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을 JT로 불러도 될까… 금융권의 호칭 파괴실험

조선비즈
  • 이윤정 기자
    입력 2020.10.31 07:00

    인터넷전문은행과 핀테크 등에서나 볼 수 있었던 ‘호칭 파괴’가 전통 금융지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급변하는 금융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각종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개진돼야 하는만큼 경직된 호칭부터 버려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수직적 문화가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에서 호칭만 바꿔서는 근본적 변화를 불러오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금융지주(086790)는 최근 영어 이름을 그룹 포털에 등록 후 사용하라는 공지를 전 계열사에 보냈다. 이에 하나은행은 지난 30일까지 영어 이름 등록을 완료했다. 이외 하나카드는 11월 4일까지, 하나금융투자는 6일까지 등록을 끝낼 계획이다.

    연합뉴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을 비롯한 각 계열사 수장들은 이미 영어 이름을 정했다. 김 회장의 영어 이름은 ‘JT’로, 자신의 이니셜이면서 ‘Joy Together(함께 즐기자)’라는 의미를 담았다. 지성규 하나은행장의 영어 이름은 ‘글로컬(Glocal)’이다. 하나은행 내부에서는 ‘국내외 시장 모두를 잡겠다’는 의미에서 ‘글로벌(Global)’과 ‘로컬(Local)’을 합친 것으로 추정 중이다. 이외 장경훈 하나카드 사장은 ‘윌리엄’, 이진국 하나금투 사장은 ‘Jin K’로 각각 정했다.

    하나금융이 영어 이름을 도입하는 목적은 창의적·수평적 문화 정착을 위해서다. 모든 구성원이 동등한 전문가로 인정받는 수평적 기업문화의 첫 출발은 서로 영어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통 금융지주가 전사적으로 호칭을 파괴한 것은 하나금융이 처음이다. 앞서 신한은행이 지난 8월 경영지원그룹에 한해 부서장 외 전 직급을 ‘프로’로 통일한 바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핀테크 기업 등은 이미 직급으로 부르던 문화를 없앴다. 카카오뱅크는 윤호영 대표를 비롯한 모든 직원이 영어 이름을 쓴다. 토스는 이름 뒤에 ‘님’ 자를 붙여 부르는데, 이승건 대표도 예외는 없다. 케이뱅크는 행장, 부장, 팀장만 직급으로 부르고 나머지 직원은 이름 뒤에 ‘님’자를 붙여 부른다.

    인터넷전문은행과 핀테크 기업에서는 호칭 파괴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핀테크 기업 직원은 "기업 특성상 대부분 경력직으로 구성돼 있는데, IT 분야에서 온 직원들은 대체로 연령대가 낮고, 금융권에서 온 직원들은 책임자급이 많다"며 "그럼에도 회의를 들어가보면 기탄없이 의견을 내고 활발한 토론이 이뤄지는데, 수평적 호칭이 한몫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이같은 호칭 파괴가 전통 금융지주에서도 효과를 낼 지는 미지수다. 한 인터넷전문은행 직원은 "핀테크 기업 등의 경우, 빠른 의사결정을 위해 모든 직원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각 직원들의 재량권을 폭넓게 보장하고 있다"며 "호칭 파괴는 이 과정에서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등장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원들의 권한 등에 제한을 둔 수직적 문화는 그대로 둔 채 호칭만 바꾸는 것은 ‘보여주기식’ 행보에 그칠 수 있다"며 "창의적·수평적 조직문화를 위해선 각 직원의 재량권과 책임을 확대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KT(030200)는 2009년~2012년 이석채 당시 회장이 성과 중심의 조직문화를 만들겠다며 직급 승진제도를 폐지하고, 대리·과장·차장·부장 등 호칭을 없앤 바 있다. 그러나 별 효과를 내지 못해 약 5년 만인 2014년에 호칭과 직급승진제도를 다시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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