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월가 안심시킨 바이든의 '40대 경제 실세', 벤 해리스는 누구?

조선비즈
  • 이현승 기자
    입력 2020.11.09 16:17

    조용한 설계자·바이든 경제 아바타 ‘벤 해리스’ 주목
    바이든 경제공약 총괄…현실적인 재원 마련방안 제안
    "진보 어젠다, 데이터 기반으로 온건하게 포장한 테크노크라트"
    백악관 입성 땐 의회 납득시킬 만한 입법 제안 가능성

    "바이든 캠프에서 정책 토론이 한창 이뤄지다가도 결국 '벤한테 물어보는 게 좋겠다'고 마무리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조 바이든을 제외하고 차기 행정부의 어젠다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미 언론이 바이든의 경제 교사로 지목한 재러드 번스타인은 뉴욕타임스(NYT)에 벤 해리스를 이렇게 소개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 사령탑 물망에 오르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번스타인이 경제팀의 막후 실세는 벤 해리스 라고 말한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 경제 보좌관을 지냈지만 학계는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1977년생 경제학자. 조용한 설계자이자 바이든의 경제 아바타라는 별명을 가진 벤 해리스(사진·43)가 주목받고 있다.

    8일(현지 시각) NYT는 바이든이 고소득층과 기업인에 대한 세율 인상을 포함한 반(反) 기업적 공약을 내걸고도 월스트리트 투자회사들로부터 정치 후원과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해리스라는 ‘테크노크라트(technocrat·기술 관료)’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해리스는 세금 및 예산 전문가다. 정부의 조세 정책이나 예산안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모델링을 해왔다. 코넬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고 미 하원 예산위원회 경제학자로 일하기 시작해 브루킹스연구소, 조세정책센터, 조지타운대 공공정책연구소를 거쳤다.

    해리스는 바이든이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이라는 슬로건 하에 향후 10년 간 3~4조달러를 인프라 및 제조업에 투자하고 고소득층, 기업에 대한 세율 인상으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경제 공약을 완성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그는 보다 적은 유권자들에게 충격을 주면서 많은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냈다. 바이든의 경선 상대였던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상당수 고소득층이 포함되는 부유세 신설을 주장한 것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지점이다.

    고소득층 가운데 '연 소득 40만달러 이상(약 4억4500만원)'에 대해 세율 인상을 공약한 것도 해리스의 아이디어다. 40만달러 이상인 가구는 전체의 1.8% 뿐이지만 이들은 내년 기준으로 국민총소득의 24.8%를 벌 것으로 추정됐다. 이들은 세율 인상을 감내할 능력이 충분히 있다는 게 해리스의 계산이다. 이전까지 민주당 내에서 고소득층의 기준은 대체로 연 소득 25만달러였다.

    해리스는 상속세 부담을 늘리는 방안을 바이든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현행법상 개인은 평생 최대 1158만달러(138억9000만원)까지 40%의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되지만, 바이든은 이런 구멍을 매우 겠다 고 공약한 바 있다. 이는 부유세 만큼 그럴 듯한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예산 분석에 정통한 전문가여서 낼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리스의 데이터 분석 능력은 민주당 내 진보 진영이 요구하는 급진적인 어젠다를 현실적인 공약으로 포장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과도한 부담 증가 가능성에 불안해 하는 월가 투자자들에게는 공약의 상세한 내용을 설명함으로서 '바이든이 대중의 우려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최근 몇달 간 바이든 캠프가 기업 임원들과 월가 투자자를 대상으로 개최한 화상 정책 설명회에도 해리스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설명회를 진행한 오바마 행정부 상무장관 출신 페니 프리츠커는 "벤은 정책 이해도가 매우 높은데다 모든 질문에 대해 엄청난 인내심을 갖고 답변했다"며 "기업인들은 세금을 더 많이 낼 용의가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이 추진될 지 알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민주당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 /AP연합뉴스
    핵심 역할에도 해리스가 대외적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은 바이든 캠프가 그를 철저하게 숨겼기 때문이다. 번스타인과 달리 해리스의 경우 언론 인터뷰도 막았다. 중도주의를 표방하는 바이든의 공약이 중간에 새어나갈 경우 민주당 내 진보 진영의 극심한 반발을 초래하거나 기업인들을 불필요하게 불안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해리스가 바이든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11년 미국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CEA)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근무하면서다.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그는 2009년 오바마 전 대통령이 만든 경기 회복 자문 위원회에 정책 자문을 하다가 CEA 의장인 오스탄 굴스비의 눈에 들어 백악관에 입성한다.

    2013년에 백악관을 떠나 다시 연구소로 돌아갔다가 2014년 오바마 행정부 2기 때 바이든의 경제 보좌관으로 백악관에 복귀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현재 켈로그 경영대학원 교수와 데이터 기반 정책입안 단체 '미국을 위한 성과(Results for America)'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맡고 있지만 일주일에 최소 50시간을 무보수로 바이든 캠프와 관련한 업무를 하고 있다.

    바이든은 선거 기간 100여명의 중도, 진보 진영 경제학자들로부터 정책 조언을 들었지만 그중에서도 해리스를 가장 신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경제 참모이자 차기 CEA 의장으로 거론되는 재러드 번스타인과 헤더 바우시에 비해 온건주의적인 성향이어서 자신의 정치적 지향성에 가장 부합하기 때문이다.

    해리스와 바이든 공약을 종합하는 위원회에 참여한 경제학자 대릭 해밀턴은 "우리가 이념적으로 뜻을 같이 하지 않는 것들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해리스는 옳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며 "그는 뚜렷한 근거가 있으면 납득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줄 안다"고 말했다.

    해리스가 백악관에 입성할 경우 세금 및 예산 모델 분석 결과를 토대로 공화당도 납득 할 만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세수 확보 방안을 제시해 바이든 행정부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는 그동안 연구에서 재정적자 급증에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고 기업 권력이 급격하게 커지면서 노동자의 임금이 약화됐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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