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소유자에 부과되는 세금은 날로 늘고 주택 매수 사다리 역할을 하는 대출 규제 역시 늘기만 하는 상황인데도 주택가격전망지수가 다시 올랐다.
2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0년 10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주택가격전망 CSI는 122로 전달보다 5포인트 올랐다. 주택가격전망 CSI는 현재와 비교해 앞으로 1년 뒤 주택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는지 아닌지를 묻고 그 대답을 모아 지수화한 것이다. 수치가 100보다 크다는 것은 오를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지난 7·8월 125이던 지수는 9월 들어 117로 떨어졌다. 다섯달 만에 하락으로 전환하며 이제는 집값이 안정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도 나왔다. 하지만 한달 만에 다시 상승하며 집값이 다시 오를 수도 있음을 보여줬다. 역대 최고치는 2018년 9월의 128이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같은 반등의 가장 큰 이유로 ‘공포감’을 꼽는다.
① 예비매수자, 영영 집을 사지 못할 것이란 공포감
부동산 수요자들은 가장 큰 공포감으로 이제 영영 집을 사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감을 지목한다. 사람들은 통상 그간 모은 목돈에 대출금을 합해 집을 산다. 그런데 대출규제가 최근 3년 사이에 강화되면서 이젠 집값의 절반 이상을 자력으로 융통할 수 있어야 집을 살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9월 서울에서 중위매매가격(집값 순서로 줄을 세웠을 때 한가운데 가격) 수준의 아파트를 사려면 9억2000만원이 필요하다. 이 중 주택담보대출비율(LTV) 한도 40%에 해당하는 3억6000만원을 대출받고 나머지 5억6000만원의 자금은 자력으로 융통해야 한다.
2017년 8·2 대책 이전과 비교하면 대출 없이 융통해야 하는 금액이 크게 늘었다. 당시만해도 주택담보대출비율은 70%였다. 9억2000만원 중 6억4000만원을 빌리고 2억8000만원만 자력 융통하면 됐다. 월 소득액이 안정적으로 발생하는 사업자·직장인이라면 큰 맘 먹고 집을 살 수 있었지만, 이젠 대출 사다리가 막혀 불가능하게 됐다는 뜻이다.
여기에 대출 규제 강화 등이 자꾸 언급되는 것은 불안을 더하는 요인이다. 정부는 급증하는 가계 신용대출 관리를 위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강화하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이라도 빨리 집을 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그런 심리가 집값이 더 오를 것이란 전망을 낳는 것이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지원센터 부장은 "지금까지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하며 집 사기를 미뤘던 실수요자들이 움직여서 그렇다. 대출 규제까지 언급되면서 지금이라도 집을 사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불안감이 커졌고, 결국 전망지수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② 유주택자, 다신 같은 집을 사지 못할 것이란 공포감
집을 사지 못할 것이란 공포감은 무주택자에게 있는 것만은 아니다. 집주인도 마찬가지로 느끼고 있다. 주택 소유자에게 부과되는 세금은 날로 커지고 있지만, 지금 집을 파는 경우 다시 같은 집을 사지 못할 것이란 부담감을 느낀다. 그래도 집을 팔 생각은 차마 못하고 있다. 집을 매도하고 내는 양도세를 감안하고 전국 집값이 모두 올랐다는 점을 감안한 결정이다.
예를 들어 지난 2017년 11월 서울 왕십리 ‘텐즈힐’ 전용면적 59㎡를 당시 시세 7억5000만원에 주택담보대출을 3억원 받아 매수한 사람은 2020년 10월에 시세 13억8000만원에 매도하고 싶어도 내야 할 양도세가 많다. 1주택자에 2년 이상 거주했다고 하더라도 7000만원, 거주를 하지 않았다면 2억5000만원을 내야 한다. 매도가에서 양도세를 제외하면 손에 쥐는 돈은 11억3000만~13억1000만원이다. 대출 전액(3억원)을 상환하면 남는 돈은 8억~10억원선.
물론 애초 가졌던 돈보다는 매우 많은 돈이다. 하지만 비슷한 단지 또는 넓은 집으로 이사가는 것은 쉽지가 않다. 같은 단지 전용면적 84㎡의 호가는 16억5000만원이다. 대출이 불가능한 구간으로 넘어간다. 결국 수평 이동도 어렵고 상향 이동은 훨씬 어려운 셈이다.
이런 공포감은 다주택자들이 주택을 매도하기 망설이게 하고, 유주택자에서 무주택자로 지위를 바꾸는 데 소극적이게 한다. 매물로 나오는 주택이 많아져야 주택 가격이 내려갈 것이란 전망을 하게 되는데, 정 반대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양도세 등 세금 부담이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커지니까 못 팔겠다는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면서 "‘공급동결효과’가 이런 심리를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동시다발적으로 주택 공급대책이 나오고, 그 대책을 본 기존 다주택자들이 구축 주택을 매물로 내놓는 움직임이 보여야 가격 하락을 점치는 목소리가 커지는데 그런 움직임이 없어서 그렇다"고 덧붙였다.
③ 월세 세입자, 목돈을 모으지 못할 것이란 공포감
임대물량이 줄고 임대료가 오르는 데서 오는 공포감도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월세로 집을 구하면 목돈을 모으기 어려워 집을 사지 못하게 될 것이란 공포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최근 임대주택이 줄고 주택 보유자에 대한 세금 부담이 늘면서 이를 월세 세입자에게 전가시키는 집주인이 늘고 있기도 하다.
월세가 오르는 것은 예비 주택 매수자들에게 큰 부담 요인이다. 전세살이의 비용은 집값이 오르는 경우 생기는 기회비용과 집을 알아보고 이사다니는 비용 정도다. 하지만 월세살이의 비용은 오른 월세만큼 가처분소득 감소로 이어진다. 저축 여력이 크게 주는 셈이다.
특히 문제는 목돈 모으기에 용이했던 ‘전세’ 제도를 활용하기가 급격히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공포는 더 커지고 있다. 전세 매물 감소와 연이은 전세가격 급등은 전세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르자 급히 도입한 임대차 3법의 여파다. 계약 갱신을 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신규 전세 물량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계약 갱신에 성공한 임차인은 혜택을 보지만 새로 전세를 찾아야 하는 이들에겐 불리한 상황이 펼쳐졌다.
정부가 나서서 전·월세 전환율을 2.5%로 낮추는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새 계약인 경우 무용지물이라 월세 상승을 막을 순 없는 상황이다. 이는 월세살이를 할 바엔 자금 사정에 맞는 집이라도 사자는 심리를 불러온다. 이런 사람들이 많이 보이면 집값이 내려간다고 전망하기 어렵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최근 강북구, 금천구 등에서 매매가 일어나고 있다. 전세난이 촉발한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그는 "전세를 구할 수 없어 월세로 눈을 돌리자니 부담스럽고, 집주인에게 월세 내느니 은행에 이자내고 집을 사겠다는 전환수요가 늘어났다는 점이 반영됐다"고 했다. 집을 사면서 집값이 떨어진다고 보는 경우는 많지 않다.
④ 현금가치가 더 떨어질 것이라는 공포감
지금 집을 팔아 현금을 들고 있으면 자산 가치가 크게 떨어질 것이란 공포감도 있다. 이는 최근 실물자산이 급격하게 오른 데 따른 것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서울 아파트 중위매매가격은 6억600만원이었지만, 현재는 9억2000만원까지 올랐다. 현금 6억원을 3년 만기, 연 2.5% 금리의 정기예금 통장에 넣어뒀다면 2020년 만기시 찾는 금액은 세전 약 6억4500만원이다. 현금을 들고 있는 이들의 자산소득은 10%가 채 되지 않는 반면, 실물자산을 들고 있던 사람들은 자산이 약 50%는 늘었다는 뜻이다.
이런 분위기는 돈을 그대로 두지 않고 뭐라도 사야 한다는 불안감으로 이어진다. 주식, 비트코인, 투자상품 등이 선호되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은 전통적으로 부동산이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집값이 떨어지더라도 집 한 채는 남지만, 주식이나 비트코인 등 투자상품은 시세가 떨어지면 남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이런 인식은 여유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리게 하는 경향이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 랩장은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이에 따른 시중 부동자금이 많아 현금가치가 떨어진다는 불안감이 있는 상황"이라면서 "그런데 이 돈들이 갈 곳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증시에 투자하자니 분위기가 썩 좋지 않고, 상품에 투자하자니 옵티머스·라임자산운용 등 사회문제로까지 번진 사모펀드 이슈들이 있으니 부동산으로 돈이 더 흘러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이런 분위기를 보면 집값이 떨어진다고 전망하기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