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국 백신 왕좌' 노리는 중국, 아스트라제네카 주춤한 틈 파고드나

조선비즈
  • 이현승 기자
    입력 2020.12.10 14:17 | 수정 2020.12.10 14:38

    UAE, 세계 최초로 中 시노팜 백신 공식 승인
    모로코는 성인 80%에 시노팜 백신 접종 예정
    개도국 희망이었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늦어져
    대체재로 中 백신 주목…값 싸고 보관 쉬워
    임상시험 세부 데이터 공개 안해 안전 우려

    "코로나 백신을 전세계 공공재로 만들겠다"는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공언이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화이자, 모더나 백신보다 저렴하고 보관·배송이 쉬워 개발도상국의 희망이라는 찬사를 받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신뢰성 문제로 휘청이면서다. 돈과 인프라가 부족한 개도국이 대체재로 중국산 백신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9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날 중동 아랍에미리트(UAE) 정부는 중국 국영 제약사 시노팜의 자회사 중국생물기술집단(CNBG)이 만든 코로나 백신이 "86%의 효과를 보였으며 심각한 안전상 우려사항도 없었다"며 국내 사용을 승인했다.

    UAE 부통령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이 지난달 트위터에 시노팜 CNBG의 백신을 투여 받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올렸다. / 트위터 캡처
    UAE 정부는 자국에서 진행된 3상 임상시험 중간 결과를 검토한 후 이런 결정을 내렸다. 이 백신을 국민들에게 대량 접종 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단지 "전세계적인 팬데믹과의 싸움을 향한 중요한 한걸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8일 모로코가 시노팜 백신을 이번달 성인 80%에게 접종하겠다고 밝힌 데 이은 두번째 낭보다. 그럼에도 중국 정부는 물론 시노팜은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중국 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 이거나, UAE 정부가 발표한 86%라는 효과가 화이자, 모더나(95%) 보다 낮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UAE의 백신 승인 소식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올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사용 승인을 받지 못할 것이란 보도가 잇따른 가운데 나왔다. NYT는 회사 측이 백신 참가자에게 이상 증상에 나타나 임상시험을 중단하고도 이틀 뒤 FDA와의 컨퍼런스콜에서 이를 알리지 않았으며 관련 데이터를 늦게 제출해 규제당국의 신뢰를 잃었다고 전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승인을 기다리던 개도국 정부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이 백신은 3상 임상시험 중간결과에서 평균 코로나 예방 효과가 70%로 화이자와 모더나에 비해선 떨어졌지만 가격이 커피 한잔 값에 불과하고 상온 보관이 가능해 돈과 인프라가 부족한 개도국 정부에게 유일한 희망이나 다름 없었다.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재정 실탄이 충분한 국가들은 화이자, 모더나와 구매 계약을 통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빈자리를 재빨리 채우고 있지만 상당수 개도국은 대체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영국 과학정보 분석업체 에어피니티에 따르면 아스트라제네카가 공급하기로 한 백신 물량은 중·저소득 국가가 이용 가능한 백신의 4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승인이 늦어지면 상당수 개도국이 중국산 백신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시노팜 백신도 화이자, 모더나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백신 보관 온도가 2~8도로 높은 편인데다 보관 가능 기간도 최대 3년으로 길다. 그동안 인플루엔자나 소아마비 백신에 광범위하게 이용돼 왔던 제조 방법으로 만들어졌는데 이 방식은 부작용이 적다는 장점도 있다.

    시노팜은 전세계적으로 보급할 수 있는 백신 5억회 분량을 준비하고 있다고 중국 과학기술부 관보 과학기술데일리가 보도했다. 시노팜의 류징전 회장은 구체적인 국가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10개 이상의 국가들이 백신을 사고 싶다고 요청해왔다"고 11월 인터뷰에서 말했다. 중국의 또다른 백신 제조사 시노백은 브라질, 인도네시아, 터키와 백신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2020년 9월 24일(현지시각) 중국의 또다른 제약사 시노백의 한 연구원이 코로나 백신 ‘코로나백’을 생산하는 실험실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 / AP연합뉴스
    그러나 중국 정부와 제약사가 임상시험에 관련한 세부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 백신의 효능과 안전성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의료계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UAE 정부가 낸 보도자료에도 구체적으로 임상시험에서 나타난 코로나 감염자 수나 참가자의 나이 등 세부 정보가 대부분 누락 됐다.

    런던 위생 열대의학 대학원 백신센터의 베이트 캄프만 소장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며 "임상시험에서 코로나 사례가 얼마나 나왔는지 모르고선 (임상시험 결과를) 판단하기 어렵다. 시험 결과가 구체적으로 공개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콩대의 바이러스학자인 진동옌도 UAE 정부가 공개한 정보가 썩 좋지 않다(mediocre)고 평가하면서 "그들이 블랙박스 처럼 모든 것을 비밀리에 유지한다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혼란과 불신을 야기해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뉴욕에 있는 아이칸 의과대의 면역학자 플로리안 크레이머 는 "데이터가 더 공개되면 매우 훌륭하겠지만 86%라는 숫자 자체는 매우 훌륭하다"며 "전혀 문제 될게 없고 나는 그 백신을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국제앰네스티·글로벌저스티스나우 등의 연합체인 백신동맹(PVA)에 따르면 소득 상위권 일부 국가들이 올해 코로나 전체 백신의 53%를 사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부탄·에티오피아·아이티 등 70여개 저소득 국가의 국민 90%가 내년 말까지 백신 예방 접종을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일각에선 중국이 코로나 백신을 중국의 영향력과 소프트 파워를 확대하는 수단으로 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경제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의 아이모젠 페이지 자렛은 CNBC에 "완전히 이타적인 행위라고 보진 않는다"며 "백신 공급으로부터 무언가 이득을 취하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국립대의 자이안총 정치학 부교수는 "중국은 폭넓은 범위의 이슈에 대한 협력을 요구할 수 있다"며 "일본, 동남아와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남중국해에서의 행동이나 중국 IT 제품을 더 많이 수용하라고 하는 것 등이 포함될 수 있지만 이는 모두 가능성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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