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신임 회장은 국내 3세 오너 경영인 중 경영 수업을 가장 충실히 받고, 경영 능력을 검증받은 인물로 꼽힌다. 정 신임 회장은 2018년 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아버지인 정몽구 명예회장을 대신해 실질적으로 그룹을 이끌어왔다. 지난해 주주총회에서는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대표이사에 올랐다. 올해 3월에는 부친에게서 21년만에 현대차 이사회 의장직도 물려 받았다.
정 신임 회장은 1970년생으로 휘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94년 현대정공(현대모비스)에 과장으로 입사했고, 이후 1년 만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1997년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은 뒤, 일본 이토추상사 뉴욕지사에서 2년간 근무했다. 1999년 현대차그룹에 입사해 본격적으로 자동차 사업과 인연을 맺었다.
정 신임 회장은 그간 유연하고 혁신적인 경영 스타일로 위기를 돌파해왔다는 평가받는다. 2005년 실적 부진에 처한 기아자동차 사장을 맡았을 땐 '디자인 경영'을 통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땐 현대차 부회장을 맡아 미국에서 소비자가 1년 내 실직하면 차를 되사주는 파격적인 보증 프로그램을 내놨다. 당시 이 판매방식은 미국 언론의 호평을 받았고, 일본차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도 현대차를 따라서 도입했다. 2015년에는 제네시스 브랜드를 출범시키며 브랜드 고급화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고, 지난해에는 수평적 직급체계와 완전 자율복장 제도를 도입해 조직문화 혁신을 꾀했다.
◇‘디자인 경영’ 앞세워 기아차 정상화
2005년 기아차 사장에 선임된 정 신임 회장에게 주어졌던 임무는 기아차의 제품 라인업을 강화하고, 경영 정상화를 이뤄내는 것이었다.
정 신임 회장은 '디자인 경영'을 키워드로 내걸고 2006년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평가받는 독일 아우디·폴크스바겐 출신의 피터 슈라이어를 기아차의 디자인총괄 부사장(CDO)으로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기아차로 옮기기를 망설였던 그를 영입하기 위해 정 신임 회장이 삼고초려 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피터 슈라이어는 현재 현대·기아차 디자인총괄 사장을 맡고 있다.
슈라이어 사장은 기아차에 처음 영입됐을 당시 정 신임 회장에 대해 "매우 열려있고 긍정적이다", "자주 대화하는 편이며 이메일로도 하고싶은 말을 주고받는다", "나를 믿어줘 큰 힘이 된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었다. K시리즈, 쏘울, 모하비 등 기아차 대표 차종은 디자인 경영의 결실로 꼽힌다.
정 신임 회장은 기아차를 3년 넘게 경영하면서 직원들의 신망을 크게 얻었다. 기아차 사장 재임 시절 그는 양재동 본사나 국내영업본부가 있는 압구정 사옥을 종종 들러 야근하는 직원들에게 피자와 맥주 등을 돌렸고, 직원들과 수시로 대화를 가졌다고 한다.
◇ 제네시스 출범으로 브랜드 고급화, 조직문화 혁신에도 공들여
기아차를 정상화 궤도에 올려놓은 정 신임 회장은 2009년 부회장 직함을 달고 현대차로 돌아왔다. 정 신임 회장이 현대차로 돌아와 집중한 것은 브랜드 이미지 강화다.
현대차는 2015년 11월 전 세계에 현대차 고급브랜드인 제네시스 브랜드 출범을 발표했다. 제네시스는 정 신임 회장이 초기 기획단계부터 외부인사 영입, 조직개편까지 모든 과정을 기획하고 주도한 야심작으로 평가받는다. 정 신임 회장은 제네시스 브랜드 출범 두달 후에 열린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직접 나서 제네시스를 소개하기도 했다.
최근 출시된 제네시스 GV80과 G80 등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올해 국내에선 제네시스 판매량이 벤츠·BMW 판매를 제치기도 했다. 브랜드 고급화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것과 더불어 연이은 신차 성공을 통해 자동차그룹 최고 경영자로서 정 신임 회장의 역량이 입증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 신임 회장은 조직 문화 혁신에도 공들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자율 복장 제도를 전면적으로 도입했다. 넥타이 대신 청바지, 티셔츠 등 직원들이 자유롭게 옷을 입도록 한 사례는 IT업계와 달리 전통적 위계질서가 강한 글로벌 자동차 기업에선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어 선택적 근로시간제 확대, 신입사원 수시공채 도입, 직원 직급체계 슬림화 등을 통해 조직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