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단돈 1달러에 팔아버린 美 롱비치항 해운터미널, HMM이 되사려하니 2조원 넘어

조선비즈
  • 권오은 기자
    입력 2020.11.25 06:00

    HMM(옛 현대상선(011200))이 미국 서부 해안에 터미널을 추가로 확보하려고 하고 있지만, 마땅한 매물이 없어 아쉬움을 내비치고 있다. 한진해운은 과거 미 캘리포니아주(州) 롱비치항에 최대 규모의 터미널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터미널은 법정관리 여파로 매각됐다. 법원 명령에 따라 불과 1달러에 팔아버린 터미널 지분에 대한 안타까움이 해운업계에서 계속 회자되고 있다. 지금은 2조원을 주고 사기 어렵다는 것이다.

    HMM은 "주력 노선인 미주 서안에 물동량이 크게 늘면서 터미널 확보 필요성이 커졌다"면서 "다만 마땅한 터미널 매물이 없어 확보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HMM 컨테이너선이 미국 롱비치항에서 하역 작업을 하고 있다. /HMM 제공
    25일 HMM에 따르면 경영진은 지난 10월 15일 열린 이사회에서 ‘미서안 터미널 신규 확보 계획’을 보고받았다. 현재 미국 롱비치항에 보유하고 있는 터미널만으로는 처리할 수 있는 화물량에 한계가 있어 추가 확보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미 서안 노선의 경우 최근 물동량이 쏠리면서 정체현상이 극심하다. 컨테이너 하역 작업에 걸리는 시간이 기존보다 2배가량 길어져 일주일가량 소요되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하역 후 다시 창고로 옮겨지는데 추가로 일주일이 더 소요되는 일도 있다. 롱비치항의 경우 지난 9월 수입 컨테이너 물량이 40만6000TEU(1TEU는 6m 컨테이너 1개)를 기록했다. 역대 최대치다.

    상대적으로 터미널을 보유하고 있는 선사들은 이런 정체현상에서 자유롭다. 전용 터미널은 우선 사용권이 있기 때문에 화물을 먼저 내리고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일정대로 배가 움직일 수 있어 정시성(正時性)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 터미널이 부족한 해운회사는 한국 등 동아시아에서 수출 상품을 선적해 롱비치항에 일찍 도착해도 하역 순서에서 밀려 태평양 상에서 기다려야 한다.

    덴마크 해운분석기관 씨인텔(SeaIntel)에 따르면 HMM의 올해 3분기 정시성은 올해 58.8%로 지난해 3분기보다 28.4%포인트(p) 하락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대부분 선사의 정시성이 크게 악화됐다. 다만 HMM이 더 부진한 수준이다. 덴마크의 머스크(71.3%)나 스위스의 MSC(68.8%)와 격차도 커졌다.

    터미널을 확보하면 비용 측면에서도 요금이 고정되는 만큼 추가 부담을 줄일 수 있다. HMM도 롱비치항 부두(pier)T에서 컨테이너 터미널을 운영하는 토털터미널인터내셔널(TTI)의 지분 20%를 갖고 있어 지분 80%를 보유한 MSC와 동일한 터미널 이용 요율을 적용받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분 격차가 커서 터미널 운영 등에서 목소리를 내는 데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해운업계 내에선 2017년 한진해운의 파산 결정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나오고 있다. 한진해운은 2003년부터 롱비치항에 148만㎡ 크기의 터미널을 운영했다. 현재 MSC와 HMM이 보유하고 있는 TTI의 모태다. 터미널 지분 100%를 보유했던 한진해운은 2006년 물량 확보를 위해 전략적으로 MSC에 지분 46%를 넘겼다.

    투자가 이어지면서 연간 최대 300만TEU가 넘는 컨테이너 화물을 처리할 수 있는 터미널로 거듭났다. 실제로 2013년부터 200만TEU 이상의 컨테이너 화물을 처리했다. 롱비치항 전체 터미널 처리량의 30% 이상이었다. 롱비치시는 최대 규모의 터미널을 운영하는 한진해운에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터미널 앞 도로 이름을 ‘한진길(hanjin road)’로 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진해운이 어려움을 겪고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법원은 파산 결정했고 2017년 롱비치항의 지분도 매각을 명령했다. 2대 주주였던 MSC가 우선매수청구권을 갖고 있었다. MSC는 당시 현대상선과 컨소시엄을 구성, 지분 80%를 확보했다. 가격은 1달러. 대출금과 임대료 등 12억달러의 보증을 책임지는 대가였다. 한진해운이 청산 단계를 밟다 보니 상징적인 의미에서 1달러에 매각된 셈이다.

    미국 롱비치항의 부두 지도. 부두T(붉은원)에 HMM의지분이 있는 TTI가 운영하는 컨테이너 터미널이 위치해 있다. /롱비치항만청 홈페이지 캡처
    시간이 흘러 터미널 확보가 다시 중요해지면서 HMM이 미국 서안에 터미널을 추가로 확보할 계획을 세우게 됐지만, 실제 성사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전망이다. 매물을 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해운사 입장에서 핵심 자산인 터미널을 쉽게 팔지 않기 때문이다. 터미널이 매물로 나올 때는 대부분 인수·합병으로 해당 터미널을 팔아야만 할 때에 불과하다.

    지난해 홍콩의 선사 오리엔트 오버시즈 컨테이너 라인(OOCL)이 롱비치항 터미널을 매물로 내놓은 것은 OOCL의 모회사와 중국의 선사 코스코(COSCO) 합병 때문이었다. 미국 정부는 코스코가 롱비치항에 퍼시픽컨테이너터미널(PCT)을 프랑스선사 CMA CGM 등과 공동운영하는 데다가 LA항 웨스트베이슨컨테이너터미널(WBCT)도 갖고 있는 상황에서 OOCL이 보유한 터미널까지 보유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이후 호주 맥쿼리인프라스트럭처파트너스(MIP)가 17억8000만달러(약 2조원)를 들여 샀다.

    일본 선사 케이라인("K"line)이 지난 8월 롱비치항 등에서 터미널을 운영하던 인터내셔널트랜스포테이션서비스(ITS) 지분을 올해 호주 맥쿼리에 넘기기로 한 것도 일본 3대 정기선사의 통합회사 오션 네트워크 익스프레스(ONE) 출범 등과 맞물려서였다.

    이처럼 예외적으로 나오는 터미널 매물을 HMM이 확보, 미국 정부의 승인까지 받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HMM 역시 장기 과제로 여기고 있다. HMM 관계자는 "터미널 확보는 모든 해운사가 추진하는 과제"라며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적절한 대상을 찾아나가야 한다. 당장 터미널을 사들일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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