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1, 2위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 작업이 완료되면 세계 7위(운송량 기준) 규모의 초대형 항공사가 탄생하게 된다. 이번 통합을 계기로 국내 항공산업이 재편돼 ‘메가캐리어’가 등장하면 앞서 몸집을 키운 글로벌 대형사들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지만, 인수 작업이 성공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① ‘코로나 불황’ 극복이 급선무…화물 운송 등 新수익처 찾아야
당장 세계 항공 업계를 강타한 코로나 확산이 초래한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와야 하는 것이 당면 과제다. 새 주인을 찾고 있는 아시아나뿐 아니라 대한항공 역시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았다. 올해(1~9월) 대한항공의 손실 규모는 1조원, 9월 기준 부채는 22조원에 이른다. 연말까지 상환해야 할 차입금은 5조원에 육박한다.
유동성 상황이 심각해지자 지난 4월에는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했고, 국책은행은 올해에만 1조2000억원의 자금을 대한항공에 쏟아부었다. 이마저도 부족해 대한항공은 곧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신청할 계획이다. 코로나 확산이 이어지고 있어 글로벌 여객, 화물 수요가 당장 회복되기 어렵지만, 대한항공은 부실 규모가 큰 아시아나항공까지 떠안게 된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여객기를 화물 운송에 투입해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대한항공이 코로나 시대 생존하는 것이 인수 성공을 위한 첫 단계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경제 활동이 재개되는 가운데 반도체 등 수출이 증가하고 있어 항공 화물 수송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이익을 낼 수 있는 화물 수송 분야에서 대한항공이 활로를 찾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여객 수요가 급감하며 1분기 대한항공은 566억원 영업손실을 냈지만, 여객기를 화물 운송에 투입하는 방식으로 2분기 흑자 규모를 1500억원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올해 3분기 영업이익 규모가 76억원으로 다소 줄었지만, 4분기에도 흑자는 유지될 전망이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화물 사업을 확대해 2~3분기 흑자를 냈다.
② 독점에 따른 폐해 나타나지 않게 항공 산업 경쟁력 강화해야
이번 딜을 계기로 국내 항공 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초대형 항공사의 등장이 곧바로 해당 시장의 확대로 이어지거나 ‘몸집 키우기’만으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구세주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항공산업은 환율과 유가, 전염병, 테러, 국제 정세 등 다양한 사회·환경 요인에 따라 수요 변동이 큰 산업이기 때문에 항공사는 외부 요인에 따른 리스크에 항시 대비해야 한다"며 "운영 효율을 높이고 노선 다변화, 차별화된 서비스 제공을 통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라고 말했다.
특히 국제 여객 노선은 완전경쟁시장에 가깝지만, 그동안 1, 2위 국적사로 경쟁하던 두 항공사가 합쳐지면 국내 승객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거대 통합 법인의 출현으로 항공사와 소비자 간 균형이 항공사로 쏠릴 경우 서비스 품질 저하, 가격 상승 등 독점시장에서 나타나는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국적 항공사라고 하지만 글로벌 항공사와 경쟁하기 때문에 이는 곧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예상되는 문제를 해소하려면 제주항공 등 다른 저비용항공사(LCC)에 미주, 유럽 등 장거리 노선 운항을 허가해 경쟁 체제를 도입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며 "현대·기아차의 사례처럼 대한항공이 아시아나를 인수하더라도 브랜드 가치가 있는 아시아나를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③ 혈세 투입, 구조조정 논란은 정면돌파 해야
결과적으로 정부가 나서 특정 기업의 경제력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에 대한 대응도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산은이 너무 성급하게 아시아나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해 항공 업계 대마불사를 만드는 게 적절치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산은은 아시아나 매각을 위해 앞으로 8000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인데, 원하든 원치 않든 대한항공 내 벌어지는 경영권 분쟁에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가 됐다. 조 회장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KCGI(강성부 펀드), 반도건설 등으로 구성된 3자연합과 갈등하고 있는데, 산은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에 사실상 재무적투자자(FI)로 나섰다.
재계 관계자는 "논란 속에서 출범할 통합 법인은 가장 먼저 투명 경영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라며 "몸집이 커진 만큼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작업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경영권에 오너 일가의 입김이 지나치게 작용해 경영진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개선돼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기업 조직원들에게 좋은 동기가 부여되도록 유연한 조직문화가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노조의 반발도 넘어야 할 과제다. 대한항공 노조를 제외한 대한항공 조종사노동조합,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노동조합, 아시아나항공 열린조종사노동조합, 아시아나항공노동조합 등 5개 노조는 "노동자를 배제한 인수 결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 노조는 특히 통합 과정에서 구조조정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산은은 "연간 자연감소 인원과 통합작업, 신규사업 등으로 인한 인력을 감안하면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이에 대해 "한진그룹으로부터 확약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대한항공이 유동성 위기 상황에서도 아시아나 인수에 나선 것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비용은 최대한 줄이고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으로, 이 과정에서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실제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중복 인력은 관리직 등 간접부문 800~1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당장은 채권단이나 대한항공 모두 구조조정 가능성을 일축하지만, 인수합병과 관련된 모든 당사자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며 "구조조정 필요성을 인정하고, 실행 가능한 대책을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편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