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사업도 ‘표지 갈이’해서 새 사업처럼 포장

정부가 2025년까지 160조원을 투자하는 한국판 뉴딜 정책을 통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제 위기를 타개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야심찬 청사진을 밝혔다. 여당은 "국가대전환 프로젝트"(김태년 원내대표) "새로운 미래로 진입하는 연결부위"(이낙연 대표)라는 구호도 내걸었다. 하지만 사업의 많은 부분이 수년 전부터 해왔던 사업이거나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을 주기 힘들어보이는 사업들로 채워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부처의 내년도 예산안을 통해 한국판 뉴딜 사업의 실태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각 정부부처가 수십년 전부터 해오던 사업의 운영비도 ‘한국판 뉴딜’의 내년 예산에 대거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신규사업은 수억원 규모에 불과한데, 이미 구축된 정보시스템 운영 비용 수백억원을 뭉뚱그려 ‘디지털 뉴딜’ 예산으로 반영시키는 수법이다. 한국판 뉴딜의 사업 규모를 부풀리기 위해 신규 사업 외에 기존 사업까지 ‘뉴딜’에 반영하는 억지를 썼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중앙 부처의 ‘한국판 뉴딜’ 사업 목록에 따르면, 대법원은 전산 시스템 운영비용 약 635억원을 디지털 뉴딜로 포함시켰다. 하지만 이중 신규 사업은 가족관계전자증명서 발급시스템 신규 구축(7억9000만원)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기존에 구축, 운영해왔던 전산 업무 시스템 운영비용(627억1000만원)이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차관이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30차 혁신성장 전략점검회의 겸 정책점검회의 겸 제3차 한국판 뉴딜 점검 TF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다른 부처도 비슷하다. 주로 이미 구축된 정보시스템 운영비를 디지털 뉴딜이라는 명목으로 한국판 뉴딜에 끼워 넣는 식이다. 특허청의 경우 1998년에 개발해 운영해오던 특허정보시스템 운영 및 유지보수 비용 405억원을 한국판 뉴딜에 포함시켰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9년부터 운영해오던 소비자상담센터(55억원)와 2014년부터 운영해오던 소비자종합지원시스템 운영 비용(11억원)을 한국판 뉴딜 사업에 끼워넣었다.

여성가족부 역시 2002년부터 운영해오던 정보시스템 운영 및 유지비용 39억원을 정보화 추진 명목으로 한국판 뉴딜 사업에 넣었다. 혼인 관계 자격 정비 연계시스템 개발(9000만원), 위기청소년 통합지원시스템 구축 개발(4억3110만원) 등을 제외하면 성범죄자 신상 정보 공개 고지 시스템 운영 및 유지관리(4억9000만원) 등 기존에 부처에서 운영하던 시스템 운영 비용이 대다수다.

해양수산부는 1993년부터 운영해 오던 항만물류정보 시스템의 운영 및 유지 보수 비용 48억원을 한국판 뉴딜에 포함시켰다. 행정안전부도 2017년 개통된 ‘정부24’ 행정서비스통합포털의 운영 및 유지 보수 비용 134억원을 한국판 뉴딜로 반영했고, 복지부 역시 2013년부터 지원해오던 국민연금공단 정보시스템 운영경비 267억원을 한국판 뉴딜 사업에 포함시켰다.

식약처는 1998년부터 운영해오던 식의약품 정보시스템 운영비용 58억을, 외교부는 2019년부터 운영하기 시작한 제외공관 영사정보시스템 운영관리 및 유지보수 비용 21억을 한국판 뉴딜 사업에 끼워넣었다.

교육부는 노후 학교 시설을 그린 스마트 스쿨이라는 개념으로 개보수하는 868억원을 신규 편성했다. 공립을 비롯한 초중고교의 학교 시설 신축과 개보수 등 시설비, 교사 봉급 등 운영비는 지방재정교부금으로 충당하는데, 이를 국고보조사업으로 돌리면서 그린 뉴딜 사업으로 끼워넣은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 주요 사업 중 신규 사업은 전체 16.7%에 불과해 기존 사업을 ‘표지갈이’해서 사업 내용을 채운다는 비판이 나오는데, 그나마 그 내용을 보면 시스템 운영·유지 보수 비용까지 포함돼 혁신을 찾기가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추경호 의원실에 따르면 부처별로 들어가는 기존 시스템 운영비용을 ‘한국판 뉴딜’ 사업처럼 포장한 꼼수는 그 규모가 1673억원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표지 갈이’ 사업들이 혁신 사업으로 둔갑하는 것이 오래된 예산 편성 관행이라고 지적한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산을 편성하는 입장에서 봤을 때, ‘창조 경제’ ‘그린 뉴딜’로 겉 표지만 바꿔서 예전에 하던 사업을 재분류하는 오래된 관행이 있다"면서 "짧은 시간 내에 공무원들에게 이런 것들을 요구하면 성과가 이미 증명된 사업 위주로, 또는 규모가 큰 사업 위주로 편성하는 방식이 반복돼 내실 없는 사업으로 가득 찬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