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총생산(GDP)이 1.1%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정부가 어려워진 경제 상황을 반등시키기 위해 내년 경제정책의 중심축을 소비 진작과 투자 활성화, 수출 강화 등 3종 패키지로 잡았다. 투자, 소비 중심의 경기부양으로 내년 성장률을 3.2%로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는 잠재성장률과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산업 재편을 위해 디지털, 빅3(시스템 반도체, 미래차, 바이오헬스), 친환경·저탄소를 중심으로 하는 구조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문한 필수노동자와 청년일자리 등 고용 대책도 마련할 계획이다.
정부는 내년도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공공·민자·기업 ‘3대 분야 총 110조원 투자’를 목표로 각종 프로젝트를 발굴, 집행하기로 했다. 이 중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로만 28조원을 채우겠다는 목표다. 민간 소비를 진작하기 위해 올해 대비 늘어난 신용카드 사용증가분에 대해서는 10%의 추가공제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그간 정책효과가 컸던 승용차 개별소비세 30% 인하는 내년 6월까지 연장하고, 고효율 가전 구매금액 환급사업도 내년 500억원 규모로 재추진된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과제들이 추상적인 선언에 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책 목표를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로드맵보다는 일회성, 재정 뿌리기 식의 사업이 많다는 것이다. 또 올해 여러차례 진행한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진행되거나 언급된 사업이 많아 새로운 것이 없는 ‘재탕’이나, 성장률을 끌어올릴만한 ‘한방’이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내년 3.2% 성장 위해 ‘투자·소비·수출’에 집중
정부는 17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확대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내년 경제성장률 3.2% 달성 등 ‘경기회복과 활력 복원 및 선도형 경제로의 대전환’을 목표로 설정한 2021년 경제정책방향(경방)을 논의, 확정했다.
정부는 이번 경방에서 빠르고 강한 경제반등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올해 -1%대 성장률이 유력할 정도로 악화된 경기 흐름에 ‘반등 모멘텀’을 만드는 데 정책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내년에 총지출 558조원의 예산안을 책정했다. 올해(512조3000억원) 대비 8.9% 증가한 수준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정부는 우선 확장적 재정정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상반기 재정 집행률을 63%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62%로 사상 최고치였던 올해 상반기보다 높은 수준이다.
올해는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예산 사용이 늘면서, 당초 목표치인 62%보다 3.1% 늘어난 198조9000억원(65.1%)을 상반기에 집행했다. 정부는 재정집행 목표를 1%P 끌어올리면 내년 상반기 중 정부 예산이 올해와 비교해 10조원 이상 더 풀릴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처럼 목표치를 초과하면서 조기집행액이 더욱 커질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투자활성화를 위해 110조원 규모의 투자 프로젝트를 발굴, 추진할 계획이다. 기업의 설비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정책자금 23조원을 공급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자금력이 취약한 중소·중견 기업들의 공장 자동화설비 도입을 위해, 관세감면율을 최대 70%까지 한시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또 유턴 활성화를 위해 해외사업장 축소기준과 동일 제품 생산기준에 대해서 예외를 인정하기로 했다. 비수도권 첨단 투자시에도 유턴 보조금을 추가로 지원한다.
◇10만명 ‘청년 인턴’ 사업 추진.. 고용 줄어도 공제혜택
민간 소비 진작을 위해서는 올해 12월말 종료될 예정이었던 신차 교체 시 개별소비세 인하 혜택을 내년 6월말까지 연장한다. 또 내년 1분기 중 고효율 가전기기 구입 시 구매 금액의 일부를 환급해주는 사업을 다시 시작한다. 이 사업은 올해 3000억원의 예산으로 시작해, 지난 9월 조기완료 된 바 있다. 환급사업이 진행된 5개월 동안 삼성전자(005930), LG전자(066570), 위니아딤채, 위니아대우, 쿠쿠, 쿠첸, 오텍(067170)등 가전사들의 매출액 약 2.2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정부는 소비 회복여건 조성을 위해 지역사랑·온누리상품권 규모를 내년 18조원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올해 11조5000억원보다 6조5000억원(56.6%) 늘어난 수준이다. 공무원들의 연가보상비 일부를 온누리 상품권으로 선지급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22일 지시한 필수노동자 대책도 추진된다. 정부는 코로나19로 업무가 급증하고 방역에 취약한 돌봄, 보건, 배달·대리기사, 환경미화, 콜센터 등 5개 분야 필수노동자를 지원할 방침이다. 또 코로나19로 발생한 교육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서민금융진흥원 교육비 대출에 학원비 등 사교육비를 포함시키기로 했다.
코로나19 특수성을 감안한 고용안정 대책도 마련했다. 정부는 고용증대 세액공제 제도를 내년에 한시적으로 개편하기로 했다. 올해 고용이 감소해도 고용 유지로 간주하고, 공제혜택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또 민간 8만명, 공공 2만명 등 10만명 규모의 청년 일경험사업도 진행한다. 정부는 사업의 내실화를 위해 기관평가에 실적을 반영하고, 내년 공공기관 정규직 채용의 5%를 일경험 참여자로 채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나치게 직관적, 재탕 많아"… 재정절벽 우려도
일각에서는 주요 추진 과제들이 기존 정책을 반복하는 데 그쳤고, 구체적인 로드맵이 보이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온다. 또 하루 코로나 확진자 수가 1000명을 넘어서는 등 3차 재확산이 진행되는 가운데, 여전히 낙관적인 경기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제시한 내년 성장률 전망치(3.2%)는 주요 국내외 연구기관과 격차가 크다.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은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각각 3.0%, 3.1%로 봤다. 현대경제연구원도 성장률을 3%로 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더 낮은 2.8%를 전망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성장률 전망치 등이 낙관적인 인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경기반등에 대한 의지가 오히려 잘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핵심 과제들이 기존 정책을 반복하는 느낌이고, 구조개혁의 장기적인 추진 방향이 구체적이지 않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는 플랜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또 상반기에 예산이 집중되면서 내년 하반기에 재정절벽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6년간 정부는 ‘상반기 조기집행→하반기 추경’ 공식을 이어왔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내년 상반기에 재정을 적극적으로 투입해 소비나 투자가 정상화되면 민간 부분이 하반기를 이끌어 갈 수 있어 조기집행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며 "내년의 재정 상황은 너무 이른 이야기이고, 적기에 재정을 집행한 뒤 코로나19 등의 상황을 봐야할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