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빌라 팔아주겠다”… 전세대란에 기획부동산 기승

조선비즈
  • 최상현 기자
    입력 2020.11.08 06:00

    "오래된 빌라가 잘 나가지 않아 고민이시죠? 책임지고 2주 안에 팔아드리겠습니다."
    ‘일시적 2주택자’로 내년 초까지 서울 소재의 구축 빌라를 처분해야 하는 A(29)씨는 최근 솔깃한 제의를 받았다. 주변 부동산에만 맡겨두면 안되겠다 부동산 직거래 플랫폼에 매물을 올리자, ‘매수인을 무조건 찾아주겠다’는 ‘부동산 컨설팅 팀장’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팀장은 다소 생소한 거래 방식을 요구했다. A씨가 매물로 내놓은 금액은 2억3000만원인데 팀장은 2억5000만원에 전세계약을 맺을 임차인을 데려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세를 놓고 나면 곧바로 섭외해 준 매수인과 2억5000만원에 매매계약을 체결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차액’에 해당하는 2000만원은 컨설팅 수수료로 지불하는 조건이었다. 아무래도 찜찜했던 A씨는 거절 의사를 밝혔지만, 그 이후로도 다른 업체들에서 비슷한 유혹이 계속 날아드는 상황이다.

    부동산 직거래 플랫폼에 매물을 올린 빌라 매도인에게 ‘컨설팅’을 제의하는 기획 부동산. /독자 제보
    8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임대차 3법 이후 전세 대란이 갈수록 심화하는 가운데, 빌라와 단독주택 등을 대상으로 한 소위 ‘무갭투자 기획 부동산’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부동산 직거래 애플리케이션(앱)이나 사이트에 올라온 매물 정보를 보고 매도인에게 접근한다. 이어 ‘동시진행’이라는 전세와 매매를 같이 진행하는 방식으로 거래를 하자고 제안한다.

    주된 대상은 기존 세입자가 없어 전·월세 상한제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거래량이 적어 시세가 불분명한 빌라와 단독주택 등이다. 임대차 3법 이후 전세가격이 큰 폭으로 오른 점을 이용해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신규 전세계약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세 매물도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 상황이라 당장 살 곳이 막막한 임차인은 높은 가격에도 감지덕지한 처지다.

    이렇게 ‘전세 낀 집’을 인위적으로 만들고 나면, 곧바로 매도인과 매수인의 매매계약도 진행된다. 매수인은 시세보다 가격이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그만큼 전세가 높게 들어와있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생각에 흔쾌히 계약서를 쓴다. 전세가격과 매매가격이 똑같은 무(無)갭투자의 경우 매수인은 취·등록세 정도만 부담하면 주택 한 채를 소유할 수 있다.

    경기도 고양시의 한 공인중개사는 "주로 자녀에게 살던 집을 증여하고 무주택 상태가 된 노년층이 이러한 무갭투자 혹은 소액 갭투자에 응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요즘 다들 양도소득세와 종부세 등의 세금 압박에 민감한데, 이들은 주택 한 채를 취득하더라도 세 부담이 적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동시진행 무갭투자’된 것으로 보이는 서울 은평구 응암동 S빌라. /직방 캡처
    부동산 정보 앱 직방에 따르면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 소재한 S빌라 4층은 지난 8월 1억8500만원에 전세거래가 이뤄졌고, 같은 달 같은 가격에 매매거래도 체결됐다. 지난 9월 1억4700만원에 거래된 전용면적과 층수가 같은 옆집에 비해 20% 이상 높은 가격이다.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해당 거래에 대해 전세가격을 높인 무갭투자로 ‘동시진행’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런 사례가 요즘 들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 서울 성북구 길음동의 B다세대주택 3층도 지난 10월 매매와 전세가 각각 3억2000만원에 거래되는 등 비슷한 사례가 다수 발견된다.

    전세와 매매를 함께 진행하는 ‘동시진행’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그러나 ‘컨설팅 수수료’라는 명목으로 차액을 챙겨가는 행위는 명백한 현행법 위반이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법정 중개요율 이상으로 중개료를 받아가는 것을 ‘순가중개’라고 하는데 공인중개사법에 규정된 위법 행위"라며 "그런 컨설팅 업체나 기획 부동산 등은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없는 유사 중개인도 많아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거래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전세 임차인이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애초에 시세보다도 높은 금액으로 전세를 들어왔기 때문에 일반적인 깡통전세보다 더 극단적인 경우"라며 "주택 가격이 하락하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주택 가격이 대폭 오르지 않으면 전세금을 손해보는 구조"라고 말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제공하는 ‘전세보증금반환보증’도 이런 경우에는 전세 임차인을 보호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HUG 관계자는 "공시가격의 150%를 초과하는 전세금은 반환 보증 범위를 벗어난다"면서 "그 이상은 경매나 어떤 방식으로도 회수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언급한 응암동 S빌라 4층의 공시가격은 9900만원으로 전세보증의 범위는 최대 1억4850만원이다. 전세금으로 낸 1억8500만원 중 3650만원은 보호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길음동 B다세대주택 4층의 공시가격도 1억6900만원으로 전세금 중 6650만원은 전세보증 범위 밖이다.

    컨설팅 업체로서는 임차인이 전세금을 날리던 말던 차익 수수료만 챙기면 그만이다. 부동산 업계 한 관계자는 "임차인만 구해지고 매수인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아예 바지(대리) 명의자를 데리고 와서 매수인으로 내세우고 전세계약을 체결하자고 하는 경우도 있다"며 "그럴 경우 세입자가 2년 뒤 전세금 돌려받기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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