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버린 카드'...중국에 대항 vs 지지층 표심
바이든 "중국에 대항해야" TPP 가입 여부엔 침묵
보호무역 원하는 지지층, 집권 초반부터 이탈 우려

중국 주도의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출범한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재가입 여부를 고심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면 TPP 복귀를 서둘러야 하지만 FTA에 반대하는 제조업 분야 지지층이 대규모 이탈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좌)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우).

지난 15일 한국을 비롯한 중국·일본·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국 등 15개국은 RCEP에 최종 서명했다. RCEP는 미국이 중국을 배제하고 추진했던 TPP에 맞서 중국이 대항마로 내세운 경제 동맹이다. 그러나 미국은 2017년 트럼프 행정부 때 '미국 우선주의'를 내걸고 TPP를 탈퇴했다. 이후 이 협정은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CPTPP)'으로 명칭을 바꾸고 일본·캐나다·호주·싱가포르 등 11개 국이 참여했다.

언론은 바이든 당선을 계기로 미국의 CPTPP 재가입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여전한 데다 바이든 본인도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바이든은 16일(현지 시각) 경제정책 관련 첫번째 기자회견에서 RCEP의 영향을 묻는 질문에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 제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만 TPP 복귀 여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NYT는 미 여론과 의회는 보호무역주의를 원하는 반면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FTA를 마냥 피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통상과 국내정치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졌다는 것이다. 실제 바이든과 민주당은 대선 과정에서 자유무역과는 거리를 두고 미국 제품 우선 구매·미국 기술 투자 확대 등을 핵심으로 하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공약을 내걸어 당선됐다.

올해 대선의 승패를 좌우한 건 펜실베이니아·미시간·위스콘신이 위치한 러스트벨트(쇠락한 동부 공업지역) 표심이다. 이 지역의 주된 유권자는 전세계 자유무역 과정에서 경쟁력을 잃은 제조업 노동자 계층이다. 민주당이 2016년 대선 당시 TPP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옹호했다가 트럼프에 패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바이든이 올해 대선에서 러스트벨트 표심을 얻은 데는 보호무역주의 공약을 내건 영향이 컸다.

정부 출범 직후 코로나 대응 등 국내 문제가 산적한 바이든에게 지지층 이탈은 치명적이다. 특히 바이든은 국내 투자가 충분이 이뤄진 이후에야 새로운 무역협정을 체결하겠다고 공언했었다. 자칫하면 집권 초기부터 '공약 파기'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

NYT는 바이든의 고심이 깊어지는 가운데 중국이 RCEP를 통해 전세계 인구의 3분의 1 수준인 22억6000만명의 거대 경제권을 만들고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입김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유럽연합(EU)도 공격적으로 무역협상을 추진하고 있다"며 "다른 나라들이 속속 새로운 무역협상을 체결할수록 미국 수출업계는 점차 설 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