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한국판 상앙'이 된 홍남기 부총리

조선비즈
  • 정원석 정책팀장
    입력 2020.10.19 11:00

    요즘 인터넷,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유튜브 등 미디어 세계에서 가장 ‘핫(hot)’한 인물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페이스북 등에서는 홍 부총리 이름에 ‘#전세난민’, ‘#집구했나’, ‘#자승자박’ 등 해시태그 문구를 단 글이 쏟아졌다. 경제정책 최고 책임자인 홍 부총리가 이른바 ‘전세 난민’이 된 상황을 비꼬는 것이다.

    전세권을 둘러싼 홍 부총리의 사정을 단순히 개인사로 치부할 수 있을까. 문득 ‘상앙변법’에 대한 고사(古事)가 떠올랐다.

    중국 춘추시대 진나라 재상이었던 상앙(BC. 395~338)은 고발제, 연좌제로 백성을 통제하는 오가작통법 등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했다. 태자의 비위를 처벌하기 위해 태자 사부의 코를 베기도 했다. 그러나 상앙을 중용한 진효공이 죽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자 상앙은 도망자 신세가 됐고, ‘여행증이 없는 사람을 재우면 여관 주인을 처벌한다’는 자신이 만든 법 때문에 붙잡혀서 처형당했다. 가족들도 상앙이 만든 연좌제로 멸문지화를 피하지 못했다.

    개정된 임대차보호법으로 살고있는 전셋집을 비워야 하고, 보유 중인 자가를 팔지도 못하는 처지가 된 홍 부총리는 ‘21세기 한국판 상앙’이라 할 수 있다. 후세대 정책학 교과서에 실릴 수 있는 정책 실패 사례다. 세입자 거주권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집주인의 임대 유인을 지나치게 제약하면 세입자도 불행해 질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현실화된 사례다. 홍 부총리는 정부와 집권여당이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인 임대차보호법의 모순을 몸소 보여줬고,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신뢰도는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인터넷 부동산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는 UCC(User Created Contents) 창작물.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서 전셋집을 보기 위해 9명이 줄을 서있는 장면에 홍 부총리의 얼굴을 합성한 이미지가 ‘#내가홍남기다’라는 문구와 함께 올라와 있다.
    역대 경제부총리 중에서는 시장 경제 원칙을 지키기 위해 정치권과 대중의 여론에 맞섰던 인물들이 종종 있었다. 대중에게 조롱거리가 된 경제부총리는 거의 없었다. 초유의 사태에 가장 당혹스런 사람들은 기재부 등에서 일하는 홍 부총리의 후배 관료들이다. 경제수장을 곤궁한 처지로 몰아넣은 정책을 국민들에게 감내하라고 강변하는 입장이 됐다. 홍 부총리가 더 이상 부동산 정책을 이끌고 갈 동력이 사라졌다는 게 세간의 냉정한 평가다.

    재임일 700일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홍남기 부총리는 기재부 장관으로서는 역대 두번째 장수(長壽) 장관 역사를 쓰고 있다. 그러나 이 역사가 후배 관료들에게 자랑스러운 역사로 남을 수 있을지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헌법에 명시된 기재부의 정부 예산 편성권이 제대로 행사되고 있는지, 경제부총리의 경제정책 조정권이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등이 체크포인트다. ‘홍두사미(홍남기+용두사미)’라는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도 살펴보길 바란다.

    ‘전세 난민’ 홍 부총리는 지난 18일 저녁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비공개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전세 거래 실규모가 늘고 매매 시장은 보합세 내지는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땅에 떨어진 정책 신뢰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발언이다. 후배들에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도 선배 관료의 중요한 덕목이다. 홍 부총리가 "그래도 책임감 있는 선배였다"는 평가라도 듣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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