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업계 "국내 투자 위축" 우려
"공정위 나쁜 선례 만들어… 불확실성 높은 나라 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의 '배달의민족(배민)' 인수를 조건부 승인한 데 대해 스타트업 업계는 "국내 투자에 심각한 위축을 가져올 것"이라고 반발했다. 공정위는 28일 "DH가 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 인수 시 DH의 자회사 ‘요기요’를 매각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경쟁 제한을 막는다는 이유로 배민과 요기요의 기업결합을 사실상 불허하는 기존 입장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이날 공정위 발표에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우려는 했어도 설마설마 했다"며 "공정위가 이같은 무리수를 강행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충격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누가 봐도 최근 쿠팡이츠가 배달 시장에서 치고 올라오는 상황이지 않느냐"며 "공정위처럼 시장을 바라보고 정부가 규제하면 앞으로 누가 국내 유망한 기업에 투자하려고 할 지 걱정이다"고 했다.
국내 스타트업 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코스포)도 입장문을 통해 "이번 결정은 디지털 경제의 역동성을 외면한 시대를 역행하는 판단"이라고 밝혔다. 코스포는 "플랫폼 사업자가 네트워크 효과를 바탕으로 얼마든지 음식배달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상황을 외면했다"며 "오픈커머스 사업자가 음식배달 시장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 시장에 연이어 진출하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 사업자가 라이브커머스 시장에 진출하고, 유통업자가 물류업에 진출하고, 포털사업자가 다양한 사업을 확장하는 모습이 디지털 경제의 현주소"라고 했다.
코스포는 "국내 대표 유니콘 기업 우아한형제들과 글로벌 기업 DH의 결합은 국내 최대규모 스타트업 M&A인 동시에, 글로벌 진출의 중요한 이정표였다"며 "그러나 이번 공정위 결정은 우리 스타트업의 글로벌 가치 평가에 악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글로벌 진출에도 막대한 손실을 초래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결정의 과정과 결과 모두 혁신성장을 저해하고 국내 스타트업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음을 무겁게 인식하길 바란다"고 했다.
이번 최종 결론이 발표되기에 앞서 이미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공정위의 ‘조건부 승인’ 방침에 대한 우려를 강하게 표한 바 있다. 코스포는 지난달에도 입장문을 내 "디지털 경제의 역동성을 외면하고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를 고사시키는 판단"이라며 "미래에 돌이킬 수 없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며 판단의 재고를 요청한다"고 했었다.
이 단체는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의 선순환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엑시트(매각 등 출구전략)이며, 스타트업이 국내 시장을 넘어 성장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기업과의 전략적 협력이 중요하다"면서 "배민과 DH의 기업결합 심사가 1년 넘게 지체됐고 글로벌 투자 시장에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추가하는 부정적인 신호가 전달됐다"고 했다. DH의 배민 인수 소식이 처음 난 것은 지난해 12월이지만 공정위의 제동에 M&A(인수·합병) 절차는 지금까지 ‘올 스톱’ 상태다.
코스포는 음식배달 시장을 국내 국한해서 볼 게 아니라 글로벌 시장으로 넓게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 최대 유통업체 아마존이 음식배달 플랫폼 ‘딜리버루’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 플랫폼 알리바바도 중국 1위 음식배달 플랫폼 ‘이러머’를 인수하는 등 기업간 합종연횡과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시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공정위는 DH가 기존 운영하던 요기요, 배달통과 이번 인수 대상인 배민의 국내 배달 앱 점유율이 99%에 달하기 때문에 합병을 그대로 승인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를 두고 코스포는 "배민과 DH 간 인수합병이 발표된 1년 전과 비교해봐도 국내 배달시장은 상당히 달라져 있다"며 "전에 없던 강력한 신규 사업자가 등장했고, 배달앱 기업이 아닌 오픈마켓 사업자가 배달앱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번 공정위 결정은 국가 간,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는 디지털 경제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판단"이라고 했다.
규제 혁신을 모토로 하는 시민단체 ‘규제개혁 당당하게’의 대표활동가 구태언 변호사는 "넓게 보면 쿠팡이나 마켓컬리, 이마트 새벽배송과 같은 신선식품 배달도 음식배달 시장으로 볼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 "조리된 음식 시장으로만 좁게 볼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공정위가 아날로그 시각으로 디지털 산업을 규제하려다 보니 나타난 결과"라고 했다.
구태언 변호사는 "DH와 배민 간 딜(거래)은 김봉진이라는 우리나라 젊은이가 7년만에 이뤄낸 성과라고 믿을 수 없는 큰 기회였다"며 "공정위의 이번 결정으로 나쁜 선례가 생겼고 글로벌 투자자 입장에서 한국은 투자하기 꺼려지는, 불확실성 높은 나라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