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구호만 있고 고민은 안 보이는 최고이자율 인하 법안

조선비즈
  • 박소정 기자
    입력 2020.10.29 16:00

    연 24%인 법정 최고금리 상한선을 끌어내리기 위한 정치권의 움직임에 속도가 붙고 있다. 21대 국회 들어 한달에 한번 꼴로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송갑석 의원은 현행법의 10분의 9 수준인 연 22.5%로, 같은 당 김철민·박홍근은 20%로 하향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남국·문진석 의원은 연 10%를 제시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유력 대권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이런 움직임을 부추겼다.

    너도나도 발의에 나섰지만, 그 내용에 심도 있는 고민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최고금리 인하 관련 법안을 내놓은 국회의원실 중에서 수치가 정해진 과정을 제대로 설명해주는 곳은 찾기 어려웠다. 선진국에 비해 최고 이자율이 높다거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저신용·저소득 서민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어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답변들이 있었다. 또 지난 20대 국회에서 폐기돼 그대로 다시 발의했다는 의원실도 있었고 어떤 의원실은 심지어 "딜(deal·거래)을 할 때는 처음부터 세게 나가는 자세도 필요하다"라고 했다.

    최고금리를 낮추면 서민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만, 시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최고금리가 낮아지면 신용이 낮은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업체는 대출 기준을 까다롭게 할 것이고 돈이 필요한 사람들은 불법 사금융 시장을 찾게 된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최고금리를 4%포인트(P) 인하했을 때 약 57만명의 수요자가 대출을 받고자 해도 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정치권에서 논의가 불붙자 최근 금융위원회도 법안심사소위에서 내놓을 의견을 정리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금융위 관계자는 "최고이자율을 조정할 때마다 금융 시장에 미칠 부작용들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조만간 금융위가 생각하는 적정 수치를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방식으로라도 서민들의 금융비용 부담 경감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자칫 정치권의 구호에 장악돼 성급한 금융 정책이 추진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전문가들은 인하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10%’ ‘20%’와 같은 특정 수치를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속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당장 금융 이용자 사이에서도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라" "뭐가 서민을 위하는 건지도 모르면서 마구잡이로 밀어붙인다" "사금융 조장법"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고민 없이 내놓은 설익은 법안들로 서민금융 시장이 경색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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