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방역 체계 공백 메꿔라”…스스로 방역 나선 기업

입력 2020.10.18 06:10

[이코노미조선]
사업장 비상사태로 인식되는 최초의 감염병 ‘코로나19’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사업장에서 비상사태로 인식되는 최초의 감염병이다. 사스(SARS·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메르스(MERS·중동 호흡기 증후군), 신종 인플루엔자가 사업장 안전관리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사업장 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 생산·유통·영업 등 사업 활동 일체가 중단된다. 또한 매출과 주가, 외부 평판, 브랜드 이미지까지 큰 타격을 입는다. 위협적인 코로나19 사태를 경험하면서 감염병은 이제 기업이 반드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위기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이코노미조선’은 유통, 전자, 자동차·부품, 정보기술(IT) 등 주요 업종별로 코로나19 방역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모범방역 기업에 주목했다. [편집자 주]

사업 일체 마비시키는 코로나19
매출, 주가, 기업 평판도 악영향
기업 자발적 방역 시스템 필요

쿠팡 동탄 물류센터에서 지게차를 운전하는 김쿠팡(가명)씨의 출근길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통근 버스 안에서 부족한 아침잠을 보충하거나 옆자리 동료와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19 안전감시단’으로서 버스에 오른 동료들의 체온을 측정하고 마스크 착용을 확인하는 일로 일과를 시작한다. 통근 버스가 출발하기 전 동료들이 떨어져 앉았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김씨의 일이다. 물류센터에 도착한 김씨와 동료들은 업무를 시작하기 전 또다시 체온 체크, 신분증 확인, 자동 체온 관리, 손 소독을 해야 한다.

빠르게 돌아가는 물류센터에서도 김씨의 안전관리단으로서 역할은 계속된다. 식당이나 흡연장 등에 칸막이가 설치됐지만, 지그재그 앉기와 거리 두기 등을 당부한다. 엘리베이터에 6명 이상 탑승하지 못하도록 안내하고 마스크 착용, 오전·오후 체온 측정 여부 등을 수시로 확인한다. 동료들이 몸에 지닌 PDA나 웨어러블 기기는 동료 간 거리가 가까워지면 경고음이 울려 안전감시단의 일을 돕는다.

쿠팡은 현재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김씨와 같은 안전감시단을 2400여 명 규모로 운영 중이다. 물류센터는 물론 사무실과 배송 과정 등 업무 전 과정에서 감염 위험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배송 전문 인력인 ‘쿠팡친구’를 비롯해 전 직원에게 매일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지급하고 있다. 일부 쿠팡 직원이 회사가 과할 정도로 거리 두기와 마스크 착용을 감시한다는 볼멘소리를 할 정도라고 한다. 더 나아가 최근에는 고려대 보건대학과 ‘방역 강화 시스템 연구·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사업장 내 방역 시스템을 한층 더 강화하기 위해서다. 쿠팡이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쓰는 돈은 연간 5000억원으로, 업계에서 보기 드문 수준이라는 평가다. 알베르토 포나로 쿠팡 최고재무관리자(CFO)는 지난 8월 사내 이메일을 통해 "쿠팡의 198만3471㎡(60만 평) 인프라에 근무하고 있는 5만 명의 안전은 물론 고객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용을 기꺼이 감내하겠다"고 했다.

살균 장치가 설치된 쿠팡 배송 차량. / 쿠팡
쿠팡은 지난 5월에만 하더라도 부천 물류센터에서 확진자가 나오면서 여론의 관심을 받았다. 당시 관련 확진자가 80여 명이 넘었는데 물류센터가 폐쇄돼 배송이 지연됐고 소비자는 불편을 겪었다. 하지만 이는 사내 방역 시스템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불과 3개월 뒤인 7월, 방역 당국은 쿠팡을 방역 모범 사례로 꼽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쿠팡처럼 ‘스스로 방역’에 나선 기업이 늘고 있다. 코로나19 전파 초기에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방역 활동을 이끌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경제 활동과 방역 활동의 주체인 기업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2차 유행 공포가 커지면서 이른바 K방역, 즉 국가적 방역 체제에 의존하고만 있을 수 없는 것이 기업의 실정이다. 기업은 사업장에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내린 정부 지침에 빈틈이 없는지를 파악하고, 현장을 고려한 자발적 방역 지침을 만들어 운영해야 한다.

코로나19는 사업장에서 비상사태로 인식된 최초의 감염병이다. 사스(SARS·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메르스(MERS·중동 호흡기 증후군), 신종 인플루엔자가 사업장 안전관리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사업장 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 생산·유통·영업 등 사업 활동 일체가 중단된다. 또한 매출과 주가, 브랜드 이미지까지 큰 타격을 입는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기업에 대해 "감염병에 대한 대응책을 세우지 않거나 수동적으로 대응했다는 점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확산 초기인 지난 2월 한국경제연구원이 시장조사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기준 10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세 곳 중 한 곳은 코로나19 대응 전략이 부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현지 출장 자제(34.3%)’라는 응답 다음으로 ‘별다른 대응 방법 없음(29.5%)’이라는 응답이 많았다.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면 신종 감염병은 평균 5~6년 주기(2003년 사스,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2015년 메르스)로 찾아왔다. 위협적인 코로나19 사태를 경험하면서 감염병은 이제 기업이 반드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위기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한 직원이 마스크를 쓰고 일하고 있다. / 쿠팡
◇"감염병 위기는 또다시 찾아와"

글로벌 컨설팅 업체 딜로이트는 과거 감염병 확산 당시 다국적 기업의 대응 사례를 분석한 결과 감염병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비상 대응팀 또는 위기 상황실 구성 △비상 대응 계획 수립 △직원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 유지 △사회적 책임 이행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딜로이트는 "한 번 타격을 입은 기업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하거나, 타격을 입을 요소를 완화하는 데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며 "지속적인 감염병 위기를 견뎌내기 위해서 기업이 감염병으로부터 받는 고유한 리스크를 식별하고 그것을 완화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업의 코로나19 대응은 감염 확산을 막는 것, 즉 방역에서 시작한다. 한 가지 더 명심해야 할 점은 방역 대상이 사업장 내부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깝게는 지역 사회, 국가 전체, 전 세계로 확대될 수 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와 전쟁 상황’이라고 하지 않는가.

백신과 치료제 개발 등으로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하기 전까지 기업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사업장으로 바이러스가 퍼질 위험은 언제든 도사리고 있다. 딜로이트가 기업의 감염병 대응에서 사회적 책임 이행을 강조한 이유이기도 하다. 위기 대응 컨설팅 전문기업 레빅전략커뮤니케이션의 리처드 레빅 회장 역시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기업의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고객과 주주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것’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세계적 위기 상황에서는 모두가 고객이다"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 위기 상황에서 정부와 기관뿐만 아니라 기업도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조선’은 이번 커버 스토리에서 코로나19 시대에 기업의 필수적인 위기 대응 능력으로 떠오른 방역 활동에 집중했다. 유통, 전자․전기, 자동차·부품, 정보기술(IT) 등 주요 업종별로 코로나19 방역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기업 사례를 분석했다. 방역 활동 와중에 사업 기회를 모색하는 기업 사례도 담았다. 미 코넬대 ILR스쿨(노사관계대학원)에서 ‘사업장 건강 및 안전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산업위생 전문가 넬리 브라운을 인터뷰했다. 국내 기업의 위기관리 담당자들의 이야기도 경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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