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硏 "경기 지역화폐 소상인 매출 57% 증가 주장은 과대포장"
KDI "전국민지원금 소비효과는 30%"…재정건전성 우려 기재부 대변하나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이 경기도의 지역화폐 효용론을 다시 비판했다. 이에 따라 지역화폐를 정책적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우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와 조세연의 2차 논쟁이 시작되는 모양새다.

조세연은 지난 4일 공개한 '지역화폐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선행연구검토를 통해 경기연의 ‘지역화폐의 경기도 소상공인 매출액 영향 분석: 2019년 1~4분기 종합’ 보고서를 직접 비판했다. 경기연 보고서는 지난해 9월 간행된 것으로 "지역화폐 결제액이 늘어나면 소상공인 매출액이 57% 늘어난다"는 결론을 담고 있다.

이에 앞서 한국개발연구원(KDI)도 14조2000억원 가량의 전국민 재난지원금의 경제효과가 4조원에 불과하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전국민 재난지원금 효과가 정치권 기대에 못미친다는 내용으로, 이를 추진한 여권을 당황하게 만든 바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을 중심으로 2차 전국민재난지원금 지급 주장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여권 정치인들이 요구하는 지역화폐 등을 비판하는 배경에 기획재정부의 의지가 상당히 녹아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전국민 재난지원금으로 재정건전성이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시각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전경

◇ 이재명, 지난해 9월 조세硏 ‘지역화폐’ 비판에 발끈

조세연의 이번 보고서는 경기연 보고서의 지역화폐 효용론의 근거를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우선 경기연 보고서는 지역화폐의 도입 후 지역화폐로 결제한 고객이 있었던 소상공인의 매출액이 206만원 증가했고, 지역화폐 결제액이 증가하면 소상공인의 매출액도 45% 증가했으며 동일점포 내 비교를 통해 지역화폐 결제액의 증가 시 소상공인 매출액이 57% 증가했다고 결론을 제시했다.

그러나 조세연 보고서는 경기연이 제시한 매출액 증가 효과에 대해 "무상으로 지급된 지역화폐 효과와 소비자가 일정 부분 할인된 금액으로 구입한 지역화폐 효과가 모두 더해져 있는 것으로 이에 대한 구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역화폐 효과 분석을 위해서는 현금 대신 일정 부분 할인된 금액으로 구입해 사용하는 지역화폐를 분석해야 하는데, 경기연 연구는 2019년 지역화폐로 지급된 청년배당 1760억원, 산모건강지원사업 423억원 등 2183억원의 지원금 효과가 뒤섞여 지역화폐 효과 추정에 반영됐단 이야기다.

조세연은 또 경기연의 보고서가 분석 과정에서 계절적, 지역적 요인이 통제되지 않아 소매업 매출 변화가 지역화폐 때문인지 계절이나 지역 요인에 의한 것인지 구별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지사와 조세연의 악연은 지난해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세연은 이번에 공개된 보고서의 요약본을 공개했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다른 지역으로 소비가 유출되는 것을 막아 지역내 자영업자 매출이 증대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나라 전체에서 보면 소비 지출은 같고 지역화폐 발행·유통·관리 예산이 추가로 소요된다는 내용이었다.

이 지사는 이를 접하고 "근거 없이 정부정책 때리는 얼빠진 국책연구기관"이라며 "정부 정책을 폄훼한 정부연구기관을 엄중 문책해야 한다"고 했다. 김유찬 조세연 원장은 이같은 이 지사 발언에 "연구 보고서 내용을 철회할 계획은 전혀 없다"고 했다. 이 지사는 이에 "연구 보고서 시작 단계부터 지역화폐를 아예 ‘열등한’ 것으로 명시하고 시작하는데, 조세연이 갈수록 이상하다"고 질타했다. 또 조세연에 대해서는 "청산해야할 적폐"라고도 했다.

그러나 이 지사와 조세연의 논쟁이 계속되면서 국회 예산정책처와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용역을 받은 한국재정학회 등도 지역화폐 정책의 한계를 잇따라 지적한 사실도 드러났다. 특히 국회 예산정책처는 올해 본예산과 1~3차 추가경정예산안 관련 분석 보고서마다 조세연 보고서와 유사한 논거로 지역화폐 정책을 비판해왔다. 한국재정학회가 작성해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지난해 3월 발간한 ‘지역화폐가 지역의 고용에 미치는 효과’ 보고서도 지역 화폐의 신규 도입이나 확대 발행이 지역의 고용 규모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미루 지식경제연구부, 오윤혜 시장정책연구부 연구위원(왼쪽)이 작년 12월 23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1차 긴급재난지원금 정책의 효과와 시사점'에 대해 분석 발표하고 있다.

◇ KDI도 정치권 포퓰리즘에 쓴소리 "피해계층 정밀 식별해 지원해야"

조세연 같은 국책연구원이 정치권의 포퓰리즘을 비판한 ‘쓴소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지난달 23일 공개한 '1차 긴급재난지원금 정책의 효과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14조2000억원을 뿌린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인해 늘어난 신용카드, 체크카드 매출은 약 4조원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소비 진작 효과가 30%에 그쳤다는 뜻이다. 대신 KDI는 피해계층을 식별해 직접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코로나 확산 상황에서 재난지원금 지급을 통한 가구소득 보전만으로는 여행업, 대면서비스업 등 피해가 큰 사업체 매출 확대에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다.

오윤해 KDI 연구위원은 "코로나 재확산에 따라 재난지원금을 다시 지급해야 할 상황에 대비, 경제주체별 피해 규모에 대한 자료를 사전에 수집·분석해 피해계층을 신속하고 정밀하게 식별해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국책연구원들의 이같은 움직임의 배경에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을 이유로 무분별하게 재정을 확대하려는 정치권을 견제할 때가 됐다는 연구원 및 기획재정부 등의 공감대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는 지난해 전국민 대상 1차 재난지원금 지급 결정 직전까지 여당의 전국민 대상 지급안에 반대 입장을 고수하다가 마지못해 동의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4월 28일 국회에서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은) 일회성"이라며 "만에 하나 지원 금액을 다시 논의해야 하면 100%(대상 지급)보다 (필요한 수준에) 맞춰서 할 것이고 또 다시 (100% 지급론과) 다른 의견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10월 13일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2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 참석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전국민 지원금’ 전문가들도 회의적… "당장은 피해 심한 곳에 집중해야"

그러나 정부여당은 다가오는 4월 재보선을 계기로 두번째 ‘전국민 재난지원금’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는 상태라 국책연구원의 ‘저항’이 얼마나 먹힐지는 미지수다.

지난 4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정세균 국무총리는 각각 방송 인터뷰를 통해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재난지원금 지급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 대표는 KBS 인터뷰에서 "코로나가 진정되고 경기를 진작해야 된다 할 때는 전국민 지원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했고, 정 총리는 MBC에 출연해 "전국민이 겪는 고통이 있다. 피해가 많은 분들에 대한 선별적 지원과 별도로 경기가 진작돼야 한다"고 했다.

이재명 지사도 같은 날 밤 페이스북에 ‘국회의원님들과 기재부 장관님께 보낸 편지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1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통해 경제효과가 증명된 지역화폐로 전국민에게 보편지급하는 재난지원금을 실행해달라"고 말했다. 이 지사는 경기도 지역화폐의 소비 견인 효과를 주장했던 지난해 12월 23일자 경기도 보도자료를 또다시 언급했다. 2020년 4~8월 카드사 통계를 분석한 결과 중앙정부 긴급재난지원금과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으로 경기도에 지급된 금액 5조1190억원으로 인해 2조6254억원의 추가 소비지출이 일어났다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 경제학계에서는 코로나19에 대한 방역 상황에서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재난지원금은 이르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당장은 피해가 심한 곳에 집중하는게 더 적당한 때"라고 말했다. 하 교수는 "선별 지원은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상황에서 방역조치에 대한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 필요하고 피해보는 업종에 대한 보상의 의미 등 명분이 있지만, 전국민 지원은 소비 촉진이나 거시경제 순환을 촉진하면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의미"라면서 "지금은 방역쪽에 무게중심이 가 있어서 돈을 주고 쓰라고 해도 나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백신이 공급되고 방역 문제가 해결된 뒤에야 거시경제 부양책을 고민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