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가난하면 돈 떼먹는다? '흙수저 취준생' 울리는 은행권 채용기준

조선비즈
  • 이종현 기자
    입력 2020.11.19 14:47 | 수정 2020.11.19 16:30

    지난 16일 서울고법 417호 대법정에서는 신한은행 채용비리 사건의 항소심 공판이 열렸다. 이날 공판에는 2014~2015년에 채용과정에서 실무면접관을 맡았던 신한은행 직원 A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신한은행 임직원측 변호인단은 A씨가 면접을 맡았던 지원자의 평가 점수를 하나씩 들어가며 평가 기준을 물었다.

    그러던 중 경제적 환경이 어렵다는 이유로 면접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한 지원자의 사례가 나왔다. 변호인도 평가 기준이 의아했던지 "경제적 환경이 어렵다고 낮은 점수를 줬냐"고 물었다. 그러자 A씨는 "영업점에서 손님을 응대해야 하는 직원인데 행여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변호인이 "금융사고를 말하는 거냐"고 재차 묻자 A씨는 "그렇다"고 했다.

    A씨의 대답은 신한은행뿐 아니라 우리 금융권이 가진 천박한 인식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발언이다. 집이 가난하면 돈의 유혹에 더 잘 넘어갈 것이라는 근거없는 인식에 기반해 실제 채용과정에서 지원자를 차별한 것이다.

    이런 편협한 사고가 대규모 채용비리의 시발점이라는 것도 부인하기 힘들다. 정·관계 권력자의 자녀를 우대해서 채용한 은행들은 이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유무형의 특혜를 기대했을 것이다. 가난한 지원자는 해를 끼칠테니 박대하고, 권력자의 자녀는 이득을 가져다줄 테니 우대하는 은행의 행태는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

    A씨의 발언을 그의 개인적인 일탈로 치부할 수도 없다. 면접관 한 명의 편견과 선입견이 아무런 제동장치 없이 지원자에 대한 평가에 반영됐다. 우리 금융권의 채용 시스템이 얼마나 전근대적인지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신한은행은 채용 공고를 내면서 학력과 연령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며 꿈과 열정만 있으면 도전하라고 적었다. 신한은행이 말하는 꿈과 열정은 부잣집 자녀에게만 해당되는 건지 묻고 싶다.

    A씨는 가난한 지원자가 은행원이 되면 고객 돈을 떼먹을 수 있다고 우려한 듯 하지만, 사실 고객 돈을 떼먹는 건 가난한 취준생이 아니다. 한 푼이라도 고객의 돈을 더 끌어모으려는 탐욕에 눈이 멀어서 제대로 검증도 하지 않고 사기꾼에게 놀아나 실체도 없는 펀드를 판 은행이야말로 고객 돈을 떼먹은 장본인이다.

    작년부터 한국 금융권에서는 DLF(파생결합펀드)·라임·옵티머스 등 대형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대형 금융사고의 원인이 가난한 은행원 때문이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은행원이 되겠다고 매일 밤을 지새우며 공부하고 노력한 청춘의 가난을 탓할 일이 아니다. 은행의 탐욕, 그리고 특혜를 기대하며 채용비리를 저지른 자신들의 행태부터 반성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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