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손발 묶인 한은의 고용안정… '취업난도 한은 탓' 없어야

조선비즈
  • 조은임 기자
    입력 2020.11.11 16:41 | 수정 2020.11.12 08:40

    한국은행의 설립목적에 '고용안정'을 추가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지난 수년간 "기존 설립목적인 물가안정, 금융안정과 상충된다"던 한은이 입장에 변화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법안이 통과되면 목표 설정과 관련한 논의에 참여하고 중앙은행의 변화를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김경협,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이어 류성걸 국민의 힘 의원이 한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한은이 한 발 물러난 건 달라진 정책환경의 변화를 더이상 묵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은은 물가를 고용과 경기를 대표하는 지표로 보고 2%의 물가상승률을 목표로 통화정책을 펼쳐왔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물가가 지속되면서 실업률과 물가의 역관계를 설명한 '필립스곡선'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분석이 꾸준히 제기돼 왔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신뢰성을 더 잃었다. 여기에 미 연준(Fed)이 평균물가목표제(AIT) 도입을 시사하며 통화정책의 무게추를 물가에서 고용으로 옮겨가면서 쐐기를 박았다.

    한은이 고용안정을 설립목적으로 추가해도 당장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기준금리 조정과 시장안정화 정책을 주요 정책수단으로 쓰는 한은이 고용안정을 위해서는 쓸 도구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은행에 대해 제한적인 감독권한을 가지고 다양한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사용할 수 있는 미국 연준과는 사정이 다르다. '권한 없이 의무만 더한다'는 볼멘소리가 한은 내부에서 나오는 배경이다.

    고용지표의 신뢰성 부족도 심각하게 짚어봐야 할 문제다. 통계청에서 주로 발표하는 고용통계는 역설적이게도 '소득주도성장'을 경제정책의 필두로 내세운 현 정부들어 잡음이 늘었다. 가계소득 통계 문제로 통계청장을 교체하는 촌극에 이어 청년 실업이 OECD 37개국 중 20위로 추락했음에도 '고용이 개선됐다'는 평가를 내놓는 등 고용통계는 신뢰성을 잃을대로 잃었다. 어떤 통계를 고용안정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 그 논의부터 첫 발을 딛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노동경직성도 각 국제기관으로부터 꾸준하게 지적받아온 사안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프레이저연구소 자료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유연성 순위는 2003년 63위에서 지난해 144위로 추락했다. 코로나19 사태 속 실업률이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는 역설적으로 노동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못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한은이 고용안정 목표치에 적합한 정책을 편다고 해도 고용시장이 탄력적으로 움직일지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코로나 발생 후 역대 최저수준으로 금리를 내렸던 한은은 최근 전세난의 주범으로까지 몰리고 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100% 실수요를 반영한 전세시장을 두고서도 저금리를 탓하고 있다. 여기에 고용안정까지 한국은행의 설립목적에 추가되면 정부와 여권에서 '취업난은 한은 탓'이라는 비판이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한은의 설립목적을 바꾸기 전에 앞서 산적한 숙제들부터 풀어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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