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한해 수십차례 먹통되는 증권사 시스템, 금융당국은 뭘하나

조선비즈
  • 정해용 증권팀장
    입력 2020.11.23 11:00 | 수정 2020.11.23 11:14

    ‘Errare humanum est, sed perseverare diabolicum.(에라레 후마눔 에스트 세드 페르세베라레 디아볼리쿰)’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기원전 4년~기원후 45년)가 한 이 말을 번역하면 "실수하는 것은 인간적이다. 그러나 실수를 계속하는 것은 극악무도하다"또는 "실수는 인간의 몫이지만 실수를 고집하는 것은 악마의 몫이다"라는 의미다.

    극악무도 또는 악마의 몫이라는 다소 과격한 의미로 번역되는 diabolicum(디아볼리쿰)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것은 지난 17일 오전이었다. 이날 국내 최대 증권회사 중 한 곳인 한국투자증권의 홈트레이딩시스템(HTS),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은 1시간30분 가량 접속이 되지 않았다. 9시10분부터 10시40분까지 투자자들은 거래를 하지 못했다. 회사는 오후에 발표한 공지에서 "로그인, 주식주문, 체결조회 등 일부 지연사항이 전부 해소됐다"며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고 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만도 지난 2월 3일 삼성증권(016360)을 시작으로 3월 9일 키움증권(039490), 3월 11일 SK증권(001510), 3월 13일 키움증권, 4월 21일 키움·한국투자·유진투자선물, 8월 31일 키움증권, 9월 1~2일 한국투자·삼성증권, 9월 28일 키움증권, 11월 17일 한국투자증권 등 지속적으로 장애가 발생하고 있다. 국내 최대 개인투자자들이 이용하는 키움증권은 올해에만 9번 접속장애가 발생하기도 했다.

    빅히트, 카카오게임즈 등 인기 공모주 청약이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일부 증권사 접속시스템이 먹통이 됐다. 국제유가가 급락하거나 미국 뉴욕 증시가 큰 폭으로 변동하는 등 이벤트가 발생해도 접속 불량이 나오기는 마찬가지다. 거래량이 조금만 늘면 전산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투자증권 거래가 1시간 30분 가량 정지된 지난 17일도 전날 미국 제약회사 모더나가 개발 중이던 코로나19 백신의 효과가 94.5%로 나타났다는 소식으로 뉴욕 증시가 급등했고 모더나 관련 국내 주식들에 대한 국내 거래량도 늘었던 때였다. 한국거래소 집계를 보면 이날 코스닥시장의 거래대금은 13조4417억8300만원으로 전날보다 31.1%가 늘었다.

    끊임없이 전산사고가 나는데도 증권사들이 이런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당국의 솜방망이 처벌 영향이 크다. 금융감독원의 전자금융감독규정에 따르면 증권사 전산사고로 해당 임직원에 대해 직무정지(정직)이상, 증권사에 대해 기관경고 이상의 중징계가 부과되기 위해선 해당 사고로 투자자가 50억원 이상의 피해를 봤다는 게 입증돼야만 한다. 아무리 증권사 HTS·MTS가 오래 멈춰도 이 금액보다 적은 피해가 발생하면 증권사는 중징계를 받지 않는다. 2015년 7월 21일 하나대투(현 하나금융투자)는 6시간 가까이 HTS접속이 중단돼 많은 투자자들이 피해를 봤지만 경징계인 ‘기관주의’와 과태료 1억원만 부과받았다.

    전산으로 거의 모든 거래가 이뤄지는 한국 주식시장의 특성상 증권사들의 HTS·MTS가 1분이라도 멈추면 누군가는 손해를 보게 된다. 하지만 이런 손해를 보상받기 위해서는 전산장애 때문에 손실을 봤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며 증권사를 상대로 소송을 해야 한다. 소송 비용을 감당하며 이런 절차를 밟을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증권사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전산장애를 방치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증권사는 투자의 인프라 시스템을 제공하는 곳이다. 인프라를 제공하는 한국도로공사나 한국철도공사, 대형 통신사들이 끊임없이 도로나 철로를 보수하고 통신장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이유는 인프라가 망가질 경우 치명적인 피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투자자들의 돈이 오가는 주식시장에서 인프라를 관리하는 증권사들은 이런 책임감이 결여된듯 하다. 올해는 늘어난 개인 투자자 덕에 대다수 증권사들이 거래수수료로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내고 있다. HTS·MTS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거래수수료로 이익을 가져가는 증권사들을 보는 투자자들은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금융당국도 전산사고를 방치하는 증권사를 좀 더 실효성 있게 제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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