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술기행](38) “조선 3대 명주, 이강주가 확 달라졌어요"

조선비즈
  • 박순욱 선임기자
    입력 2020.11.12 10:05 | 수정 2020.11.12 10:56

    ‘1세대 민속주 무형문화재, 유일한 현역' 전주 이강주 조정형 명인
    올해 이강주 생산 30주년...쌀약주 증류해 배, 생강, 계피, 울금 따로 넣어 1년간 침출 후 블렌딩
    3번의 여과 거쳐 이전 황금색에서 맑고 투명한 색으로 최근 바뀌어...부재료 맛도 순해져
    "과거보다 국내 매출 줄었지만, 내수 공략보다 해외진출에 더 공들여...전통주업계 같이 살아야제"
    막내딸 조성심 전무가 후계자 수업 중... 수출용으로 개발한 38도 제품은 숙성만 4년 걸려

    이강주 조정형 명인을 인터뷰하게 된 계기는 두달 전 한 전통주점에서 가진 저녁 모임에서 이강주 38도(알코올 도수)를 처음 맛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이강주는 25도인데, 38도 제품이 새로 나왔나?’ 궁금했다. 그런데, 가격을 보고는 주문이 망설여졌다. 500ml 가격이 14만원이었다.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날 먹는 음식과 술값은 참석자들이 똑같이 나눠내기로 한데다, 일행들도 "이강주, 오랜만에 한번 마셔보자"고 권하기도 해서 같이 맛을 봤다.

    그런데, 나온 술은 내가 이전에 알던 이강주가 아니었다. 우선, 술 색깔이 맑고 투명했다. 전형적인 쌀 증류주 색이었다. 내가 마셔봤던 과거의 이강주 색은 달랐다. 배, 생강, 계피같은 부재료를 넣은 탓에 술 색깔이 황금빛에 가까웠다. 그런데, 맑고 투명한 이강주라니? 이전처럼 부재료를 넣고도 이렇게 맑을 수 있나? 의아했다. 맛도 이전보다 순한듯 했다. 알코올 도수 38도를 감안하더라도, 한모금 머금은 이강주는 입안을 가볍게 감싸는듯 부드러웠다.

    전주 이강주를 제조하는 조정형 명인은 1세대 전통주 무형문화재 중 유일한 생존자이자, 여전한 현역이다./이강주 제공
    이전에 마셔본 이강주는 배, 생강의 향이 다소 도드라지는 약소주(증류식소주에 각종 부재료를 넣어 숙성한 술)였다. 그런데, 이번에 마신 이강주는 각 부재료의 개성이 강하지 않고 잘 조화된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몇년동안 이강주를 마실 기회가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이강주에 어떤 일이 있었길래 색상과 향, 맛이 확연히 달라진 것일까?

    서울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달려 전북 전주시 덕진구 매암길 28에 있는 ‘전주 이강주’ 본사에 도착했다. 1941년생, 올해 한국 나이로 팔십세인 조정형 명인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는 일제 강점기로 맥이 끊어졌던 이강주를 복원시킨 주역으로서, ‘전통주업계 1세대 맏형님’이다. 서울올림픽을 한해 앞둔 1987년, 정부는 한국을 대표할 술 제조자를 찾아 향토무형문화재로 지정한다. 전주 이강주, 문배술, 안동소주 제조자 세분이 함께 지정됐으며, 이중 조정형 명인이 현재 유일한 생존자이자, 여전한 ‘현역’이다. 조 명인은 1996년 전통식품명인 9호로도 지정받는다. 현재 전주이강주 회장이 그의 직함이다.

    조 명인은 기자를 양조장 곳곳으로 안내하며 이강주 제조과정을 세세하게 설명했다. 목소리는 쩌렁쩌렁했으며, 50년 이상 술과 함께 보낸 인생 역정에 대한 기억력도 거침이 없었다. "이제는 내수 시장을 더 공략하기보다는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어. 이강주가 세상에 나온 뒤로 전통주 만드는 회사들이 수백군데가 생겼잖아. 이들도 같이 먹고 살아야제." 조 명인의 이 말씀에는 한 분야의 대가다움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이강주가 가장 잘 나갔을 때의 연간 매출은 35억 정도였고, 지금은 20억 정도다. 전성기 때보다는 훨씬 못미치지만, "내수는 이만하면 됐다"고 했다. 대신, 2010년 이후 미국, 중국 등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으며, 이제는 유럽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이강주 19도(미국), 이강주38도(중국, 러시아) 제품은 처음부터 수출을 염두에 두고 개발한 술이다. 올 초 조 명인은 실제로 영국 런던에 직영 대리점을 열고 유럽시장 공략화를 본격적으로 전개할 작정이었으나, ‘복병’ 코로나를 만나, 본격 진출을 내년으로 미뤄놓은 상태다.

    이강주 양조장 한켠은 전통주박물관처럼 꾸며놓았다. 다른 양조장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자료들이 즐비했다. ‘현대시조의 아버지’로 칭송되는 가람 이병기 선생 육필 원고가 많은 점이 특이했다. 이병기 선생은 조 명인 할머니의 남동생이다.

    전주 이강주 조정형 명인이 시조시인 가람 이병기 선생의 육필 원고를 보여주고 있다. 가람은 조 명인 할머니의 동생이다. /박순욱 기자
    이강주는 배(이)와 생강(강)이 많이 들어갔다고 해서 조선시대부터 이강주라 불렸다. 육당 최남선은 그의 저서 ‘조선상식문답'에서 "평양의 감홍로, 전주의 이강고(이강주와 같은 말로 도수가 35도 이상의 술), 전라도의 죽력고가 조선 3대 명주"라고 소개했다. 이뿐 아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는 ‘임원경제지'에서 이강주의 주방문(제조방법)을 자세히 적었다. 이밖에도 이강주를 소개한 옛 문헌은 손가락으로는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이강주는 어느 전통주와 비교해봐도 만들기가 더 까다로운 술을 찾기 힘들 정도로 제조방법이 복잡하다. 증류할 때의 술덧은 일반 쌀약주와 차이가 없다. 백미와 누룩으로 약주를 빚어, 이 약주로 증류주를 내린다. 일반증류식소주 같았으면 제조공정이 여기에서 끝나지만, 이강주는 사실상 여기가 제조의 출발점이나 다름없다. 증류주를 항아리에 담아 네가지 핵심 부재료인 배와 생강, 울금, 계피를 각각 따로 넣어 일년 정도 침출(부재료 성분이 증류주 속으로 배어 들어간다)과 숙성과정을 거친다. 그후 네 가지 부재료가 각기 들어간 증류주를 블렌딩한 뒤 도수를 맞추고(가령 25도) 2차 숙성을 일년 더해서 병입하면 이강주 25도 제품이 완성된다. 2014년에 새로 나온 이강주 38도 제품은 증류를 한번 더하고 2차 숙성도 3년간 한다. 이강주 38도는 숙성 기간만 4년이다. 전통주 중 가장 오랫동안 숙성을 하는 술이 이강주38도가 아닌가 싶다. 배, 생강 등의 부재료 함량도 월등히 많다. 그래서 가격도 25도에 비해 몇배 비싸다.

    1990년 정부의 허가를 받아 이강주를 생산한 지 올해로 30년이 지났다. 대학 졸업 후 25년을 소주회사에서 일하다, 50세에 이강주 회사를 창업했던 조 명인도 이제 팔순을 넘겼다. 지금도 이강주 제조는 조 명인의 몫이다. 대를 이을 재목도 있다. 막내딸인 조성심 전무가 후계자 수업을 착실히 받고 있다.

    -이강주는 다른 술에는 없는 부재료는 물론 여느 쌀소주와 제조법이 많이 다르다.

    "이강주 부재료는 크게 네가지다. 배 생강 계피 울금이다. 이 재료들을 약주를 증류한 소주에 각각 따로 담가 일년 정도 침출과 숙성을 거친 뒤 블렌딩하고 다시 숙성해서 완성한다.

    먼저 백미와 누룩으로 증류주 술덧인 약주를 빚는다. 여느 약주 공정과 같다. 다음에 소주를 내린다. 다음에 배, 생강 등의 약재를 따로 넣어 소주를 숙성시킨다. 이 과정에서 부재료들은 침출작용으로 술에 향과 맛이 배게 된다. 재료별로 숙성시킨 술을 여과를 거쳐 블렌딩 후 2차 숙성만 3년 걸리는 제품(38도)도 있다. 25도 제품은 후숙성을 일년 정도 한다. 병입 전 여과(필터링)을 한다. 여과는 총3번 한다. 여과를 모두 끝낸 술은 일반 소주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맑다. 하지만, 향을 맡아보면 부재료인 배, 생강, 계피향이 짙게 묻어난다.

    옛날에는 술 분류를 탁주, 약주, 소주, 그리고 약소주(소주에 각종 부재료를 넣어 추가숙성시킨 술)로 했다. 이강주가 대표적인 약소주다. 지금은 술을 10가지로 분류하는데, 약소주라는 명칭은 없어져, 이강주는 리큐르에 속한다. 리큐르는 약소주와 마찬가지로, 소주에 첨가물을 더한 술을 말한다. 88올림픽 전후해 전통주로 공식 인정받은 술이 이강주, 문배술, 안동소주 셋인데, 이중 문배술과 안동소주는 증류식소주, 이강주는 리큐르다. 증류식소주에 각종 부재료를 넣어 숙성을 더 거친 술이 이강주다."

    전주 이강주의 주요 재료들. 배, 계피, 생강, 울금. /이강주 제공
    -생강, 배는 어떤 형태로 넣나?

    "부재료는 소주에 한꺼번에 넣지 않고 따로 침출시킨다. 다시 말해, 4개의 증류식 소주 술항아리에 각각 넣어 소주와 함께 숙성시킨다. 1차 숙성은 일년 정도 하는데 이쯤되면 부재료의 향과 맛이 술 속에 다 스며든다.

    부재료들은 잘게 잘라 넣는다. 가령, 생강은 향이 술에 잘 배도록 잘게 썰어 넣는다. 생강은 껍질을 벗기고, 슬라이스 형태로 넣는다. 가루에 비슷할 정도로 너무 잘게 하면 찌꺼기 걸르기가 어렵다. 그래서 다소 거칠게 썰어 넣는다. 배도 거칠게 잘라 넣는다. 꿀은 나중에 블렌딩 다음에 반쯤 넣는다. 나머지 반은 2차 숙성 끝내고 병입 직전에 넣는다."


    -부재료를 따로 다른 술항아리에서 침출하는 이유는?

    "각기 다른 항아리에 넣어 나중에 블렌딩을 하는 이유는 부재료의 함량이 때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다. 계절(온도나 습도의 차이에서 기인)마다 술 맛의 차이가 다소 있다. 때문에 계절에 따라 배나 생강이 평소보다 많이 들어가거나 적게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들 부재료들을 한꺼번에 넣어 침출시키면 계절별로 생기는 미세한 맛의 차이를 해결할 수 없다."

    -쌀로 만든 약주를 증류한 다음에 부재료를 넣는다. 얼마간 숙성하나?

    "1차 숙성(부재료 침출 과정)은 1년, 블렌딩 후 2차 숙성은 25도 제품은 1년, 38도는 3년을 더한다."

    -배 생강 울금 등 이강주 부재료의 효과는?

    "술이 어떤 약효가 있다고는 잘 얘기 않는다. 술은 술일뿐, 약이 아니다. 마셔본 사람들은 다른 술에 비해 숙취가 덜하다고 얘기는 많이 한다. 정성을 오래 들여 만든 만큼 술 뒤끝이 깨끗하다는 얘기다."

    -10년 전의 이강주와 지금의 이강주는 완전히 다르다.

    "이강주 원래 제품은 지금처럼 여과를 세게 거치지 않아 다소 껄쭉했다. 색깔도 호박색에 가까웠다. 여과를 거치면 본래의 향들이 많이 걸러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비자들의 인식이나 위생법이 바뀌어 술 속에 침전물이 생기는 것을 싫어하기 시작해, 지금은 필터링(여과)을 하기 때문에 침전물이 전혀 생기지 않아 깔끔하다. 색상도 투명한 맑은 색으로 바뀌었다. 술 품질관리 업무가 국세청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로 넘어간 2014년 후 이강주를 리뉴얼했다. 총3번의 여과를 한다."


    전주 이강주 25도 병 제품. 이전에는 도자기병만 만들었지만, 지금은 유리병 제품이 더 많다. /이강주 제공
    -이강주가 안동소주 같은 다른 전통주와 확실히 다른 점은?

    "같은 소주이지만 이강주는 배 생강 울금 계피가 들어가니 맛이 확연히 다르다. 이강주를 마시면 생강이나 계피향이 잔향으로 남는다. 쌀소주의 단조로움이 없다. 이강주는 증류식소주에 없는 다양한 향들이 복합적인 풍미를 준다."

    -이강주는 조 명인 가문의 6대째 내려오는 가양주다. 그런데, 희석식소주 제조 회사에 25년을 근무했다. 왜 더 일찍 이강주 제조에 뛰어들지 않았나?

    "전통주를 못 만들도록 법이 막고 있었기 때문에 엄두를 낼 수 없었다. 해방 이후 전통주 제조면허를 가장 먼저 취득한 사람이 나다. 문배술, 안동소주 두군데가 같이 면허를 받았다. 그 전에는 신규 허가는 전혀 없었다. 주세법에 아예 허가를 못내도록 규정돼 있었다. 그러니, 전통술을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가 없었다. 허가를 받기 전에 만든 것은 다 밀주인 셈이다. 내가 25년을 기존 술 회사에 다닐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러다, 주세법이 개정된 것이 1990년이다. 서울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해외에 과시할 만한 우리 술을 만들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덕분이다. 주세법 개정이 국회를 통과해서, 이강주, 문배술, 안동소주가 탄생한 것이다. 그때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은 세 사람 중 내가 47세로 가장 젊었다. 당시 세 사람 중 살아 있는 사람은 나 혼자다.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은 것은 1987년이다. 그러나, 제조면허 허가는 3년 뒤인 1990년에야 받았다. 이강주 생산도 1990년에 시작했다.

    우리 말고도 한산소곡주 같은 약주도 면허를 받았지만 ‘전국 판매'가 허용된 술은 이강주, 문배술, 안동소주 셋뿐이다. 약주는 생산지 도내에서만 판매가 허용됐다. 원래는 88올림픽 때 대한민국을 대표할 민속주 제조면허를 주려고 정부가 추진했던 일이다. 그래서 이강주를 만들 여건이 만들어져 오랫동안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냈다. 이 이야기는 TV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전주 이강주는 전통주 중에서도 화려한 도자기병을 사용하는 걸로 유명하다. /이강주 제공
    -이강주 말고도 전통주 복원 노력을 많이 했다.

    "1973년 소주회사 보배 공장장을 했는데, 그때부터 개인적으로 민속주 연구를 했었다. 회사에 연구실을 만들었다. ‘신규 제품 연구개발실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술 회사에 다니고 있었지만 내가 만드는 술들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당시 시중에 나온 술들은 수입산 주정에 물을 타는 희석식소주뿐 아니라 위스키도 원액을 전량 수입에 의존했다. 베리나인 같은 술들이 그랬다. 국산 원료를 일부라도 타든가 해야지, 전량 수입산으로 만든 술은 우리 술이 아니다. 이런 생각이었다. 그래서 연구를 해보자고 한 것이다.

    그래서 서울대 규장각부터 문헌 자료조사를 했다. 우리나라 민속주 관련 기록을 찾는 오랜 여정의 시작이었다. 회사 사장은 ‘쓸데 없는 짓 벌이지 마라'고 반대했지만 직원을 몰래 규장각에 보내 자료조사를 시키기도 했다. 규장각이 술 전문 자료를 별도로 모아놓지도 않았으니, ‘술 주만 보이면 앞뒤 장을 복사해와라’고 시켰다. 부친이 한학자이셔서 자료를 해석해주셨다. 이런 자료들을 모아서 술도 담아보고 책으로도 펴냈다."

    1991년 조 명인이 낸 책 ‘다시 찾아야 할 우리의 술' 서문을 보면 당시 조 명인이 얼마나 고생하며 전통주 관련 자료를 모았는지 알 수 있다. "...잊혀진 전통주를 찾아 전국을 누볐다. 전통주 발굴을 위해 다닐 때에는 (남이 보기에)이상한 것을 묻고 다닌다 하여 간첩으로 오인받아 경찰서 신세를 지는 등 고통스러운 일도 많았다…"

    -이강주 복원은 어떻게 했나?

    "이강주는 집안의 가양주라서 주방문은 알고 있었다. 회사 실험실에서 만들어봤다. 보배 실험실에서 이강주 레시피는 완성했지만, 실제 빚은 술은 수백번이었다. 가장 큰 실패는 술에 침전물이 많이 생기는 거였다. 침전물 생기는 것도 시차를 두고 생겼다. 처음에는 없던 침전물이 6개월 지나니까 생기는게 아닌가? 가양주로 소량 만들때는 괜찮다가 상품화할 목적으로 대량으로 만들면 또 침전물이 많이 생겼다. 쌀로 약주를 만들어 증류하는 소주는 만들기가 쉬운데, 이강주는 부재료가 많은데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술이다 보니 초기에 실패가 잦은 것은 오히려 당연했다. 술 완성 후 오랜 시간이 지나도 침전이 거의 생기지 않도록 하는게 관건이었다.

    침전 관련해 에피소드가 많다. 배를 어느 크기로 자르느냐에 따라 침출 정도나 침전물 형태가 달랐다. 한번은 배를 별 모양으로 조각내 넣었더니 별 모양 침전물이 생겨 깜짝 놀랐다. 이 침전물에는 배뿐 아니라 다른 부재료들도 한데 뭉쳐 있었다. 지금은 배를 팔등분 토막 내서 넣는다. 배 껍질은 그대로 넣고 씨 부분은 잘라 내고 넣는다. 씨 안에 맛을 떫게 하는 탄닌 성분이 있어 제거한다. 이같은 특성을 모르고 배를 통째로 믹서에 갈아 발효시켜 배술을 만든 업체들은 지금 존재감이 없다."

    전주 이강주 조정형 명인이 전통 소주고리로 증류하는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이강주 제공
    -이강주는 19도, 25도, 38도가 있다. 전통주인 이강주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제품은?

    "이강주는 25도로 시작했고, 2006년도에 19도 제품이 나왔고, 38도 제품은 2014년에 만들었다. 38도 제품은 중국, 러시아가 자극이 돼 개발했다. 2010년 넘어가면서 중국 관광객들이 몰려오면서 ‘고도주에 익숙한 중국인 입맛에는 이강주 25도가 약하다’는 지적이 많아서, 개발한 것이 이강주38도다. 2010년에 중국, 러시아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추운 지방에는 25도 술이 아예 없었다. 러시아에 이강주(25도) 갖고 갔더니 ‘사이다(음료수)’ 취급하는 게 아닌가. 충격을 먹었다.

    그곳에는 도수 가장 낮은 술이 38도였다. 그래서 38도 정도는 새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9도와 38도는 개발 당시 수출용으로 염두에 뒀다. 2012년에 38도 개발에 들어가 14년에 처음 출시했다. 처음에는 국내 시판도 않고 일부 면세점에만 취급했다.

    이강주 19도는 미국 수출용으로 만들었는데, 미국 관련 법규가 알코올 도수가 20도를 넘으면 ‘하이 리큐르'라고 해서 규제가 까다로워 이를 피할 목적으로 19도 제품을 만든 것이다. 미국 처음 수출할 때는 22도였던 것이 19도로 낮춘 것이다. 매출 비중은 25도 제품이 70%, 19도가 20%, 38도가 10%쯤 된다."

    전주 이강주 조정형 명인과 이철수 사장. 이 사장은 식품공학을 전공한 조 명인의 대학 같은 과 후배로, 직원으로 입사해 사장 자리까지 올랐다. /박순욱 기자
    -이강주 38도 제품은 25도보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것 외에도 다른 게 있나?

    "부재료 함량, 증류 횟수, 숙성기간이 확연히 다르다. 배 생강 같은 부재료가 훨씬 많이 들어갔다. 25도는 2차 숙성을 일년 하지만 38도는 3년을 한다. 증류도 한번 더 한다. 그래서 38도 제품 가격이 다소 비싸다. 대형마트에서는 팔지 않고 백화점에서 판다. 38도는 도자기병 소비자가격(750ml)이 10만원 정도다."

    -한창 시절 연간 매출은? 지금은?

    "한해 매출이 35억원까지 간 적이 있다. 당시는 공급(생산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매출을 더 올리지 못했다. 당시에는 공장을 24시간 돌렸다. 1995~97년 무렵이 수출도 잘되고 매출이 가장 좋았다.

    지금은 연간 20억 정도 한다. 올해는 코로나 여파가 있지만 예년 수준은 유지하고 있다. 매출이 곤두박질친 것은 2000년 들어서다. 당시 복분자주를 선두로 과실주가 대히트를 쳤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는 복분자주 시대였다. 당시는 과실주 매출이 계속 올라갔고, 증류주는 반대로 떨어졌다. 또, 2007년부터는 약 5년간 막걸리가 치고 올라왔다. 상대적으로 과실주 열풍은 주춤했다. 각기 5년간의 과실주 전성시대, 막걸리 전성시대였던 그 10년 동안 이강주를 비롯한 증류주 시장은 힘을 못썼다.

    그나마 5년전부터 온라인 술 판매가 허용돼 다소 반전의 모멘텀이 생겼다. 술병도 기존의 도자기병뿐 아니라 유리병 제품도 내놓는 등 젊은층 잡기에 안간힘을 썼다. 하도 국내 매출이 저조하니까 ‘수출이나 하자'고 해서 2006년에 19도, 2014년에 38도 제품을 만들었다. 해서, 현재 영국 런던에 직영 대리점을 뒀고, 네덜란드에도 있다. 다만,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수출도 여의치 않다. 한때 중국, 미국 수출도 꽤 했는데 현지 파트너를 잘못 만나, 결과적으로 재미는 못봤다. 그래서 유럽으로 수출 방향을 틀었다. 유럽 관계자들은 한번 약속하면 약속을 꼭 지킨다. 전통주 업계에서 자기 돈 들여 대리점을 만든 사람은 나밖에 없다. 유럽 현지 언론에도 일년간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90년대 초창기에는 전국적으로 팔 수 있는 전통주가 이강주, 문배술, 안동소주 셋뿐이었다. 그러니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후 워낙 많은 술들이 세상에 나오다보니, 독점적 지위는 당연히 없어졌다. 지역농업법인, 소규모양조장 등의 형태로 정부가 신규 양조장 면허를 대거 내주었다."

    -이강주 맛이 과거보다 순해졌다는 지적이 있다. 맛의 변화를 준 게 있나?

    "필터링(여과)을 강화한 때문이다. 총 세번의 여과를 거친다. 젊은 사람들은 지금의 깨끗한 색상의 이강주를 더 좋아한다. 필터링 한것도 시대트렌드에 맞춘 것이다.
    술 사업을 오래해보니 알겠더라. 한국인의 입맛이 희석식소주 도수 떨어지는 것 따라 변한다는 것을. 내가 소주 회사 처음 다닐 때는 소주 알코올 도수가 30도도 넘었다. 지금은 거의 17도까지 떨어지지 않았나? 소주회사에서 도수를 낮추면 소비자들이 거기에 길들여진다. 순한 소주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알코올 도수 높은 독주는 점점 버거워한다. 그래서 이강주도 필터링을 통해 다소 순해졌다고 보면 된다."

    -증류주는 대개 40도 내외다. 이강주 주력 제품 25도 도수는 어떻게 조절하나?

    "증류를 끝냈을 때의 알코올 도수는 40도 내외다. 이 원액에다 배 생강 같은 부재료를 넣어 일년 숙성시키면 도수가 좀 떨어진다. 여기에 물과 꿀을 조금 넣어서 25도로 맞춘 뒤 일년동안 2차 숙성을 한다."

    -올 하반기 혹은 내년 주요 계획은?

    "내수시장은 포화상태라고 본다. 잘 나가던 시절에 비해서는 매출이 많이 떨어졌지만, 그때보다는 전통주 업체들이 엄청 늘어났다. 그들도 먹고 살 정도로는 벌어야 하지 않겠나? 국내 시장을 두고 우리끼리 죽기 살기로 경쟁하면 뭐 하겠나? 서로 윈윈해야 한다. 결국 이제는 해외로 나가야 한다. 그래서 작년부터 수출을 준비했는데, 코로나 복병을 맞았다. 올해는 런던을 중심으로 유럽 여러 곳에서 시음 이벤트를 비롯한 행사를 하려고 했는데, 전면 중단돼 아쉽다. 연초만 해도 우리 술에 대한 시장 반응이 좋아 기대를 가졌었다. 그런데, 코로나는 모든 계획을 덮어버렸다. 런던 대리점은 두달 이상 문을 닫았다. 올 하반기도 어려울 것 같고, 내년 상황을 봐야 한다. 암튼 유럽시장을 적극 공략할 작정이다. 물론 내수도 현 수준에서 탄탄하게 유지하도록 신경쓸 것이다."

    전주 이강주는 조 명인의 딸, 조성심 전무가 이어받을 전망이다. 조 전무는 스페인 유학을 다녀온 인문학 전공자이지만, 가업인 술 양조의 길로 들어섰다. /박순욱 기자
    -후계자는 염두에 둔 사람 있나?

    "막내딸 조성심 전무가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다. 가업을 이어 받을 것이다. 조 전무는 사실 대학(스페인문학 전공) 다니고 스페인 유학 갔을 때만 해도 술사업을 할 것이라고는 나도, 조전무 본인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인생이란게 뜻대로만 되는 게 아니잖은가? 조전무가 이강주 회사에 들어와 일한지도 5년 정도 됐다. 아직 이강주 제조를 마스터하지는 못했다. 시간을 갖고 전수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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