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전에는 속도 낸다더니 이번에는 미룬다… 갈팔질팡 정책에 꼬이는 정비사업

조선비즈
  • 허지윤 기자
    입력 2020.11.20 11:00

    "내년 수도권 내 재건축·재개발 정비 사업에서 3만8000호의 이주 수요 발생이 예상됩니다. 수도권 지자체와 협의체를 구성해 이주수요를 모니터링하고 특정 시기 이주수요 집중 등 필요 시 이주시기를 조정하겠습니다." (11·19 서민·중산층 주거 안정 지원 방안 발표)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의 공공성을 강화해 7만호 이상의 주택을 공급하겠습니다.
    정비예정구역에서는 공공재개발을 조기 추진할 수 있도록 하고, 과거 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가 사업 지연 등으로 해제된 지역도 공공재개발을 허용하도록 하겠습니다." (8·4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 발표)

    정부가 전세난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 중 하나로 정비사업 이주시기 조정 방안을 내놓은 것에 대해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불과 세 달 전 정부가 발표한 주택 공급 확대 방안과 정 반대의 방향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수도권 지자체와 협의체를 구성해 이주수요를 모니터링 하고 특정 시기 이주수요 집중 등 필요 시 이주시기를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9일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제공
    20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시장에서는 전세난을 막기엔 역부족일뿐더러 기존의 조기 공급 확대 계획과도 상충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8월 치솟는 수도권 주택 가격을 잡기 위해 수도권에 총 13만2000가구의 주택을 공급하는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방안(8·4 대책)을 내놓으면서,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을 통해 7만가구 이상의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전세시장을 잡겠다고 정비사업장의 이주 시기를 늦추면 신규 주택 공급 속도도 늦어진다. 새 집이 시장에 늦게 나오는 만큼 매매시장에는 공급 위축 효과가 생긴다. 시장에서 "정부가 윗돌 빼서 아랫돌 괴고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있는 격"이라는 비판 목소리도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내년 수도권 내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에서 나오는 이주 물량은 3만8000가구에 달할 것으로 본다. 서울에서는 내년 상반기와 하반기 각각 2748가구, 2392가구의 이주 수요가 나오고, 수도권은 각각 9651가구, 2만8824가구의 이주가 이어질 것으로 추정됐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에서 관리처분인가를 받아 철거 및 이주를 앞둔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은 △ 강북구 미아제7구역, △동대문구 청량리제7구역, △동작구 흑석동 흑석9재정비촉진구역, △서대문구 영천동 영천주택재개발, △서대문구 연희동 연희 제1구역, △성동구 행당동 행당 제7구역, △성북구 삼선제5구역, △성북구 동선 제2구역, △은평구 대조제1구역, △강남구 삼성동 홍실, △강남구 청담동 삼익, △강동구 신동아 1·2차,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 △광진구 자양동 자양, △구로구 개봉동 길훈, △서초구 잠원동 한신4지구, △서초구 신반포, △서초구 신동아 1·2차, △송파구 진주, △송파구 미성·크로바 등이다.

    국토부 제공
    신규 주택 공급이 늦춰지는 것 말고도 문제는 또 있다. 정비사업을 추진하던 조합원과 건설사 등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정비사업은 관리처분계획(일반분양 계획) 인가 후 이주·철거→착공·분양 순으로 진행된다.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이주 결정이 나면 이주비 대출 기관을 선정하고, 조합원 예고 기간 등을 거쳐 이주를 시작하는데, 갑자기 이주 시기를 늦추게 되면 이런 계획에 다 차질이 생긴다"면서 "조합 운영비나 금융 이자 비용이 발생하는 등 손실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물론 재건축, 재개발 시장의 이주 수요가 전세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정부의 진단이 틀린 것은 아니다. 정비사업에 따른 이주수요가 단기에 몰릴 경우 국지적인 전세시장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12년 7월 이주 공고가 났던 서울 송파구 가락시영(현 헬리오시티) 재건축 단지의 경우 6600가구가 이주에 나서면서 지역 일대 전세 시장을 자극했다. KB국민은행 부동산 리브온에 따르면 2012년 7월 당시 서울 송파구 전셋값 상승률은 6.45%로, 당시 강남권 평균 상승률보다 1.15%포인트(p) 높았다. 그해 12월에도 송파구 전셋값 상승률은 강남권 평균치보다 1.85%p 높은 4.21%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비사업의 이주 시기 조정’이 전세난 해소에 효과적인 해법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현 전세시장의 불안 해소 효과가 약할 뿐더러 공급만이 전세 수요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란 이유에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비사업의 이주 시기를 늦춘다고 해서 궁극적으로 전세 대기 수요가 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현 전세난 해소에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 교수는 "이미 전국적으로 전세난 심화가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서 정비사업 이주 일정을 늦춘다는 건 대책이 아니고, 문제를 미루는 정도"라고 말했다.
    고 교수는 "집값이 잡히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대출 규제를 더욱 강화하면서 전세의 매매 전환 수요가 감소할 경우 전세난과 주택 시장 불안이 더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중은행 부동산 전문가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제동을 걸고 규제를 강화하면서 주택 공급을 막더니, 정비사업장 이주 시점을 미루는 것까지 대책으로 내놓는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가 단계적으로 주택 공급을 지속해 왔으면 지금과 같은 대란은 없었을 것"이라면서 "오히려 재건축·재개발 등 민간 정비사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주택 공급을 빠르게 확대하는 것이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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