량의 장미농축액을 넣었어요. 그런데 술 품질을 관장하는 농식품부와 국세청은 장미농축액 같은 부재료를 전통주에 넣을 수 없다는 겁니다. 수출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죠. 그래서, 규제개혁위원회에 다시 건의했죠. ‘국산 사과로 만든 술의 해외판매 촉진을 위해 부재료(장미농축액) 사용을 허용해달라’고 말입니다. 결국 건의는 받아들여졌고, 장관상까지 과분하게 받았습니다. 장미향이 들어간 사과와인 ‘오월의 장미'는 중국 수출이 크게 늘어난 건 당연하고요."

    장미향이 나는 사과와인은 어떤 맛일까? 애플리즈는 장미향뿐 아니라 커피향, 포도향 등 다양한 부재료를 넣은 사과와인을 만들어 수출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녹색 소주병을 쓴다는 점이다. ‘값싼 이미지의 대명사' 같은 소주병에 와인을 넣다니? "한국 술이라는 것을 해외에 알리는데 소주병만큼 확실한 게 없고, 소주병 단가가 워낙 싸기 때문에 가격경쟁력도 있다"는 게 한 대표의 설명이다. ‘돈키호테 스타일’의 한임섭 대표를 직접 만나 궁금한 점들을 물었다.

    한국애플리즈 직원들이 소주병에 든 수출용 사과와인을 박스에 담고 있다. /박순욱 기자
    -중국 수출하는 사과와인에 장미농축액은 얼마나 넣었나?

    "사과 2톤을 즙으로 짜면 사과즙(사과쥬스)이 1.5톤 정도 나온다. 사과즙 1.5톤에 3kg 정도 장미농축액을 넣었다. 사과 함유량의 0.02% 정도로 작은 양이다. 국세청은 그정도도 못넣게 했다. 주세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국산 사과를 많이 소비(수출)하기 위해서 첨가물을 조금 넣는 것인데, 그것도 못하게 하는 건 국산농산물 소비를 막는 처사가 아닌가?' 이게 우리 입장이었다. ‘주세법은 어디까지나 국내에서의 얘기고, 해외로 나가는 제품은 그 나라 법을 지키는데 맞다고 생각한다. 이번 경우는 국내에서 규제를 지나치게 엄격히 시행하는 것이니, 그 규제를 푸는게 좋겠다’고 민원을 다시 넣었는데, 다행히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풀어줬다."

    -작년 한해 내내 코로나가 전세계를 뒤덮었다. 애플리즈 실적은?

    "매출은 작년보다 세배 정도 늘어난 60억원 정도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뿐 아니라 나라 전체가 어려운 상황이 되면 오히려 우리 회사 매출은 반대로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나로서도 그게 참 신기하다. 몇년전 사드(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미사일 방어체계)배치 문제로 우리나라가 중국과 사이가 크게 벌어지지 않았나? 지금까지도 국내 대기업 제품이 중국에서 불매운동을 당하는 등 된서리를 맞고 있다. 그때 중국 현지 바이어들이 ‘이제 한국술을 중국에서 팔기는 끝났다'고 내게 하소연을 하더라.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지금까지는 대기업(한국의 주류대기업) 때문에 영세회사 제품인 우리 상품을 못팔지 않았나? 대기업 제품이 철수하면 그만큼 우리에게는 기회가 더 생기는 셈이다’고 반박했다. ‘우리같은 조무래기 기업 제품은 중국 정부도 규제를 안하니, 물량을 더 늘릴 기회로 삼자'고 오히려 설득에 나섰다. 그렇게 공격적인 영업전략이 먹혔다. 사드 이후 중국 수출이 세배 가량 늘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공격적 영업을 한 덕분에, 매출을 크게 늘린 것이다. 그때 이후 중국 수출이 늘었고, 덩달아 동남아 수출도 늘었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 기승으로 해외교역이 다 막히게 됐다. 미국을 비롯해 해외 바이어들은 3년전 사드 때 중국 바이어들이 했던 말을 똑같이 했다. ‘코로나로 소비가 위축될 것으로 보이니 교역 물량을 줄이자'고 했다. 나는 이런 말을 해주었다. ‘지금 한 컨테이너 물량 제품을 수출하려면 대여섯개 공장이 동시에 돌아가야 한다. 술병 공장, 병 뚜껑 공장, 병 라벨 공장, 박스 공장, 제품을 실어나를 운송회사, 그리고 우리 술공장이 정상 가동돼야 한다. 그런데, 코로나가 확산돼 이중 공장들 중 한곳이라도 멈추면 수출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지금 수출에 문제 없을 때, 선제적으로 제품을 많이 확보해둬라'고. 이전과 다른 결제조건까지 제시했다. ‘결제는 나중에 물건 팔고 나서 해도 좋다'고. 결국, 그 전략이 작년에도 먹혔다."

    -제품 많이 받아놓고 안팔릴 수도 있지 않나?

    "물건은 쌓아두면 언젠간 팔린다. 그런데, 물건이 끊어지면? 팔고 싶어도 못팔게 된다. 오랫동안 경험에서 생긴 안목이 있다. 있는 건 설사 당장 못팔더라도 쟁여두면 된다. 술은 보관성이 좋다. 몇년 쌓아둬도 녹슬지 않는다. 제품을 미리 확보해 두는 것과 제품을 제때 못구해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가 있다."

    -중국 수출은 작년에 어땠나?

    "재작년은 15 컨테이너 물량이었고, 작년 2020년은 40여개 나간 것 같다. 미국 등 다른 주요 수출국가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재작년 매출이 20억이 채 되지 않았는데, 2020년은 수출이 크게 늘어난 덕분에 정확한 집계는 아니지만, 60억원은 될것 같다."

    한국애플리즈 양조장을 찾은 싱가포르 관광객들이 사과따기 체험을 하고 있다. /애플리즈 제공
    -한해 6만명까지 외국인관광객들이 찾는 인기 양조장이다. 작년은?

    "지난해 3월부터 양조장 투어객을 받지 않았다. 연간 4만~6만명의 해외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그런데, 우리 양조장을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인한 매출보다는 수출 매출이 월등하게 높다. 그래서 정부가 코로나 제한 방침을 내리기도 전인 3월부터 선제적으로 방문객을 받지 않고 있다.

    만약에 양조장 방문객 한 사람이 코로나 확진되면 일정기간 공장 가동을 중단해야 하니 그 피해가 작지 않기 때문이다. 동남아 현지 여행사들 중에 ‘한국애플리즈 투어 프로그램' 모객을 하는 업체들이 30여곳 되는데, 모객 영업행위를 중단하라고 요청했다. 공장 가동이 멈출까봐 우려가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년은 우리 양조장을 찾은 외국관광객은 거의 없었다."

    -작년은 코로나로 예외였지만,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이유는?

    "많을 때는 연간 6만명에 달했다. 2016~2018년에 특히 동남아 관광객들이 많이 왔다. 사과 따기, 사과와인 빚기 체험 프로그램이 호응이 많았다. 사과 따면서 사진 찍는 걸 굉장히 즐거워했다.

    애플치킨도 비장의 무기였다. 닭가슴살을 애플와인에 절인 후 돈가스 비슷하게 만들었다. 동남아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었다. 동남아에는 종교 탓으로 소고기나 돼지고기 못먹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닭고기 못먹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사과와인에 곁들여 먹을 안주로 사과부침개를 내놓았다.이름은 애플파이라고 했지만, 서양식 애플파이는 그 사람들도 다 아는 음식일테고, 우리가 내놓는 사과 부침개는 세상에 없는 음식이다. 사과를 채 썰어 밀가루, 계란과 같이 반죽을 해서 전처럼 굽는다. 이건 애플리즈에서만 맛볼 수 있다. 쫄깃한 맛이 나도록 찹쌀도 넣었다. 그래서 인기가 높았다. 와인도 무제한으로 마시도록 했다. 실제로는 많이 마시지도 못하지만, ‘무제한 와인 제공'은 다들 좋아했다."

    경북 의성의 애플리즈 양조장을 찾은 독일 관광객들이 사과주 시음을 하고 있다. /애플리즈 제공
    -소주병을 쓰는 이유는 뭔가?

    "우선, 우리 제품의 특성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애플리즈 주력 제품은 녹색 소주병을 쓰고 있다. 당연히 고급스런 느낌은 없다. 하지만 ‘한국제품’인 것은 확실히 알리고 있다. 비슷한 크기와 디자인의 녹색 유리병을 술병으로 쓰는 나라가 우리나라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싸구려 이미지의 소주병을 쓰는 것은 제품단가와 관련이 깊다. 우리가 술을 1톤 수출한다고 하자. 이때 술 내용물은 절반밖에 안되고, 술병 무게가 절반이다. 20톤 컨테이너 꽉 채우면 병 무게만 절반인 10톤이다. 750ml 술병의 술 무게는 760g이다. 술 내용물과 병 무게가 거의 같다. 이렇다보니 우리가 술 수출하는건지, 병 수출하는건지 헷갈릴 정도다. 그만큼 술병이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하다. 술을 담을 병 값을 얼마나 저렴하게 살 수 있느냐가 술 제조원가, 나아가 소비자가격을 결정한다.

    사과와인을 수출하는 영세한 우리 회사와 프랑스를 비롯한 와인을 수출하는 수많은 업체들간의 경쟁력은 품질에만 있는게 아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와인의 경우, 와인병은 부지기수로 많다. 당연히 병값도 저렴하다. 물량이 많으니까 싸게 병을 살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750ml 와인병을 쓰려면 중국산이 그나마 저렴하다. 국내생산 와인병은 비싸서 쓸 엄두도 못낸다. 국내 병 쓰려면 병값만 1700~1800원 줘야 한다. 물량이 많지 않으니 단가가 비쌀 수밖에 없다. 그러니, 외국와인에 비해 한국와인은 병값에서부터 경쟁력이 떨어진다.

    한국와인이 그나마 저렴한 편인 칠레와인과 제대로 경쟁하려면 주변산업이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와인만 맛있다고 경쟁력이 있는게 아니다. 칠레와인은 모르긴 해도 병값이 한국와인보다 서너배 저렴할 것이다. 이런 사정을 모르고, ‘칠레와인은 저렴한데, 한국와인은 왜 비싼가?’ 의문을 던지는 소비자들이 대부분이다. 와인 주변산업의 경쟁력이 한참 떨어지는게 우리 현실이다.

    한달에 겨우 와인 몇백병 파는 회사(가령 한국와인업체)와 한달에도 수만병을 파는 회사(프랑스, 칠레 와인회사)가 있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느 병 생산업체가 두 회사에 같은 값에 병을 주겠는가? 술산업에 있어 인접산업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이런 이유로 애플리즈는 비싼 와인병을 쓰지 않고 와인을 소주병에 넣어 팔고 있다. 한국 소주는 단일 제품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증류주라 하지 않나? 프랑스에서 와인병이 가장 흔한 것처럼 한국에선 소주병이 흔하다. 그러니, 소주병 단가도 아주 싸다. 사과와인을 굳이 비싼 와인병에 담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대기업 주류회사의 소주병 외에 애플리즈 전용 병(기존 소주병과 거의 유사한)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한국애플리즈 주요 제품들. /애플리즈 제공
    -소주병은 싸구려 이미지 아닌가?

    "소주병 쓰면 술의 품격이 떨어진다는 얘기는 당연히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건 한국사람 생각일뿐이다. 태국사람도 그렇게 생각할까? 중국사람도 소주병을 허접하다고 생각할까? 그 사람들에겐 한국 소주병은 절대로 ‘싸구려 이미지'가 아니다. 왜냐면 현지에선 한국 소주가 싼 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외 식당에선 10달러 이상 받는게 한국 소주다. 한류 영향 덕도 보고 있다.

    그래서 애플리즈는 수출용 제품에 소주병을 쓴 것이다.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술, 특히 한국소주는 현지에서 꽤 비싼 값에 팔리고 있어, 사과와인을 소주병에 담아 수출한다고 해서 현지 외국인들은 ‘싸구려 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을 한번이라도 와본 사람은 녹색병의 한국소주를 안다. 그래서, 한국문화를 조금이라도 아는 외국인들은 오히려 한국소주 병에 친근감, 호감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제품을 수출하면 결국 외국술과 경쟁해야 한다. 우리 제품이 사과와인이니, 해외에서는 와인과 경쟁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런데 와인 인접산업, 가령 술병 산업의 경쟁력이 워낙 한국이 뒤지니까 우리가 와인병 쓰지 않고 소주병을 쓰는 것이다."

    -실제로 현지에서도 애플리즈 제품이 잘 팔리고 있나?

    "바이어들이 ‘다 팔렸다(sold out)’고 난리칠 정도다."

    -작년 수출이 세배나 늘었다. 애플리즈 제품의 해외 반응이 좋은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한류 영향이 크다고 본다. 언젠가 유투브에서 본 영상인데. 영국분이 한국의 소주를 마시고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술맛이)어릴 때 엄마가 주던 감기약 같다.’ 생각해봐라. 우리는 희석식소주를 70년 이상 마셔왔다. 그러다보니 소주 맛에 입이 길들여져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외국인이 소주를 갑자기 마시면 어떻게 느낄까? 쓴맛도 있고 감미료 단맛도 느낄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감기약 같다'고 평한 게 아닌가 한다. 나는 외국에서 몇년이나마 살아봤기 때문에 그말이 무슨 의미인지 금방 이해가 갔다.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소주를 외국사람이 잘 마시도록 하면 사업이 되겠다'고. 외국 사람이 잘 마시는 술은? 대표적인 게 와인이다. ‘그렇다면 소주병에 와인을 넣어서 팔자’고. 소주병은 한국을 조금이라도 아는 외국인에게는 친숙한 술병이다. 한류열풍으로도 소주, 소주병이 많이 알려졌다.

    소주병에 우리 사과와인을 넣을 경우, 외국사람이 진로(참이슬)과 애플리즈를 구별할까? 술 외관만 보고는 그러지 못할 것이다. 둘 다 소주병에 담았기 때문이다. 결국, 한류는 물론 대기업 주류회사 덕도 볼 수 있겠다 싶었다. 2011년부터 소주병에 사과와인을 넣어 수출을 시작했다. 개발은 2009년에 했다. 소주병에 넣은 사과와인은 날개돋힌듯 팔려나갔다. 하지만, 국내 반응은 아직도 신통치 않다."

    한국애플리즈 한임섭 대표는 사드, 코로나 등 위기에 봉착했을 때 공격적인 영업전략을 펼치고 있다. 한 대표가 2006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한 바이어 초청 골프대회 행사 안내 현수막을 들어보이고 있다. /박순욱 기자
    -소주병에 담은 사과와인은 현지에서 얼마에 팔리나?

    "미국 현지에서 한국소주는 수퍼에서 3달러 정도 한다. 같은 소주병에 든 애플리즈 제품은 5달러에 팔린다. 같은 병을 쓰지만, 내용물이 전혀 다르다. ‘Apple Wine’이라 표시돼 있고, 맛도 미국인들에게 더 친숙한 와인 맛이다."

    -수출 효자상품은 뭔가?

    "소주병에 담긴 사과와인 제품인 ‘찾을수록'과 ‘좋은 친구' 두 제품이다. 좋은친구는 주로 미국에 수출된다. 찾을수록은 호주, 뉴질랜드, 일본, 캐나다 등지다. 수출국가는 27개국이다."

    애플리즈 한임섭 대표는 양조장 창업 전 엔지니어링 회사인 벡텔 직원이었다. 엔지니어 출신으로 글로벌 기업에 적을 두고 해외로 떠돌던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 술을 빚게 된 ‘터닝포인트’는 프랑스에서 생겼다. 한 대표는 1970년대 후반 오일쇼크 때 중동에서 5년여간 근무하는 도중에 8개월 정도 프랑스에 파견근무를 한 경험이 있다. 당시 사과탄산와인인 사이다와 사과증류주인 칼바도스를 맛보고 반해 ‘사과로 유명한 고향 의성에서 사과와인 양조장 창업'을 결심했다고 한다. 당시 한 대표의 나이가 27살이었다. 이듬해인 80년에 귀국해 사과과수원을 매입하고, 이웃 사과농가들과 힘을 합해 사과와인 제조기술을 꾸준히 개발했다. 1996년 양조장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사과와인을 출시했으나, 10여년간 국내시장에서 참담한 실패를 거듭 맛봤다.

    애플리즈 한임섭 대표가 수출용 사과와인 박스를 설명하고 있다. 애플리즈는 작년에 60억원 매출 중 90%를 수출에서 거뒀다. /박순욱 기자
    -매출의 90%가 수출이다. 수출은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

    "양조장 설립은 1996년이다. 공장만 차리면 판매는 문제없을 줄 알았다. 달고 상큼한 사이다 음료만 알고 있던 국내 시장에 제대로 된 사과탄산와인 사이다를 처음 내놓는 셈이니까, 경쟁자도 없을 것이니 ‘땅집고 헤엄치기’일 줄 알았다. 그러나, 대단한 오판이었다. 본격적인 수출 시작은 2011년이니, 그전에는 내수에서 실패를 거듭했던 시기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수가 안돼 할 수 없이 해외로 눈돌릴 수밖에 없었다."

    -내수시장 개척은 왜 실패를 거듭했나?

    "사과와인 양조장을 만들어 처음 십수년 동안 내수에 전력을 기울였다. 당시 국내 주류시장에는 오가피술이 인기를 끌었는데, 사과와인을 담을 와인 병을 구할 수 없어(독자적인 병을 만들기엔 생산량이 턱없이 적었다) 오가피술 비슷한 약주병에 담아 전국의 40여개 대리점과 공급계약을 맺고 음식점과 대형마트에 제품을 공급했다. 그러나, 술병부터가 짝퉁이다보니 거의 팔리지 않아, 남는 것은 주세와 직원 급여줄 걱정뿐이었다. 달달한 음료 사이다에 오랜 세월 길들여져 있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오리지널 프랑스 사이다(사과탄산와인)를 새로 맛보이기가 역부족이었다. 사과와인이 뭔줄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사가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렇다고, 영세 양조장이 마케팅에 큰돈을 쓸 수는 없었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게 그만큼 어려울 줄 몰랐다. 소비자들을 가르치며 시장을 만들어가야 했는데, 처음엔 이렇게 힘들 줄 몰랐던 것이다.

    국내 소비자들에겐 사과와인이 그만큼 낯설었다. 소주도 아닌 것이, 약주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포도로 만든 와인도 아니니, 정체성이 각인되기 어려웠다. 그런데다 이름은 익숙한 ‘사이다’라고 하니 소비자들이 헷갈려하는 게 당연했다."

    -수출로 전략을 바꾼 계기는?

    "오랫동안 내수 늪에서 헤매다 보니, 자금은 거덜났다. 그때 문득 ‘프랑스 사람이, 한국 사람 좋아하는 된장을 파리에서 만들어 프랑스 사람들에게 팔려고 하면 그게 잘될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과와인을 만들었으니, 아직 사과와인 맛을 모르는 국내보다는 와인 본고장에 수출하는게 더 맞다'는 깨달음이 그제사 왔다. 그때가 2002년쯤이었다. 이후로는 시장개척을 위해 해외를 많이 다녔다.

    하지만 해외라고 누가 꽃길을 깔아주겠는가? 우선은 사과와인에 어울리는 병이 없어 고생을 많이 했다. 한번은 이런 수모도 겪었다. 해외시장을 뚫어볼 요량으로 국내 대기업 약주병에 사과와인을 넣어 독일 쾰른주류박람회에 간 적이 있다. 부스에서는 ‘사이다’라고 소개하면서 시음을 진행했다.

    그런데, 시음을 하려고 사람들이 우리 부스에 길게 줄을 서는 게 아닌가? 무릎을 쳤다. ‘이제 됐다' 싶었다. 그런데, 행사가 다 끝나고서도 구매계약은 한건도 없었다. 그래서 통역해준 아르바이트에게 이유를 물었다. 대답이 기가 막혔다. ‘김일성 수령이 이끄는 나라에서 서양식 사이다를 갖고 온 줄 알고, 궁금해서 맛보기는 했지만 사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고 하지 않나. 다들 술병이 옛스러워서 북한에서 온 술인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여러번 겪었다. 하지만 많이 배웠다. 술과 그 술을 담을 병을 잘 매치시켜야 하는 것도 그때야 깨닫게 됐다. 술병 디자인을 많이 바꾸는 계기가 됐다."

    -수출 첫시작은 언제?

    "2005년부터다. 미국, 일본으로 제품을 보냈다. 그때는 석류주, 석류와인이었다. 석류와인이 애플리즈가 해외에 처음 수출한 제품이었는데, 이때도 엄청난 곤욕을 치뤘다."

    -어떤 문제였나?

    "양조장이 지방에 있다보니 디자인을 세련되게 꾸미기가 싶지 않았다. 한번은 인근의 대학 디자인담당 교수에게 수출용 석류와인 디자인을 의뢰했다. 그런데 술병 라벨에 석류를 ‘SUCK RYU’라고 영문표기를 하고 미국으로 제품을 대량 보냈다. 그랬더니 현지에서 난리가 났다. ‘도대체 술 이름에 왜 욕(SUCK)을 썼느냐'는 소비자 항의가 빗발쳤다. 영어로 ‘SUCK’이 심한 욕이란 걸 미처 몰라서 생긴 해프닝이었다. 디자인을 맡은 교수는 물론 최종 책임자인 나도 몰랐다. ‘류몽’으로 술이름을 급하게 바꾸었다. 현지에서 술병 라벨을 교체했다. 술값보다 현지 시카고에서 라벨 떼고, 새로 붙이는 비용이 더 컸다."

    -현재 수출국가 수는? 최대 수출 국가는?

    "27개 국가다. 미국 수출이 20% 정도로 가장 많다. 작년은 미국 한 나라에 10억원 정도 수출을 했다."

    -국내는 아직 사이다(사과탄산와인) 시장이 작다. 외국은?

    "사이다 술이 의외로 여러 나라에서 많은 양이 팔린다. 미국 오레곤주나 포틀랜드에는 사이다펍이 있다. 맥주펍이 있듯이 사이다펍이 있다. 미국은 수년 전만 해도 사이다 판매량이 맥주보다 더 많았다는 통계도 있다."

    애플리즈는 사과와인을 3년간 옹기에서 숙성한 다음, 병입한다. /박순욱 기자
    -국산 사과로 만든 사과와인은 가당을 하지 않으면 알코올 도수가 와인치고는 낮다. 당을 어떻게 높이나?

    "사과즙을 저온에서 농축하면 당도를 높일 수 있다. 이건 새로운 기술이다. 그래서 저온농축과정을 거쳐 당 함유량을 높인 사과즙을 발효시킨다. 1차 발효가 끝나면 알코올 농도가 12% 정도까지 오른다. 저온농축시킨 사과즙을 추가한 2차 발효 후에는 알코올 도수가 15~16도까지 올라간다. 포도와인보다 오히려 알코올 도수가 더 높다."

    애플리즈 한임섭 대표는 "올해 2021년을 내수를 다지는 원년으로 삼겠다"며 내수공략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프리미엄 사과증류주도 새로 내놓을 작정이다. 그러나, 시장 반응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애플리즈는 작년에 내수시장을 염두에 두고 신제품 사이다 ‘헤베'를 내놓았다. 사이다 제품으로는 2003년에 처음 내놓은 ‘유스풀’이 있고, 두번째 ‘에피소드’에 이은 세번째 제품이 헤베다. 유스풀은 진작에 단종됐고, 생산중단은 모면한 에피소드는 여전히 존재감이 없다. 헤베 역시 시장의 반응이 곱지 않다.

    대동여주도 이지민 대표는 헤베에 대해 "푹 익은 사과의 향, 사과 잼향이 두루 느껴진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사이다의 특징인 탄산의 존재가 크게 느껴지지 않아서 사이다가 아닌, 당도를 뺀 사과와인을 만난 느낌"이라는 지적을 빼놓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그리 호의적인 평가가 아닌 셈이다. 스파클링 수준의 폭발적인 탄산은 기대도 하지 않지만, 헤베가 주는 탄산은 다소 약하고, 그나마 피니시(술을 마시고 나서 느끼는 여운)가 짧다는 지적이 많다. 제대로 된 와인병에 담아 판매하는 사과와인 ‘한스오차드'는 풋사과 향이 인상적이었지만 전체적으로 사과향이 약하게 느껴졌다. 재료가 갖고 있는 본연의 향이 잘 우러나는 포도와인과 달리, 태생적으로 사과와인은 사과 본래의 향과 맛을 살리기가 쉽지 않다. 국내 사과술 중에 사과와인이 아닌, 사과증류주가 대세인 것도 이때문이다.

    -음료 사이다 시장이 굳건한 국내서 사이다 술을 팔기가 어렵다.

    "2003년에 ‘유스풀’이란 이름의 사이다를 처음 내놓았는데, 국내에서는 알아주지 않았다. ‘알코올이 들어간 엄연한 술인데, 왜 음료인 사이다라고 이름 붙였지?’ 이런 반응이었다. 생산자와 소비자와의 간극이 멀어서 한국에서 사이다 시장을 만드는데 실패했다.

    헤베는 내수시장을 염두에 두고 새로 내놓은 제품이다. 일부 수출도 하고 있다. 헤베는 세번째 사이다 제품이다. 두번째 제품은 알코올 도수 3.5도인 저도수 발포주인 ‘에피소드’. 지금도 생산하고 있다."

    -매출의 90%가 수출이란 얘기는 뒤집어 말하면 내수가 취약하다는 말이다. 그에 대한 대책이 있나?

    "국내 시장에서 초창기 고생을 많이 했다. 또 예상 외로 해외에서는 선전을 하고 있다. 그러니 급하게 국내 매출을 높이려고 노력할 필요가 당장은 없다. 대신에, 좀 더 에너지를 축적시킨 이후에 국내에 새로운 시장을 펼쳐 보자는 생각으로 몇가지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 중반쯤 되면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참이다. 어쨌든 국내시장은 아직도 어렵고, 성공못한 난공불락의 성이다. 매출보다 마케팅 비용이 더 큰 시장이 국내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능성이 엿보이는 것도 국내시장이다. 1996년 양조장을 연 초창기에는 사과탄산주(사이다) 자체를 소비자들이 거의 몰랐지만, 이제는 해외여행, 지식교류가 활발한 덕분에 이전보다는 여건이 훨씬 낫다고 본다.

    사과브랜디 하면 칼바도스를 최고로 친다. 그런 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지금도 ‘금과명주’란 이름의 사과브랜디가 있지만, 오크통에 제대로 숙성시킨 고급 브랜디를 개발 중에 있다. 작년에 선보인 헤베의 고급 버전도 준비 중이다. 2021년은 애플리즈가 내수를 다지는 원년으로 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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