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기업인 SMIC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제재로 미국산 장비 확보가 원활하지 않다고 밝혔다. SMIC는 3분기(7~9월)에 역대 최대 분기 매출을 기록했으나, 제재가 현실화한 4분기엔 실적에 타격이 있을 것으로 봤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 자립을 선언한 중국 정부를 제대로 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SMIC는 3분기 매출이 10억8200만 달러(약 1조2000억 원)으로 집계됐다고 12일 밝혔다. 지난해 3분기 대비로는 32.6%, 올해 2분기 대비로는 15.3% 증가했다. 3분기 총이익은 2억6200만 달러로, 지난해 3분기 대비 54.3%, 올해 2분기 대비 5.4% 늘었다. 먼저 트럼프 정부의 제재 대상이 된 중국 통신장비 기업 화웨이가 재고 비축에 나서면서 SMIC의 3분기 실적이 호조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4분기 실적 전망은 어둡다. 앞서 9월 트럼프 정부가 SMIC를 거래 제한 기업 명단(블랙리스트)에 올리면서다. 미 상무부는 미국 반도체 제조사가 SMIC에 반도체 생산 기술과 장비를 수출하려면 사전 승인을 받게 했다. SMIC가 만든 반도체가 중국군으로 넘어가 사용될 위험이 있다는 이유를 댔다. 상무부가 미국 기업의 수출을 허용하지 않으면, SMIC는 장비·부품을 공급받을 수 없고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다.
자오하이쥔 SMIC 공동 최고경영자는 3분기 실적 발표 후 콘퍼런스콜에서 미국산 장비, 부품, 원자재 확보가 지연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영향으로 4분기 매출은 3분기 대비 10~12% 줄고 올해 자본지출은 59억 달러로 12%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SMIC는 미국의 제재 조치로 반도체 생산과 회사 운영에 영향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단기적으로는 감당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의 수출 제한이 지속되면 상황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파운드리는 반도체 설계 회사로부터 제조를 위탁받아 반도체를 만들어주는 회사다. 대만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 집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1위는 대만 TSMC(51.5%)다. 삼성전자가 18.8%로 2위, 미국 글로벌파운드리스와 대만 UMC가 각각 7.4%, 7.3%로 3~4위다. 중국 SMIC는 4.8%로 점유율 5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제재로 SMIC는 TSMC와 삼성전자가 가진 7나노미터 이하 미세 공정 진입이 어려워진 상황이다. 외국 의존도를 줄이고 세계 정상에 서려던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흔들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