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별세] ‘외로움’ 달래준 강아지, ‘경쟁력’ 만든 기계조립, ‘경영철학’ 바탕된 스포츠

조선비즈
  • 권오은 기자
    입력 2020.10.25 11:48 | 수정 2020.10.25 12:25

    25일 별세한 고(故)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수많은 취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개와 영화를 사랑했고 틈만 나면 기계를 분해했다. 레이싱과 승마, 골프 등 여러 스포츠를 즐겼다. 다양한 분야의 취미엔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상대방 없이 혼자 즐길 수 있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이 회장은 어렸을 적 부모님과 떨어져 경남 의령 생가에서 할머니 밑에서 3년 넘게 자랐다. 초등학교 5학년에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아홉살 많은 형과 함께 생활했지만 나이차가 커 말동무가 되지 못했다. 이런 외로움의 시간을 달래줬던 것은 그의 취미였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진돗개를 돌보고 있다. /조선일보DB
    이 회장은 어렸을 때부터 개를 좋아했다. 단순히 좋아하는 차원을 넘어 직접 개를 교배시키며 연구했다. 이 회장이 진돗개를 세계견종협회에 등록시킨 사례는 유명하다. 이 회장은 진도로 직접 가 진돗개 30마리를 구입했다. 순종을 고르기 위해 구입한 진돗개 30마리를 교배시켜 150마리까지 늘렸다. 12~13년간 이 작업을 반복한 끝에 순수 혈통 진돗개를 만들어 냈다. 이 회장은 1979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 견종 종합전시회에 교배한 순종 진돗개를 출전시켰고, 우리나라 최초로 진돗개 원산지를 입증했다.

    이 회장의 개 사랑은 그의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도 나와 있다. 이 회장은 에세이집에서 "개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좋은 친구를 넘어 사람과 동물 사이에 심적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도 깨달았다"고 적었다.

    이 회장이 가장 사랑했던 개는 1986년부터 키운, ‘벤지’란 이름의 요크셔 테리어다. 벤지가 10년만에 늙어 죽자 새로 입양한 포메라니안에 또 벤지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였다. 이 회장은 집에 돌아가면 벤지가 가장 반갑게 맞이했고, 다른 개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발밑을 지켰다고 회고했다. 이 회장이 환갑 때 제작한 ‘이건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주제의 사진첩에는 손자·손녀들 다음으로 벤지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7년 5월 12일 이듬해 3월 시판됐던 삼성 중형차를 시승하고 있는 모습이다. /조선일보DB
    이 회장의 취미엔 또다른 공통점이 있다. 특유의 ‘탐구욕’이다. 이 회장은 영화 1300여편을 봤을 정도로 영화광이었다. 이 회장 스스로 "경영가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영화감독이 됐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와 만나 영화 투자에 대해 논의한 경험도 있다.

    이 회장은 영화를 즐길 때 관람하는 수준을 넘어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했다고 한다. 영화 속 주인공은 물론, 조연, 감독, 스태프 등 다양한 입장에서 영화를 분석했다. 이 회장의 이런 습관은 입체적 사고의 틀을 완성했다. 실제 이 회장은 임원들을 상대로 ‘입체적 사고’를 수 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또 어릴 때부터 기계를 분해하는 습관이 있었다. 1993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출장 때 삼성 비디오와 도시바 비디오를 한 대씩 사 호텔 방에서 분해를 했다. 당시 직접 분해한 삼성과 도시바 제품을 임원들에게 설명하며 삼성 제품의 질을 높이라고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숨어있던 1인치를 찾아라’라는 광고 문구로 유명한 ‘명품 플러스원 TV’도 이 회장의 지시로 탄생했다. 1996년 당시 TV의 표준화면 규격은 4:3이었는데, 방송국에서 송출하는 화면 규격은 입보다 가로가 조금 더 긴 12.8:9였다. 이 회장은 기계를 분해·조립하는 과정에서 아무도 신경 쓰지 못했던 문제점을 파악했다고 한다.

    자동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회장은 미국 유학시절 1년만에 차를 여섯번이나 바꿨다. 중고차를 사서 타고 다니면서 틈틈이 분해·조립을 반복했다. 부품들을 닦고 광내는 일을 통해 샀을 때보다 돈을 더 많이 받고 파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이 회장은 레이싱을 즐겼다. 그가 자동차를 좋아해 회사까지 차렸다는 소문이 날 정도였다. 신차가 출시되면 직접 몰아 보고 전문잡지를 탐독했다.메르세데스-벤츠와 BMW, 도요타 등 양산차는 물론 포르셰·페라리 등 스포츠카까지 모두 갖고 있었다. 공산권 국가에서 생산한 명차까지 소유했을 정도였다. 이 회장은 스포츠카로 레이싱을 즐기기 위해 독일 아우토반을 자주 찾기도 했다.

    이 회장은 스포츠도 두루 즐기고 애정을 가졌다. 국내에서 비인기 종목이었던 레승링이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다수의 메달을 딴 것도 이 회장이 레슬링협회장을 맡으며 지원을 아끼지 않은 영향이 큰 것으로 평가됐다. 이후 럭비와 탁구 등 수많은 스포츠를 후원했다.

    이 회장과 골프도 떼놓을 수 없는 관계다. 이 회장은 아버지로부터 경영수업의 하나로 골프를 배웠다. 이회장은 평소 "골프는 규칙과 예절의 스포츠이며 골프를 바르게 치는 것은 사람 됨됨이가 제대로 됐음을 의미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회장의 스포츠 사랑은 경영철학에도 반영됐다. 그는 1993년 신경영을 주장할 때 "심판이 없는 골프에서는 자율을, 야구에서는 팀워크를, 럭비에서는 투지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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