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없이는 정부 목표인 탈(脫)석탄, 탄소중립 어려워"

세계 3대 항공기 엔진 제작업체인 영국 롤스로이스는 영국에 16기의 소형모듈원전(SMR)을 본격적으로 짓기 시작한다고 이달 11일 밝혔다. 롤스로이스는 "소형 원자로를 활용하면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무(低)탄소 전력과 항공연료, 수소를 공급할 수 있다"면서 "향후 2500억 파운드(약 370조원) 규모의 수출 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롤스로이스는 지난해 말 이미 소형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한 바 있는데, 최근 영국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추진 중인 녹색정책의 일환으로 소형원전 개발에 5억파운드(약 7400억원)를 투입하기로 하면서 이 프로젝트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롤스로이스가 이끄는 ‘영국 SMR 컨소시엄’은 2030년까지 소형원전 16기를 순차적으로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각 발전소의 수명은 60년으로, 440MW(메가와트) 용량의 전기를 45만여 가구에 공급할 것으로 예상된다.

롤스로이스의 소형원전 조감도

영국은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0)’ 목표를 달성하려면 원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현재 영국은 전력의 20%를 원전으로 공급하는데, 10년 내로 기존 원자력발전소 7기 중 6기가 노후화 등을 이유로 가동 중단될 예정이라 전력난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BBC는 전했다. 이에 영국 정부는 기존 대형원전의 대안으로 안전성을 높이고 건설 비용을 낮춘 차세대 소형원전을 제시하고, 관련 연구개발(R&D)과 건설을 지원하기로 했다.

영국 외에 유럽 곳곳에서도 원전 건설이 재개되는 분위기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 20일 루마니아의 80억달러(약 8조8700억원) 규모 원전 확대 사업을 승인했다. 이로써 루마니아는 미국 등의 지원을 받아 체르나보다 원전 3·4호기를 새로 건설할 수 있게 됐다. 루마니아 외에도 체코, 폴란드,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등이 노후 원전을 보수·연장하거나 신규 원전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유럽이 원전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온실가스 때문이다. EU는 환경오염과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보급을 확대하고, 수소경제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는 친환경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 일환으로 2050년까지 ‘탄소제로’를 선언했지만, 저탄소 에너지원이자 24시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원전 없이는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보고 원전을 에너지 정책에 포함하고 있다. 원전을 계절이나 날씨에 영향을 받는 재생에너지를 보완하는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고, 수소 생산에도 적용한다는 구상이다.

친환경 정책을 내세운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도 재생에너지와 함께 차세대 원전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를 기점으로 원전 활용과 건설을 지원하는 친원전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했고, 트럼프 행정부 들어 본격적으로 미래형 원자로 개발과 소형원전 건설에 투자하고 있다.

유럽에 이어 우리나라도 지난 10월 ‘2050년 탄소제로’를 선언했지만 현재 에너지 정책으로는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동시에 키우려는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는 탈석탄에 탈원전까지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발전의 40%를 차지하는 화석연료를 어떻게 대체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온실가스 퇴출’이 목표라면 우리나라도 탈(脫)원전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통령 직속 기구인 국가기후환경회의도 지난 23일 문재인 정부가 선언한 ‘2050년 탄소중립(탄소제로)’ 목표를 달성하려면 원전을 포함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표를 했다. 이날 국가기후환경회의는 2045년까지 온실가스의 주범으로 꼽히는 석탄발전을 완전히 퇴출해 기후문제에 대응하자고 제안했다.

안병옥 국가기후환경회의 운영위원장은 이날 "조기 폐쇄되는 석탄발전소의 공급 전력을 어딘가에서 조달해야 하는데, 천연가스와 재생에너지, 원자력 등 3가지가 대체재"라며 "원전도 여러 가지 대안의 하나인 만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석탄 등 기존 화석연료 발전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탈원전 정책에 맞춰 원전 비중을 2030년까지 18%까지 낮추면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는 "전기차 보급 확대, 가정용 냉난방의 탈탄소화 등 탄소중립 사회로 전환하면서 2050년이면 전기 수요가 지금의 2배로 늘어날 예정인데 재생에너지로는 이런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며 "정부가 대안으로 내세운 천연가스 역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화석연료라 사용할 수 없다. 결국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병행하는 방향으로 에너지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